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전직) 기자 선배께서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기셨습니다.
요컨대 올해 한화는 타율/출루율/장타력(장타율)이 다 낮은데 어떻게 BABIP는 높을 수가 있느냐는 것.
실제로 한화는 29일 현재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타율은 공동 8위, 출루율을 10위, 장타력은 9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팀 | 타율 | 출루율 | 장타력 | BABIP |
한화 | .250 | .321 | .360 | .317 |
KIA | .273 | .351 | .403 | .316 |
삼성 | .262 | .328 | .369 | .313 |
KT | .256 | .333 | .375 | .311 |
LG | .274 | .349 | .411 | .311 |
SSG | .258 | .339 | .394 | .306 |
롯데 | .260 | .322 | .377 | .304 |
NC | .256 | .334 | .376 | .298 |
키움 | .250 | .333 | .362 | .296 |
두산 | .249 | .323 | .353 | .292 |
올해 한화가 확실히 이상하기는 합니다.
한화는 타율(8위) 출루율(10위) 장타율(9위) 순위를 모두 더하면 27이 나옵니다. 이를 팀 숫자(10개)로 나누면 2.70입니다.
BABIP 1위 팀 가운데 올해 한화 다음으로 이 숫자가 컸던 건 △2016년 롯데 1.90 △2003년 두산 1.75 △2014년 SK(현 SSG) 1.67 △2005년 두산 1.62 순서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한화는 어쩌다 이렇게 이상한 성적표를 받게 된 걸까요?
기본 타격 기록이 전부 다 나쁜데 BABIP만 유독 높은 건 확실히 재미있는 일입니다.
수비 팀 관점에서 BABIP와 가장 관계가 깊은 기록은 범타처리율(DER·Defensive Efficiency Ratio)입니다.
DER를 가장 쉽게 추정하려면 그냥 1(=100%)에서 BABIP을 빼면 됩니다.
따라서 어떤 팀이 BABIP이 높다는 건 이 팀 타선이 때린 타구를 상대팀 수비수가 처리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한화 타자가 때린 타구를 상대 팀 수비수가 처리해 아웃 카운트를 올린 건 2022번으로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래프를 자세히 보시면 이 인플레이 아웃 개수와 BABIP 순위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건 사실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누적 기록과 비율 기록 차이니까요.
그리고 BABIP가 비율 기록이라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정보인지 모릅니다.
BABIP는 보통 이렇게 생긴 공식에 △타수 △안타 △홈런 △삼진 △희생플라이 데이터를 넣어서 계산합니다.
모든 분수가 그런 것처럼 BABIP도 분자에 있는 '안타 - 홈런'이 커지면 값이 올라갑니다.
거꾸로 분모에 있는 '타수 - 홈런 - 삼진 + 희생플라이'가 작아져도 BABIP이 역시 올라갑니다.
그러면 어떤 기록이 BABIP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까요?
간단한 '랜덤 포레스트' 모형을 만들어 계산해 보면 역시나 안타가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이 삼진입니다. 안타가 100만큼 중요하다고 할 때 삼진은 60.3만큼 중요합니다.
나머지 세 기록은 20이 되지 않으니까 삼진이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진이 늘어나면 공식에서 분모가 줄어들어 BABIP가 올라가게 됩니다.
올해 프로야구 전체 4만4132타석 가운데 18.7%인 8249타석이 삼진으로 끝났습니다.
한화는 전체 4307타석 가운데 1002타석으로 삼진 비율이 23.3%에 달합니다.
한화 타선은 리그 평균과 비교할 때 24.5% 삼진을 더 많이 당하고 있는 겁니다.
리그 평균과 비교할 때 올해 한화보다 삼진을 많이 당한 건 지난해 한화(28.7%) 그리고 1987년 청보(27.0%)뿐입니다.
지난해 한화는 타석 대비 안타 비율(20.2%)은 최하위 홈런 비율(1.5%)은 9위였습니다.
안타를 워낙 못 치다 보니 삼진을 저렇게 많이 당하고도 BABIP(.306)는 5위에 그쳤습니다.
올해는 안타 비율(22.2%)을 리그 평균(22.8%) 97.4% 수준까지 끌어올린데다 역대급으로 삼진을 많이 당하면서 BABIP 선두에 오른 겁니다.
방망이에 공을 못 맞혀서 그렇지 일단 맞으면 안타가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겁니다.
만약 올해 한화 타선이 다른 기록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삼진만 리그 평균 수준이었다면 BABIP은 .296(8위)으로 떨어집니다.
BABIP가 높은 게 꼭 팀 또는 타자가 무조건 잘 치고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거꾸로 최재훈(33)은 358타석에서 삼진을 51개(14.2%)밖에 당하지 않았지만 .219/.327/.286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최재훈은 삼진만 적다고 좋은 타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기록이 같다고 두 선수(팀)가 똑같은 레벨이라고 무조건 단정 짓기도 쉽지 않습니다.
리그 홈런 선두 박병호(36)가 이번 시즌 448타석에서 남긴 BABIP가 .297입니다.
한화가 삼진을 줄여서 BABIP .296인 타선을 꾸렸다면 정말 박병호 같은 위압감을 안길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어떤 기록을 근거로 어떤 평가를 내리기 전에는 항상 '이 기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하고 꼭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