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 SSG와 안방 팀 LG가 맞붙은 지난달 13일 프로야구 잠실 경기.
SSG가 2-0으로 앞선 5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LG 김현수(34)가 타석에 들어왔습니다.
안타 한 방이면 최소 동점까지 기대할 수 있던 상황.
풀카운트 상황에서 SSG 선발 오원석(21)은 슬라이더를 선택했습니다.
김현수는 이 공이 '볼'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흘려 보냈지만 구명환(36) 구심 판단은 달랐습니다.
TV 중계 화면에 나온 네모 상자를 기준으로 하면 김현수 판단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이 블로그에 14년 전 썼던 것처럼 김현수는 정말 선구안이 빼어난 타자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구 심판은 스트라이크 판정 때문에 비판에 자주 시달리는 축에 속합니다.
단, TV 중계 화면에 나오는 네모는 홈플레이트 맨 앞 면을 기준으로 그린 2차원 공간입니다.
반면 야구 규칙은 홈플레이트 위 상공 전체 그러니까 3차원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에서는 스트라이크 존을 2차원으로 '압축'할 때 50%를 기준으로 삼는 게 '관례'입니다.
특정 코스로 들어왔을 때 50% 이상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영역을 스크라이크 존이라고 '간주'하는 겁니다.
'신동아' 3월호에 쓴 '베이스볼 비키니'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간단한 머신러닝 모형을 만들면 이런 확률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김현수가 삼진 판정을 받은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은 57.1%였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공이라고 할 수 있던 겁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스트라이크 존 정상화'를 표방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높은 쪽 코스에는 구심 손이 잘 올라가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스트라이크 존 상한선을 높이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역시 '베이스볼 비키니'를 통해 이 내용을 다루면서 "'스트라이크 존을 넓히자'고 외친다면 실제로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다"고 썼습니다.
당연히 올해도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습니다.
지난해 스트라이크 존과 1일 경기까지 올해 스트라이크 존을 비교하면 아래 그림처럼 나타납니다.
이 그림을 보면 일단 왼손 타자와 오른손 타자 모두 스트라이크 존이 위로 올라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왼손 타자는 바깥쪽(3루쪽) 낮은 코스로도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다는 게 눈에 띕니다.
이 그림에서 색을 칠한 네모 하나가 대략 야구공 하나 크기입니다.
왼손 타자는 야구공 8개, 오른손 타자는 야구공 7개 정도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습니다.
인간 심판은 일반적인 팬들 생각보다 스트라이크 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모릅니다.
단, 심판은 인간이고, 인간은 '회귀의 동물'이기에 이 '조정 스트라이크 존'은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대로 돌아가곤 합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조정하겠다고 밝힌 건 이번이 벌써 아홉 번째입니다.
그러니까 스크라이크 존은 처음부터 실재하는 게 아니라 바꾸고 또 바꾸고 또 바꾸면서 찾아가는 어떤 '이데아'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언젠가부터 위쪽 코스에 구심 손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해도 놀라지 마세요.
가까운 미래에 다시 한 번 스트라이크 존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