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습니다.
이제 프로야구에는 왼손 타자가 오른손 타자보다 더 흔히 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왼손 타자가 오른손 타자보다 타석에 더 자주 들어섰다는 뜻입니다.
올해 프로야구 정규시즌은 총 5만5963타석을 남기고 막을 내렸습니다.
이 중 50.2%인 2만8076타석이 왼손타자 차지였습니다.
왼손타자 타석 점유율이 50%를 넘어선 건 프로야구 41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2년만 해도 왼손 타자 점유율은 39.7%가 전부였습니다.
10년 사이에 왼손 타자가 10.5% 포인트 늘어나게 된 겁니다.
왼손 타자가 이렇게 늘어난 건 물론 우투좌타 전성시대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우투좌타 선수는 총 2만1330타석(38.1%)에 들어섰는데 이 역시 역대 최다 기록입니다.
2012년에는 이 비율이 16.7%(6779타석)였으니까 10년 사이에 우투좌타 선수가 2.3배 늘어난 셈입니다.
2013년에 '우투좌타도 시든다'고 기사를 썼던 저 사진이 새삼 또 부끄러워지는 결과입니다.
다만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은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올해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전체 6만2248타석 중 43.1%가 우투좌타 차지였습니다.
올해 센트럴리그(CL) 타격 트리플 크라운 주인공 무라카미 무네타카(村上宗隆·22·야쿠르트)가 현재 일본 대표 우투좌타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치로!(49), 마쓰이 히데키(宋井秀喜·48),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31·LA 에인절스) 모두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는 왼손 타자입니다.
일본 영향을 많이 받은 대만도 우투좌타 점유율 40.6%로 한국보다 높았습니다.
반면 메이저리그는 상대적으로 우투좌타가 적습니다.
올해 기준 메이저리그는 전체 18만2052타석 중 20.3%만 우투좌타 차지였습니다.
자연스레 왼손 타자 타석 점유율도 39.5%로 한국(50.2%), 일본(51.5%), 대만(48.7%)보다 낮았습니다.
메이저리그에도 타이 콥(1886~1961), 테드 윌리엄스(1918~2002) 같은 전설적인 우투좌타 선수가 있었습니다.
'우투좌타 선수가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에서는 한국, 일본만큼 우투좌타가 유행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일단 상대 투수에 따라 타석을 오가는 '스위치 히터'가 많다는 게 이유일 수 있습니다.
스위치 타자 타석 점유율은 △메이저리그 11.4% △일본 2.1% △한국 1.0%였습니다.
소위 '동양 야구'에서 스위치 타자가 멸종위기종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는 여전히 '섹시한 소수자'인 셈입니다.
장타력이 떨어지면 메이저리그까지 올라오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우투좌타는 기본적으로 장타력을 포기하는 대가로 정교함을 얻는 선택이니까요.
반면 동양 야구에서는 '정교함'만으로도 1군에서 살아남을 만합니다.
리그 | 투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력 | OPS | BABIP | IsoP |
한국 | 우투우타 | .252 | .323 | .374 | .697 | .296 | .122 |
우투좌타 | .268 | .341 | .380 | .721 | .318 | .112 | |
좌투좌타 | .271 | .355 | .401 | .756 | .319 | .130 | |
일본 | 우투우타 | .242 | .306 | .376 | .682 | .286 | .134 |
우투좌타 | .253 | .319 | .366 | .685 | .296 | .113 | |
좌투좌타 | .260 | .325 | .364 | .689 | .306 | .103 | |
대만 | 우투우타 | .255 | .314 | .348 | .662 | .306 | .092 |
우투좌타 | .271 | .334 | .345 | .679 | .318 | .074 | |
좌투좌타 | .259 | .324 | .376 | .700 | .296 | .118 | |
미국 | 우투우타 | .247 | .311 | .402 | .713 | .296 | .155 |
우투좌타 | .240 | .316 | .392 | .708 | .290 | .152 | |
좌투좌타 | .238 | .313 | .389 | .702 | .282 | .152 |
일단 이 글을 여기까지 읽고 계시는 분이라면 OPS(출루율+장타력)가 무엇인지는 아실 겁니다.
BABIP(Batting Average on Balls In Play)는 '타자가 홈런이 아닌 페어 타구를 때렸을 때 타율'입니다.
타격이 얼마나 정교한지 확인할 수 있는 대표 지표가 바로 BABIP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soP(Isolated Power)는 장타력(율)에서 타율을 뺀 값으로 '순수장타력(율)'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표를 보면 한국, 일본, 대만 모두 우투좌타 선수가 우투우타 선수보다 BABIP은 높지만 IsoP는 낮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특징이 나타난다고 하기 쉽지 않습니다.
장타 대명사인 홈런을 보면 이 차이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동양 야구에서는 우투좌타 선수가 안타 치는 재주가 있다면 홈런 생산력이 떨어져도 타석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으려면 홈런을 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마이너리그 AAA 레벨과 비교해도 메이저리그는 우투좌타 타석 점유율이 16.8% 줄어드는 셈입니다.
위 표에 나온 투타 유형별 IsoP가 메이저리그에서는 엇비슷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AAA는 메이저리그로 가는 관문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엄연한 프로 리그입니다.
그러면 한국 프로야구에서 우투좌타 전성시대는 계속될까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20대 이하만 따지면 우투좌타 타석 점유율(47.9%)이 우투우타(43.7%)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다만 왼손 타자가 계속 50% 넘게 들어설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0대 이상에서 15.4%인 좌투좌타 타석 점유율이 20대 이하에서는 6.6%로 줄어들거든요.
요컨대 우리는 '어쩌다 왼손잡이'가 '늘 왼손잡이'를 쫓아내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