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바람의 아들과 손자가 발가락이 닮았는지 몰라도 쓰는 손은 확실히 다릅니다.


아버지 이종범 현 LG 코치(49·사진 왼쪽)은 왼손잡이지만 아들 이정후(21·히어로즈)는 오른손잡이입니다.


재미있는 건 타석에 들어설 때는 이게 또 반대라는 것. 이 코치는 오른손 타자, 이정후는 왼손 타자입니다.


이 코치는 던질 때도 오른손을 쓰지만 실제로 밥도 왼손으로 먹고 당구와 고스톱도 왼손으로 치는 전형적인 왼손잡이라는 건 제법 유명한 사실.


그런데 야구는 왜 오른손으로 하게 됐을까요? 이 코치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서 뛰던 2000년 세상에 나온 동아일보 기사는 이렇게 소개합니다.


시험삼아 오른손으로 볼을 한번 던져 봤는데 왼손보다 휠씬 멀리 나갔다. 왼손잡이 였지만 오른손 어깨가 강했던 것이다. 그뒤부터 자의반 타의반으로 오른손으로 야구를 하게 됐다. 그 당시에는 왼손잡이 선수가 많지 않은 시절이었고 지도자들도 오른손 타자를 선호한 편이었다. 더군다나 이종범은 내야수를 맡으면서부터는 완전히 오른손 타자로 굳어졌다.


이 기사는 '이 코치가 우투좌타였으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호기심으로 이어갑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쯤 일본에서도 수준급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을 게 틀림없다. 아무래도 오른손 투수가 많기 때문에 우타자보다는 좌타자가 유리하다. 그리고 좌타자는 타석에서 1루 베이스까지의 거리가 우타자 보다는 짧아 내야안타를 기록할 확률이 높다.


이종범은 발까지 빨라 상당히 많은 내야안타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오른손으로 던지면 내야수를 하는데는 지장이 없어 자신의 원래 포지션인 유격수를 맡을 수도 있었음은 물론이고.


그러니 휘문고 재학시절까지 내야수(유격수)로 뛰었던 이정후가 우투좌타가 된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지도자들도 왼손 타자를 선호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된 지 오래입니다.


이유는 위에서 나온 것처럼 타격에 유리하기 때문. 특히 타율을 끌어올리기에 유리합니다. 


기본적으로 왼손 타자는 1루에 1m 정도 더 가까운 오른쪽 타석에 들어서 공을 칩니다.


또 오른손 타자는 스윙을 하고 나서 몸을 반대로 틀어서 1루로 뛰어야 하지만, 왼손 타자는 스윙 후 자연스럽게 1루로 뛰면 됩니다.


야구에서는 찰나에 아웃과 세이프가 갈리는 일이 많기 때문에 왼손 타자가 적지 않은 어드밴티지를 안고 있습니다.


실제로 1982년 이후 지난해까지 왼손 타자 평균 타율은 .278로 오른손 타자(.260)보다 2푼8리 높습니다(스위치 타자 제외).


수비할 때는 반대입니다.


왼손으로 공을 던지면 포수 수비를 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 1루수를 제외한 나머지 내야수로 출전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야구에서 우투좌타가 제일 유리한 형태인 이유입니다. 



우투좌타 얼마나 늘었나? 결과는?

자연스레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우투좌타도 늘고 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선수 등록 과정에서 자신이 우투좌타라고 밝힌 건 1989년 롯데 김상우(53)가 처음이었습니다.


지난해(2018년)에는 이 숫자가 100명으로 늘었습니다. 이제는 프로야구 선수 여섯 명 중 한 명(16.4%)이 우투좌타입니다.



타석 점유율 변화는 더 극적입니다. 2005년에 (외국인 선수가 아닌) '토종' 선수가 타석에 들어선 건 총 3만5952번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4.1%(1479타석)에 우투좌타 선수가 들어섰습니다. 위 그래프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것처럼 당시 우투좌타 선수가 (투수를 포함해) 4.4%였으니까 엇비슷한 비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투좌타 선수가 16.4%를 차지했던 지난해에는 이 비율이 31.5%까지 올랐습니다.


2008년 처음으로 10%를 돌파했던 우투좌타 타석 점유율은 2015년 20%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드디어 30%를 넘어섰습니다.


2013년 9월 6일 '우투좌타도 시든다'고 기사를 쓴 적이 있었는데 제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던 겁니다.



이렇게 우투좌타 선수가 구성 비율보다 타석 점유율이 높다는 건 이들이 잘 친다는 뜻입니다.


10개 팀이 프로야구 순위 경쟁을 벌이게 된 2015년부터 4년간 우투우타, 좌투좌타 선수 모두 평균 OPS(출루율+장타력) .780을 기록하는 동안 우투좌타 선수는 .798을 쳤습니다.


참고로 지난해까지 한화에서 11시즌 동안 뛴 3루수 송광민(36)이 기록한 통산 OPS가 .782이고, KT에서 같은 포지션을 맡고 있는 황재균(32)이 한국 무대에서 11년 동안 남긴 통산 OPS가 .797입니다. 


▌2015~2018 프로야구 투타별 타격 기록
 구분  타율  출루율  장타력  OPS  BABIP  IsoP
 우투우타  .279  .349  .430  .780  .319  .151
 좌투좌타  .291  .362  .418  .780  .340  .127
 우투좌타  .292  .364  .433  .798  .344  .142


흔히 한국 언론에서 '인플레이 타율'이라고 표기하는 BABIP는 홈런이 아닌 페어 타구를 때렸을 때 타율을 나타냅니다.


BABIP도 타율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라운드 위에 떨어지는 강한 타구가 많을수록, 또 1루에 빨리 도달할수록 높은 숫자가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손으로 야구 공을 던지든 기본적으로 왼손 타자(좌투좌타, 우투좌타) 쪽 BABIP가 높게 나옵니다.


IsoP는 장타력에서 타율을 뺀 값으로 흔히 '순수 장타력(율)'이라고 번역합니다.


예를 들어 10타수 동안 단타 6개를 친 선수는 타율도 .600, 장타력도 .600입니다.


이 선수는 2루타 이상을 친 적이 없으니 장타력이 없는 선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타력에서 타율을 빼면 0이 나와서 이런 사실을 보여줍니다.


10타수 동안 2루타 하나, 홈런 하나를 기록한 선수도 타율은 .200이지만 앞서 본 선수와 똑같이 장타력은 .600입니다.


장타력은 당연히 이 선수가 더 높습니다. 마찬가지로 IsoP를 계산하면 .400이 나오니까 이 선수가 한 방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표에서 IsoP는 △우투우타 △우투좌타 △좌투좌타 순서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건 기본적으로 '타고난 왼손잡이' 가운데는 소위 '거포형' 선수가 적기 때문일 겁니다.


지난해 토종 선수 중 최다 홈런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선수 중에서는 두산 오재일(33)이 유일한 좌투좌타 선수였습니다. 


'타고난 오른손잡이' 가운데서는 우투좌타가 아무래도 원래 쓰지 않던 방향으로 힘을 써야 하기 때문에 우투우타를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도 풀이할 수 있을 겁니다.


역시 우투좌타였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1918~2002)는 그 유명한 책 '타격의 과학(The Science of Hitting)'에 "내가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선수이기도 했다면 더 좋은 타자가 될 수 있었을 것(I think I would have been a better hitter if I had also been a left-hand thrower)"이라고 남기기도 했습니다. (네, 엄살도 이런 엄살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지난해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로 뽑힌 한동민(30·SK·사진) 등 '성공한 우투좌타'는 또 다릅니다.


한 시즌에 20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로 범위를 좁히면 2016~2018년 우투좌타 IsoP는 .152로 우투우타(.153)와 사실상 차이가 없습니다.


OPS는 아예 우위입니다.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우투좌타는 평균 OPS .828로 우투우타(.784)가 쉽게 따라오기 힘든 성적을 남겼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우투좌타가 더 오래 살아 남는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윌리엄스(사진) 같은 우투좌타 선수가 더 뛰어난 결과를 남겼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 인간운동과학연구소 다비드 만 교수팀은 1871년부터 2016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뛴 선수 1만7564명이 던지고 치는 손에 따라 어떤 결과를 나타냈는지 분석한 논문을 써서 2017년 11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을 통해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을 보면 전체 메이저리그 선수 가운데 11.8%가 우투좌타였는데 이는 고교 선수와 비교하면 5.33배 높은 비율입니다. 그만큼 우투좌타가 메이저리거가 될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통산 타율이 .299 이상인 선수 가운데서는 우투좌타 비율이 31.6%로 더 올라갑니다. 그만큼 우투좌타가 높은 타율을 유지한 채 커리어를 마감할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우투우타는 숫자 자체는 제일 많지만(62.6%) 메이저리거가 될 확률도 낮고(고교 선수 0.29배) 통산 타율 .299 이상을 기록한 선수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44.3%)도 적습니다.


타고난 왼손잡이라고 할 수 있는 좌투좌타는 중간 수준입니다. 고교 선수보다 2.77배 많아서 메이저리거 될 확률은 우투좌타보다 낮지만 우투우타보다 높습니다.


좌투좌타는 전체 선수 가운데서는 15.9%, 통산 타율 .299 이상인 선수 가운데서는 21.0%를 차지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우투좌타 최다 홈런(612개·전체 8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짐 토미(49·은퇴)


물론 이 연구는 타율만 따졌다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야구 물리학'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앨런 네이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교수는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홈런 같은 지표를 기준으로 삼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면서 "순수하게 야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과에 회의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투좌타가 살아남을 확률이 제일 높은 종(種)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1809~1882)은 '종의 기원'에서 "살아남은 종은 가장 장한 종도, 가장 지능이 높은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빠르게 적응한 종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명예의 전당'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우투좌타 9.92배 △좌투좌타 2.08배 △우투우타 0.22배 차이라면 확실히 우투좌타는 특별한 구석이 있습니다.


만 교수는 "프로 선수에게 당장 (치는 손을) 바꾸라고 주문하는 연구 결과가 아니다. '아이들이 처음 타격을 배울 때 최선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다"면서 "우리는 아이들을 틀린 방향으로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양손으로 모두 쳐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 저는 만 교수 견해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머지 않은 미래에 우투좌타 타석 점유율이 40%는 물론 50%까지 넘어선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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