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해 윔블던 8강 탈락 후 코트를 떠나고 있는 로저 페더러. 런던=로이터 뉴스1

한국어로는 경기 시작 전 '다음 경기를 뛰지 않겠습니다'하고 발표하든 경기 도중에 '이대로 승부를 포기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든 전부 기권이라고 표현합니다.

 

반면 영어로는 시작 전에 기권을 선언하는 건 'withdrawal', 도중에 기권하는 건 'retirement'라고 구분합니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41·스위스)는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무대에서 총 1520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19번 'withdrawal'을 선택했지만 한 번도 'retirement'를 선언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월에 지칠 대로 지친 무릎은 더 이상 주인이 테니스 코트 위에 서는 걸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페더러가 테니스 선수 생활 처음으로 retirement(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페더러는 15일(이하 현지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내 테니스 가족과 그밖에 분들에게'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띄웠습니다.

 

페더러는 이 편지에 "테니스는 내가 꿈꿨던 것보다 훨씬 더 나를 관대하게 대해줬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이제는 내 선수 경력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가 됐다고 인정하는 게 맞다"며 은퇴 소식을 전했습니다.

 

 

페더러는 지난해 윔블던 8강에서 탈락한 뒤 한 번 더 무릎 수술을 받았습니다.

 

페더러는 당시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이 나이에 수술을 받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그래도 한번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페더러는 팬들에게 보내는 이번 편지를 통해 "다시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이제는 한계가 찾아왔다"고 인정했습니다.

 

페더러는 "테니스를 잘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한 나는 지구에서도 손꼽히는 행운아였다"고 자평했습니다.

 

2019년 레이법 당시 로저 페더러와 유럽 팀 동료. 제네바=로이터 뉴스1

페더러는 23일 영국 런던 O2 아레나에서 막을 올리는 2022 레이버컵을 통해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넬 예정입니다.

 

2017년 첫 선을 보인 레이버컵은 '유럽 팀 vs 세계 팀' 형태로 맞붙는 이벤트 대회입니다.

 

최근 1년 동안 대회에 나서지 않아 세계랭킹이 없는 페더러는 캐스퍼 루드(24·노르웨이·2위), 라파엘 나달(36·스페인·3위), 스테파노스 치치파스(24·그리스·6위), 노바크 조코비치(35·세르비아·7위), 앤디 머리(35·영국·43위)와 함께 유럽 팀 멤버로 이번 대회에 출전합니다.

 

무엇보다 나달 그리고 조코비치와 함께 선수 생활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점에서 테니스 팬들에게도 잊지 못할 은퇴 무대가 될 겁니다.

 

페더러가 처음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2003년 윔블던 이후 올해 US 오픈까지 메이저 대회는 총 77번 열렸습니다.

 

이 중 83.1%인 64번은 나달(23번) 아니면 조코비치(21번) 아니면 페더러(20번)가 남자 단식 챔피언이었습니다.

 

페더러는 "우리는 서로를 밀어 붙이면서 테니스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평했습니다.

 

페더러는 2009년 윔블던에서 생애 15번째 우승으로 피트 샘프러스(51·미국)를 넘어선 뒤로 올해 호주 오픈에서 나달에게 역전을 허용하기 전까지 12년 넘게 메이저 대회 최다승 주인공 자리를 지키던 선수였습니다.

 

페더러는 윔블던에서 8번, 호주 오픈에서 6번, US 오픈에서 5번 우승했습니다.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3개 대회에서 5번 이상 우승한 선수는 페더러가 유일합니다.

 

또 메이저 대회 개별 경기 승수(369승)에서는 여전히 페더러를 따라올 선수가 없습니다.

 

2위 조코비치도 334승으로 35승 차이가 납니다. 메이저 대회를 5번 우승할 수 있는 차이입니다.

 

페더러는 윔블던에서 105승(14패), 호주 오픈에서 102승(15패)을 기록했습니다.

 

2개 이상 메이저 대회에서 100승 이상을 거둔 건 남녀 단식을 통틀어 페더러뿐입니다.

 

사실 한 선수가 특정 메이저 대회에서 100승 이상을 거둔 걸 다 합쳐도 여섯 번밖에 없습니다.

 

남자 선수 가운데는 페더러가 남긴 두 케이스를 빼면 나달이 (당연히) 프랑스 오픈에서 112승(3패)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 단일 메이저 대회 100경기 이상 승리 기록
 순위  이름  성별  승  패
 ①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여  120  14
 ②  라파엘 나달  남  112  3
 ③  세리나 윌리엄스  여  108  15
 ④  로저 페더러  남  105  14
 ⑤  로저 페더러  남  102  15
 ⑥  크리스 에버트  여  101  12

 

페더러는 2005년 윔블던부터 2007년 US 오픈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10회 연속으로 결승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ATP 역사상 최장 기록입니다. 이 기간 페더러는 프랑스 오픈에서만 두 차례 나달에게 패했을 뿐 나머지 대회에서는 전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8년 호주 오픈 준결승에서 조코비치에 패하면서 기록을 마감한 페더러는 그해 프랑스 오픈부터 2010년 호주 오픈 때까지 8회 연속 결승에 올랐습니다.

 

이 메이저 대회 8회 연속 결승행이 10회 연속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긴 연속 결승 진출 기록입니다.

 

페더러는 또 2004년 윔블던부터 2010년 호주 오픈까지 23회 연속 메이저 대회 4강 진출 기록도 남겼습니다.

 

2004년 윔블던부터 2013년 프랑스 오픈 때까지 36회 연속으로 8강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두 기록 모두 남자 테니스 역사상 최장 기록입니다.

 

36회 연속으로 8강에 올랐다는 건 9년 동안 메이저 대회 1~4라운드에서 140전 전승을 기록했다는 뜻입니다.

 

세계랭킹 이야기도 물론 빼놓을 수 없습니다.

 

페더러는 2004년 2월 2일부터 2008년 8월 11일까지 237주 연속으로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부문 2위 지미 코너스(70)가 160주 연속이니까 페더러가 1년 반 가까이 앞서는 셈입니다.

 

지난해 3월 8일 기준으로 조코비치에게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물러나기 전까지는 최장 기간(310주) 랭킹 1위 기록 보유자이기도 했습니다.

 

페더러는 지금도 최고령(36세 314일) 랭킹 1위 기록 보유자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올해 윔블던 기간 열린 올잉글랜드테니스클럽 센터코트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로저 페더러. 런던=로이터 뉴스1

요컨대 페더러는 테니스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건 모두 다 이루고 떠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 성(姓)이 로마자 X로 시작하는 선수는 끝내 이기지 못했습니다.

 

페더러는 물론 돈도 많이 벌었고자기 이름을 딴 재단을 통해 자선 기부 활동에도 열심이었습니다.

 

요컨대 코트 안팎에서 페더러는 참 대단하고 또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2019 호프먼컵에 참석해 '셀카'를 찍는 세리나 윌리엄스(왼쪽)와 로저 페더러. 퍼스=로이터 뉴스1

페더러가 등장한 뒤로 테니스가 달라진 것처럼 페더러가 떠난 테니스도 예전과는 다를 겁니다.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41·미국)마저 코트를 떠나기로 한 상황이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들과 함께 나이가 들 수 있던 건 테니스 팬 한 사람으로서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덕분에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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