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메이저리그(왼쪽), 마이너리그 로고. 마이너리그 홈페이지

미국에는 프로야구 리그가 몇 개 있을까요?

 

일단 내셔널리그(NL)아메리칸리그(AL)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프로야구리그협회(NAPBL) 소속 11개 리그가 운영 중입니다.

 

NL과 AL은 예나 지금이나 메이저리그라고 부르고 NAPBL은 이제 마이너리그라는 표현을 더 널리 씁니다.

 

예전에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총칭하는 '조직 야구(organized baseball)'라는 표현도 썼습니다.

 

이 조직 야구에 속하지 않은 리그도 최소 8곳이 현재 운영 중입니다.

 

이 8개 리그를 일컬을 때는 '독립 리그'라는 표현을 씁니다.

 

내셔널리그(왼쪽), 아메리칸리그 로고. 위키피디아 공용

NL에 속한 A 팀이 AL 소속 B 팀에서 뛰는 선수를 데려오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트레이드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트레이드는 유식한 말로 '선수 계약 양도(讓渡)'라고 씁니다.

 

B 팀이 이 선수와 맺고 있던 계약을 A 구단에서 넘겨받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유계약선수(FA)라면 반대급부 없이 새로 계약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독립 리그에서 뛰던 선수를 영입하고 싶을 때는 기본적으로 계약을 사야 합니다.

 

유럽 프로축구처럼 원소속 구단에 이적료를 주고 이 선수와 새로 계약을 맺는 방식입니다.

 

메이저리그 '팜 시스템'의 아버지 브랜치 리키 전 세인트루이스 단장.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

그렇다면 메이저리그 팀이 마이너리그 팀 선수를 데려오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PDC(Player Development Contracts)' 그러니까 '선수 교육 위탁 계약'입니다.

 

메이저리그와 각 마이너리그도 서로 다른 리그라 원래는 독립 리그에서 선수를 데려올 때처럼 이적료를 주고 계약을 사야 했습니다.

 

그러다 1921년 양대 리그와 NAPBL은 메이저리그 구단이 마이너리그 구단을 소유할 수 있도록 협정을 맺습니다.

 

브랜치 리키(1881~1965) 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단장이 이를 활용해 소위 '팜(farm) 시스템'을 고안합니다.

 

마이너리그에서 선수를 직접 키워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키는 전략을 생각해 낸 겁니다.

 

리치 단장 재임 기간(1919~1942년) 카디널스는 내셔널리그 우승을 여섯 번(1926, 1928, 1930, 1931, 1934, 1942년) 차지했습니다.

 

유럽 5대 프로축구 리그

이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하려면 유럽 프로축구를 떠올리면 됩니다.

 

유럽에는 나라(지역)별로 프로축구 리그가 있는데 그중 △독일스페인이탈리아잉글랜드프랑스 리그를 '빅 5'로 손꼽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시 미국에도 프로야구 리그가 여럿 있었는데 그 가운데 NL, AL을 '메이저'로 꼽았던 겁니다.

 

그리고 이 두 리그가 마음대로 선수를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다른 리그가 힘을 모아 만든 조직이 NAPBL입니다.

 

그러다 예컨대 FC 바르셀로나가 산마리노 리그 소속 팀을 직접 운영하면서 유망주를 키워내는 게 가능하도록 규정을 손질합니다.

 

바르셀로나가 이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팀도 이를 따라 하겠죠?

 

이게 발전한 형태가 바로 PDC입니다.

 

2019년까지는 인터내셔널리그(IL)라고 부르던 동부와 퍼시픽코스트리그(PLC)라고 부르던 서부

NL과 AL 그리고 NAPBL은 1962년 PDC 개념을 도입하면서 메이저리그 팀이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 소속 선수와 독점적으로 계약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로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메이저리그 팀이 마이너리그 구단을 직접 운영할 때만 이런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사라진 겁니다.

 

대신 메이저리그 구단은 마이너리그 구단을 직접 운영하지 않을 때도 선수단 전체 임금을 부담해야 합니다.

 

어떤 선수가 메이저리그 구단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는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런 계약을 맺는 선수는 마이너리그 팀 소속으로 마이너리그 경기를 뛰지만 임금은 메이저리그 팀에서 받는 겁니다.

 

만약 이렇게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있는 선수를 메이저리그로 불러올리고 싶을 때는 이 계약을 사서 메이저리그 계약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40명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확장 로스터'에 이 선수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40인 로스터 소속 선수는 메이저리그 계약

40인 확장 로스터는 1921년 그러니까 메이저리그 구단이 마이너리그 구단을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등장한 제도입니다.

 

이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야 메이저리그 경기 출전이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이 40명이 한꺼번에 '현역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 중에서도 26명만 오늘 당장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할 수 있습니다.

 

1968년부터 2019년까지는 이 현역 로스터가 26명이었는데 2020년부터 26명으로 늘었습니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은 선수 가운데도 14명은 현역 로스터에서 빠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14명 중 10일 또는 15일짜리 부상자 명단(IL) 등재 인원을 제외한 선수 대부분이 마이너리그 팀에서 뜁니다.

 

마이너리그 옵션이란 무엇인가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고 있는 상태로 마이너리그 팀에서 뛰는 데도 제약 조건이 있습니다.

 

부상에서 회북 중인 케이스를 제외하면 '마이너리그 옵션'이 남아 있는 선수만 이런 식으로 마이너리그에서 뛸 수 있습니다.

 

어떤 선수가 40인 로스터에 처음 이름을 올리면 마이너리그 옵션 세 개가 생깁니다.

 

이 선수가 마이너리그에서 20일 이상을 보내면 이 옵션 하나가 줄어듭니다.

 

시즌이 기준이라 1년 동안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사이를 몇 번 오가도 줄어드는 옵션은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40인 로스터 등재 후 3년 동안에는 이 옵션이 남아 있는 겁니다.

 

물론 선수 생활 중간에 마이너리그 생활을 하지 않은 기간이 있었다면 그 이후에도 마이너리그 옵션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규약 6(e)

그러다 이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5년 이상을 보내고 나면 마이너리그 옵션이 남아 있어도 구단 마음대로 이를 쓸 수 없게 됩니다.

 

한국 언론에서 흔히 '마이너리그 거부권'이라고 번역하는 권리를 얻게 되는 겁니다.

 

이런 선수는 본인이 동의했을 때만 딱 한 번 마이너리그로 보낼 수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리그 등에서 뛰다 온 선수는 메이저리그 데뷔 때부터 이 권리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너는 메이저리그 경력은 없지만 '짬'을 인정해 주겠다"고 하면 이 내용을 계약서에 넣으면 그만입니다.

 

마찬가지로 '데뷔 첫해가 아니라 그 이듬해부터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주겠다'고 하면 메이저리그 4년 차로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데뷔 첫해에 부진했을 때는 구단에서 DFA(Designated For Assignment) 처리를 하면 되기 때문에 2년 차부터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얻는 건 큰 의미가 없을 때도 많습니다.

 

DFA는 또 무엇인가

한국 언론에서 △방출대기 △지명양도 △지명할당 등으로 번역하는 DFA는 40인 로스터에서 선수를 제외하는 행정 절차를 가리킵니다.

 

40인 로스터에서 제외한다는 건 이 선수와 맺었던 메이저리그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시즌 도중에 계약을 해지하려면 '웨이버'라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선수가 필요 없으니 혹시 필요한 팀이 있으면 데려다 쓰세요'라고 알리는 절차가 웨이버입니다.

 

사흘(3일) 동안 웨이버 공시를 하고 나서 클레임을 건 = 이 선수를 원한다는 의사 표시를 한 팀이 없을 때만 구단은 이 선수를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으로 내려보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꼼꼼하게 읽으신 분 가운데는 이 절차가 '트레이드'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눈치를 채신 분도 계실 겁니다.

 

A 리그 소속 팀과 계약하고 있던 선수를 B 리그 소속 팀으로 보내면서 계약을 양도하는 거니까요.

 

현재 마이너리그 구조.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이런 이유로 한국 또는 일본 프로야구 1군-2군과 메이저리그-마이너리그 관계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또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1군 선수를 2군에 보낸다고 해도 이 선수를 다른 구단에 빼앗길 우려가 없습니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갈 때는 옵션이 남아 있는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이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DFA를 통해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냈는 건 계약을 완전 양도(outright assignments)하는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면서 '경험치'를 먹어야 하는 저연차 선수에게는 마이너리그 옵션이 있는 겁니다.

 

웨이버 공시 기간 클레임을 통해 선수가 이동하는 것 역시 절차상으로는 선수 계약 양도 = 트레이드에 해당합니다.

 

아, 메이저리그 경력이 3년 이상이고 DFA를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선수는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하고 FA를 선언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1야전군 사령부 마크

종합하면 메이저리그를 '1군'에 비유하는 표현은 적확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속팀은 물론 리그까지 옮기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PDC 때문에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일이 1, 2군을 오가는 것과 비슷하게 보일 뿐입니다.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미국 무대에 진출한 한국 선수를 DFA 처리하면 '방출대기'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건 대부분 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방출하는 건 맞지만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바꿔서 팀 조직에 계속 남으라고 할 때도 DFA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마이너리그 옵션을 쓰고 있던 선수를 DFA할 때도 '40인 로스터 한 자리를 비워줘' 정도로 받아들이면 대부분 맞습니다.

 

노파심에 한 가지 더. 원래 NL와 AL은 1999년까지는 개별 리그였지만 = 사무국이 따로 있었지만 2000년부터 통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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