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플로리다(현 마이애미)에서 데뷔한 마이크 마이어스(50·사진)는 2007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총 9개 팀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한 팀에서 평균 1.4년 정도밖에 머물지 못한 셈입니다.
그래도 평균 투구 이닝에 비하면 1.4는 큰 숫자입니다. 마이어스는 메이저리그에서 13년 동안 총 883경기에 나와 541과 3분의 2이닝을 소화했습니다. 평균적으로 아웃 카운트 두 개도 잡기 전에 마운드에서 내려왔던 겁니다. 13년 중 10년은 아예 경기당 평균 이닝이 3분의 2이닝 미만이었습니다.
사실 마이어스는 1994년 플로리다 산하 AAA 팀 에드먼턴에서 뛸 때만 해도 선발 자원이었습니다. 마이어스는 이해 에드먼턴에서 총 12경기에 등판했는데 이 중 11경기가 선발이었고, 경기당 평균 5이닝 이상을 소화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선발 등판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운명이 바뀐 건 1995년 8월 9일(이하 현지시간)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 된 다음이었습니다. 당시 디트로이트 팀 해설위원을 맡고 있던 명예의 전당 회원 알 칼라인(85)이 그에게 '언더핸드로 공을 던져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던 것.
마이어스는 몇 차례 실험 끝에 투구폼을 바꾸면 슬라이더가 잘 통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마이어스는 선발 자원이 아니라 LOOGY(Lefty One Out Guy) 그러니까 왼손 원포인트 투수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결과도 성공적이었습니다. 마이어스는 메이저리그 13년 동안 왼손 타자를 .219/.304/.332로 묶었습니다. OPS(출루율+장타력)로 바꾸면 .635. 참고로 김일경(41)이 프로야구에서 13년 동안 뛰면서 남긴 통산 OPS가 .635입니다.
반면 오른손 타자는 마이어스를 상대로 .301/.400/.478을 기록했습니다. KIA 나지완(34)이 지난해(2018년)까지 프로야구 무대에서 기록한 통산 OPS가 .874니까 마이어스는 왼손 타자를 김일경으로 만드는 동안 오른손 타자에게는 실컷 두드려 맞았던 셈입니다.
그러니 왼손 원포인트 투수라는 전술이 규칙상 불가능했다면 마이어스가 메이저리그에서 총 1081만3166달러(약 121억5000만 원)를 벌지 못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니면 오른손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왼손 언더핸드 딜리버리를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입니다.
이미 은퇴한 지 12년이 지난 무명(?) 투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쓴 건 메이저리그에서 왼손 원포인트 투수가 멸종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6일 온라인 매체 '디 애슬래틱(The Athletic)'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한 번 등판한 투수는 최소 세 타자를 상대해야 마운드에서 내려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 규칙을 변경하자고 선수 노동조합에 제안한 상태입니다. 현재 규칙으로는 한 타자만 상대하면 투수 교체가 가능하기에 '원 포인트'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왜 이런 제안을 했을까요? 그래야 투수 교체 횟수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투수 교체 횟수를 줄이려고 할까요? 그래야 경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등판한 구원 투수는 경기당 평균 3.36명이었습니다. 1998년에는 경기당 평균 2.46명이었으니까 20년 동안 0.9명이 늘어났습니다. 그 사이 평균 경기 시간도 2시간 52분에서 12분이 늘어 3시간 4분이 됐습니다.
이렇게 규칙을 바꾸면 LOOGY가 일자리를 잃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선수 노조에서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사무국에서는 반대 급부로 내셔널리그에도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자는 의견도 내놓은 상태. 다만 이 제안 역시 나오고, 또 나왔던 '떡밥'이라 선수 노조에서 '당근'이라고 생각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나저나 규칙을 이렇게 바꾸면 9회 1사에 위기가 찾아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SPN은 이와 함께 현재 25명인 현역 로스터 숫자를 26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단, 이때도 투수는 12명 이상 현역 로스터에 포함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 한 경기라도 등판한 투수는 총 799명으로 역시 리그 역사상 최다 기록이었습니다.
투구 시간 제한(20초)도 당연히 검토 대상입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공 하나를 던지는 데는 평균 24.1초가 걸렸습니다. 10년 전(2008년)과 비교하면 2.4초가 늘어난 결과. 지난해 메이저리그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297개였으니까 이 인터벌 차이만으로도 경기 시간이 12분 늘어납니다.
투구 간격이 늘어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수비 시프트입니다. 수비수가 자리를 옮기는 동안 투수는 공을 던질 수가 없으니까요.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미 수비 시프트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던 상태. 투구 시간을 제한하면 수비 시프트가 더욱 줄어들 확률도 높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또 마운드 높이를 낮추는 방안도 연구하자고 선수 노조에 제안했습니다. 요컨대 경기 시간을 줄이면서 공격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이란 방안은 전부 끌어 모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다시 야구를 던지고, 치고, 달려서 점수를 내는 스포츠로 만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