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25장 40절
메이저리그 볼티모어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었나 봅니다. 김현수(28·사진)가 결국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볼티모어 내부 사정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소식을 다루는 국내·외 언론 기사도 쏟아지는 중입니다.
이런 기사를 보면 메이저리그 초보 팬에게는 참 낯선 용어가 등장합니다.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여러분만 그런 게 아니니까요. 어지간히 메이저리그 봤다고 하는 분도 헷갈릴 만큼 메이저리그 계약 체계는 복잡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저리그 선수 계약 구조를 한번 따져 보겠습니다. 물론 모든 제도를 한번에 다 살펴볼 수는 없고, 메이저리그 에이전트를 할 게 아니라면 사실 모두 알고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번 김현수 사태를 필요하는 데 알고 있으면 좋을 개념만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25인 로스터 ⊂ 40인 로스터
가장 기본이 되는 건 '25인 로스터'입니다. 이 25명은 오늘 당장 메이저리그 경기에 나설 수 있는 현역 선수입니다. 메이저리그 각 구단은 이 25명에 최대 15명을 더해 총 40명까지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흔히 '40인 로스터'라고 부르는 개념입니다. 달리 말해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은 선수 중에서도 15명은 마이너리그에서 뛰거나 7일 또는 15일짜리 부상자 명단(DL)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야 합니다.
메이저리그 단체협약(CBA)에 따라 이 25인 규정은 일반적으로 미국 동부 시간 기준 개막일 오후 3시부터 8월 31일 오후 11시 59분까지 유효합니다. 9월 1일이 되면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장할 수 있는 선수가 40명으로 늘어납니다. 이때는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선수 누구나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장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시즌이 되면 로스터가 다시 25명으로 줄어듭니다. 역시 미국 동부 시간 기준 8월 31일 밤 12시를 기준으로 △25인 로스터 △부상자 명단 △위로 휴가자 명단(the bereavement list) △출장정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 선수만 포스트시즌에 출장할 수 있습니다. 단, 부상 선수가 끝내 회복하지 못해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출전할 없을 때는 커미녀서 승인을 얻어 다른 선수가 대신 출장할 수 있습니다. (위로 휴가는 가족이 위독하거나 숨졌을 때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한국 프로야구 10개 팀도 원하는 만큼 선수와 계약할 수 있지만 보류(保留)선수 명단에는 63명(등록선수는 65명·군 입대 선수 제외)까지만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 65명 중에서 27명이 1군 현역 엔트리에 이름을 올립니다. (매일 1군 경기에 투입 가능한 선수는 26명.) 팀에서 정한 65번째 선수 다음은 육성선수(옛 연습생·신고선수)로 계약해야 합니다. 또 9월 1일이 되면 1군 엔트리가 32명으로 5명 늘어납니다.
5년 뛰면 누구나 얻는 마이너리그 거부권
2008년 처음 롯데 지휘봉을 잡은 제리 로이스터 감독(64·사진)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팀에서 1군 선수를 마음대로 퓨처스리그(2군)로 보냈던 것. 로이스터 감독은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자기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메이저리그-마이너리그 관계와 한국 프로야구 1군-2군 시스템이 달라서 생긴 일입니다.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보내려면 '마이너리그 옵션'을 써야 합니다. 이 옵션은 일반적으로 세 시즌 동안 유효합니다. 선수가 한 시즌 동안 마이너리그에 머문 기간이 도합 20일 이상이 되면 옵션을 한 번 사용한 걸로 간주합니다. 그러다 이 옵션을 세 번 모두 쓰고 나면 더 이상 구단 마음대로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낼 수 없습니다.
옵션을 모두 다 쓴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보낼 때는 한국 언론에서 지명할당, 지명양도, 방출대기 등으로 번역하는 'DFA(Designated For Assignment)'를 거쳐야 합니다. DFA는 선수를 그저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40인 로스터에서 이름을 빼는 걸 뜻합니다. 메이저리그 계약에서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풀 타임(172일 이상)으로 5년 이상 소화한 베테랑 선수는 누구나 구단에서 마이너리그 옵션을 쓰겠다고 해도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마이너리그 거부권'입니다. 선수가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행사하면 구단은 계속 해당 선수를 25인 로스터에 포함시키거나 아니면 남은 연봉을 보장하고 방출해야 합니다. 남은 연봉을 보장한다는 건 방출 당한 선수가 현재 연봉보다 적은 금액으로 새로 계약했을 때 차액을 보상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김현수는 어떻게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을까?
메이저리그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풀타임 6년을 소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FA는 모두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습니다. 볼티모어에 FA로 입단한 김현수가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는 것도 큰 틀에서는 같은 이유입니다.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경력이 제로(0)지만 볼티모어에서 한국 프로야구 경력을 인정해 똑같은 내용을 계약서에 넣어준 겁니다.
김현수가 현재 계약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FA가 계약이 끝나면 FA가 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니까요. 역시나 김현수는 메이저리그에서 6년을 채우지 못한 채 FA 계약을 맺었지만 한국 경력을 높게 평가해 같은 내용을 넣어준 겁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민훈기 SPOTV 해설위원이 틀렸습니다. 민 위원이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하는 '민기자 코리언 리포트'를 잠시 보겠습니다.
김현수는 2년 후에는 당연히 FA, 즉 프리 에이전트가 됩니다. 계약서에는 'Player will be XX B Free Agent at the end of contract'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FA가 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에 XX B FA는 '외국의 주요 프로리그에서 5년 이상 뛰었고 23세 이후에 MLB와 계약한 선수의 계약이 종료되면 획득하는 FA 자격'입니다.
아닙니다. 보류(reserve)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메이저리그 CBA XX조 B항 제목이 그냥 'Free Agency(사진)'입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10년 이상 뛰고 메이저리그로 건너온 선수는 계약 기간이 끝나면 메이저리그 경력에 상관 없이 FA가 됩니다. 한국은 아직 이런 조항이 따로 없기 때문에 김현수 계약서에 이 내용이 들어간 겁니다.
제가 위에 "FA 자격을 얻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쓴 건 '논텐더(Non-tender) FA'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 낱말 'tender'에는 (계약을) 제시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구단에 보류권(保留權)이 있었는데도 계약을 제시하지 않아 (연봉 조정 신청 자격을 갖춘) 선수가 풀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논텐터 FA가 됩니다. 실질적으로 전 한화 한상훈(36)이 자유계약선수가 된 것하고 같은 방식입니다.
볼티모어 외야에서 마이너리그 거부권 없는 선수는?
3일 오후 12시 현재 볼티모어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5인 로스터(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선수는 모두 28명입니다. 결국 이 중 3명은 개막 25인 로스터 제출 데드라인 전까지 마이너리그행 통보를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 관심사는 김현수니까 다른 포지션은 볼 것 없이 아직 25인 로스터 후보로 남아 있는 외야수 5명만 보겠습니다.
Outfield
# | Name | B/T | Ht | Wt | DOB | |
---|---|---|---|---|---|---|
10 | Adam Jones | R/R | 6'2" | 215lbs | 8/1/85 | |
25 | Hyun Soo Kim | L/R | 6'2" | 210lbs | 1/12/88 | |
14 | Nolan Reimold | R/R | 6'4" | 205lbs | 10/12/83 | |
23 | Joey Rickard | R/L | 6'1" | 185lbs | 5/21/91 | |
45 | Mark Trumbo | R/R | 6'4" | 225lbs | 1/16/86 |
4년 연속 올스타로 뽑힌 중견수 애덤 존스(31)는 일단 제외. 2012년 올스타 출신 마크 트럼보(30)도 주전 우익수 자리를 확보했습니다. 두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보낼 일도 없겠지만 마이너리그 옵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룰 5 드래프트로 데려 온 조이 리카드(25) 역시 볼티모어에서 개막전 라인업에 포함시키겠다고 한 만큼 규칙에 따라 25인 로스터에서 제외하면 안 되는 선수입니다.
그러면 김현수와 놀란 레이몰드(33)가 남습니다. 8번째 메이저리그 시즌을 맞이하는 레이몰드 역시 마이너리그 옵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김현수는 계약서에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남아 있는 외야수 중에서 구단 마음대로 마이너리그로 보낼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볼티모어는 이 중 △메이저리그에서 자기 실력 증명을 가장 덜 했고(아예 한 적이 없고) △스프링캠프에서 제일 부진했으며 △심지어 나이도 가장 어린 김현수를 마이너리그로 보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도 결국 김현수는 '마이너리그로 가기 싫다'고 했으니 일단 제5 외야수로 시즌을 맞이할 확률이 제일 높습니다. 볼티모어가 그러기 싫으면 김현수를 방출해야 하는데 700만 달러(약 80억6400만 원)는 절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볼티모어가 계속 김현수와 함께할지도 의문입니다. 미국 스카우트가 혹평한 걸 보면 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국내 관계자 이야기도 허튼 소리로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결국 김현수의 메이저리그 생존법은 당장 몇 번 찾아오지도 않을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방법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