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무네타카(村上宗隆·22·야쿠르트)가 결국, 기어이, 드디어, 마침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시즌 56호 홈런을 쳤습니다.
무라카미는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3일 안방 DeNA전에서 팀이 7-2로 앞서가던 7회말 시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무라카미는 지난달 13일 안방 경기에서 요미우리(讀賣)를 상대로 시즌 55호 홈런을 날린 뒤 이날 세 번째 타석까지 60타석 연속 무홈런을 기록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만원 관중(2만9756명) 응원 속에 등장한 무라카미는 DeNA 다섯 번째 투수 이리에 다이세이(入江大生·24)가 초구로 던진 시속 151km 속구를 받아쳐 오른쪽 담장을 넘겼습니다.
무라카미는 이 홈런으로 1964년 요미우리 소속으로 55홈런을 남긴 오 사다하루(王貞治·82) 소프트뱅크 구단 회장을 제치고 일본 출생 타자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올드 팬'에게는 왕정치라는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더 유명한 오 회장은 '외다리(一本足) 타법'을 앞세워 통산 868홈런을 기록한 타자입니다.
오 회장은 일본 고쿠민에이요쇼(國民榮譽賞·국민영예상) 1호 수상자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화교 가정 출신이라 중화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라카미는 55홈런을 쳤을 때부터 이미 일본 국적자 가운데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주인공이었던 셈입니다.
오 회장은 "우리 때는 한 경기에 같은 투수를 여러 번 상대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무라카미가 대단한 기록을 남겼다"고 치켜세웠습니다.
무라카미와 오 회장 둘 모두 왼손 홈런 타자지만 타격 스타일은 서로 다릅니다.
오 회장은 전체 홈런 55개 가운데 49개(89.1%)가 오른쪽 방향으로 날아간 전형적인 '풀(pull) 히터'입니다.
반면 무라카미는 왼쪽(18개), 가운데(13개), 오른쪽(25개) 방향을 가리지 않는 '스프레이 히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출생 타자', '일본 국적자'라는 전제가 붙어 있는 건 시즌 최다 홈런 기록 주인공은 따로 있다는 뜻.
일본 프로야구 최다 홈런 기록은 야쿠르트 외국인 타자 블라디미르 발렌틴(38)이 2013년 남긴 60개입니다.
무라카미는 55호 홈런까지만 해도 2.1경기당 한 개씩 홈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야쿠르트가 15경기를 남겨 놓은 상태에서 55홈런을 날렸으니 아예 시즌 최다 기록을 쓰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55홈런 이후 '기록을 깨야 한다'는 압박감에 방망이가 차갑게 식었습니다.
그러면서 안방 구장에서 56호 (이후) 홈런을 치면 도쿄에 있는 10억 엔(약 9억9500만 원)짜리 집을 주겠다던 '오픈하우스'도 몸이 달았습니다.
이 부동산 업체는 결국 '어떤 구장에서 치든지 집을 주겠다'고 방향을 바꿨고 결국 3억 엔(약 29억8000만 원)으로 경품 규모도 키웠습니다.
오픈하우스는 "압박을 이겨내고 일본 야구팬에게 감동을 준 무라카미에게는 이쪽이 더 어울린다"고 밝혔습니다.
무라카미는 팀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지난달 25일까지만 해도 "더 압박해 주시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이날 홈런을 친 뒤에는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오래 홈런을 치지 못하면 본인이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게 당연한 일.
무라카미는 55호 홈런 이후 44타수 5안타(타율 0.114)에 삼진 20개를 당하면서 시즌 타율도 0.337에서 0.317까지 내려온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무라카미가 이날 4타수 무안타에 그친다면 타율 .314로 시즌을 마친 오시마 요헤이(大島洋平·37·주니치)에게 타격왕 자리를 내줄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4타수 2안타를 기록하면서 타율 .318로 시즌을 마치면서 선두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타율, 홈런, 타점(134점)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하면서 2004년 마쓰나카 노부히코(松中信彦·49·다이에) 이후 18년 만에 트리플 크라운에 성공했습니다.
다이에는 퍼시픽리그(PL) 소속이고 야쿠르트는 센트럴리그(CL) 소속입니다.
CL만 따지면 무라카미는 1986년 바스(68·한신) 이후 36년 만에 나온 트리플 크라운 주인공입니다.
연도 | 리그 | 이름 | 팀 | 타율 | 홈런 | 타점 |
1965 | PL | 노무라 가쓰야 | 난카이 | .320 | 42 | 110 |
1973 | CL | 오 사다하루 | 요미우리 | .355 | 51 | 114 |
1974 | CL | 오 사다하루 | 요미우리 | .332 | 49 | 107 |
1982 | PL | 오치아이 히로미쓰 | 지바 롯데 | .325 | 32 | 99 |
1984 | PL | 부머 | 한큐 | .355 | 37 | 130 |
1985 | CL | 바스 | 한신 | .350 | 54 | 134 |
1985 | PL | 오치아이 히로미쓰 | 지바 롯데 | .367 | 52 | 146 |
1986 | CL | 바스 | 한신 | .389 | 47 | 109 |
1986 | PL | 오치아이 히로미쓰 | 지바 롯데 | .360 | 50 | 116 |
2004 | PL | 마쓰나카 노부히코 | 다이에 | .358 | 44 | 120 |
2022 | CL | 무라카미 무네타카 | 야쿠르트 | .318 | 56 | 134 |
무라카미는 또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연소 트리플 크라운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오치아이 히로미쓰(落合博滿·69·지바 롯데)가 29세였던 1982년 트리플 크라운에 성공했던 게 최연소 기록이었습니다.
양대 리그 도입(1950년) 이전에는 도쿄(東京) 교진군(巨人軍) 소속 나카지마 하루야스(中島治康·1909~1987)가 1938년 가을 리그에서 타율 .361, 10홈런, 38타점으로 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이치로!(49·오릭스)는 1995년 타율(.342), 출루율(.432), 안타(179개), 타점(80점), 도루(49개)에서 PL 5관왕에 올랐지만 트리플 크라운 기준(타율·홈런·타점 1위)은 충족하지 못해 이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는 에런 저지(30·뉴욕 양키스)가 아메리칸리그 최다 홈런 타이기록(61개)에 성공한 뒤 새 홈런 기록과 트리플 크라운에 동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무라카미 때문에 일본 열도가 그랬던 것처럼 북미 대륙도 응원 열풍에 휩싸인 상황.
한국에서도 이정후(24·키움)가 타율(.351), 출루율(.422), 장타력(.581), 안타(191개), 타점(113점)에서 5관왕을 기록 중인데도 어딘가 2% 부족해 보입니다.
역시 내셔널리그 7년 연속 홈런왕 랄프 카이너(1922~2014)가 괜히 "홈런왕은 캐딜락을 타고 타격왕은 포드를 탄다"고 말한 게 아닌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