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교체 과정에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낱말이 바로 '웨이버(waiver)'입니다. 위에 인용한 kt 보도자료처럼 보통 공시(公示)라는 낱말이 따라 붙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공시는 "공공 기관이 권리의 발생, 변경, 소멸 따위의 내용을 공개적으로 게시하여 일반에게 널리 알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웨이버는 뭘까요? 두산동아 프라임영어 사전은 웨이버를 △법에서 권리 포기 또는 포기 증서 △(프로 선수의) 공개 이적(移籍)을 뜻한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웨이버 공시는 '프로 선수의 공개 이적을 일반에게 널리 알리는 일 정도'가 될 겁니다. 그저 (외국인) 선수를 방출하는 게 웨이버 공시가 아니었던 겁니다.
계속해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 규약'을 보면 '공개 이적'이 무슨 뜻인지 좀더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제93조 [웨이버] 구단이 참가활동기간 중 소속선수와의 선수계약을 해제하거나 포기하고자 하는 경우 제94조 및 제95조의 절차에 따라 다른 구단에게 당해 선수계약을 양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이하 "웨이버"라 한다.) 또한 7월 24일 웨이버 공시 신청 마감일을 넘긴 경우 8월 15일 추가등록일까지 임의탈퇴 등 신분 변경을 금지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팀에서는 이 (외국인) 선수와 계약을 해제 또는 포기하려고 하니 필요하면 데려다 쓰세요"하고 알리는 행위가 바로 웨이버인 셈입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kt에서는 저 보도자료를 살짝 잘못 썼습니다. 왜냐하면 웨이버를 공시하는 주체는 구단이 아니라 KBO이기 때문입니다.
제94조 [웨이버 공시] ① 제93조에 따라 선수계약을 해제 또는 포기하고자 하는 구단은 매년 7월 24일까지 총재에게 당해 선수계약에 관한 웨이버를 신청하여야 한다.
② 총재는 제1항 소정의 웨이버 신청이 있는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실을 웨이버 선수에게 통보하고, 이를 공시한다.
따라서 구단은 KBO에 웨이버 공시를 요청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보통 다른 구단에서도 보도자료를 낼 때 그런 표현을 쓰고 말입니다. kt에서 어윈(28)을 방출했다는 소식을 전한 이 연합뉴스 기사는 '신청했다'는 표현을 썼네요.
잠깐 위에서는 방출이 아니라면서요? 원칙적으로는 방출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같은 규약 제99조 때문입니다.
제99조 [양도신청이 없는 경우의 특례] 제95조에 따른 선수계약의 양도신청이 없는 웨이버 선수는 총재가 웨이버를 공시한 날로부터 7일이 되는 날의 다음 날부터 자유계약선수로 신분이 변경된다. 다만, 어느 구단도 그 선수와 당해 연도 선수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여기서 제95조는 웨이버 공시된 선수를 데려가려는 생각이 있는 구단은 공시한 날로부터 1주일 이내에 KBO 총재에게 그 뜻을 알려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한 팀에서 방출당한 외국인 선수를 데려가겠다고 나서는 일이 벌어질 확률은 퍽 희박한 게 현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방출이 되는 겁니다. (아, 제99조에 나오는 자유계약선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FA 신분이 아니라 보류선수 명단에 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럼 (외국인) 선수가 이 웨이버를 거부할 수는 없는 걸까요? 물론 있습니다. 역시 같은 규약 제8조.
제98조 [웨이버 거부] ① 선수는 웨이버를 거부할 수 있다.
② 웨이버를 거부하고자 하는 선수는 총재가 웨이버를 공시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웨이버를 거부한다는 취지의 서면을 총재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③ 제2항 소정의 서면이 총재에게 제출된 날에 구단과 웨이버 선수 간의 선수계약은 자동으로 해제되며, 해당 웨이버 선수는 임의탈퇴선수로 신분이 변경된다.
또 새로운 개념이 나왔습니다. 그럼 '임의탈퇴선수'는 뭘까요? 이번에도 KBO 야구 규약에 답이 들어 있겠죠?
제31조 [임의탈퇴선수]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총재는 당해 선수를 임의탈퇴선수로 공시한다.
1. 선수가 참가활동기간 또는 보류기간 중 선수계약의 해제를 소속구단에 신청하고 구단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선수계약이 해제된 경우
2. 선수가 선수계약의 존속 또는 갱신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인정되어 구단이 선수계약을 해제한 경우
3. 제59조 제2항 제1호에 의하여 보류기간이 종료한 경우
4. 기타 KBO 규약에 의하여 임의탈퇴선수로 신분이 변경된 경우
5. 임의탈퇴선수는 공시일부터 선수단 훈련에 참가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한 경우 구단에게는 제재금 1천만원을 부과하고, 당해선수는 위반이 확인된 날부터 만 2년간 소속 및 육성선수로 등록할 수 없다.
② 임의탈퇴선수의 탈퇴 당시 소속구단이 총재에게 제1항 소정의 공시를 말소할 것을 요청하여 총재가 위 공시를 말소한 경우 당해 선수는 위 공시의 말소일로부터 자유계약선수로 신분이 변경된다.
③ 임의탈퇴선수가 KBO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제8장 소정의 절차에 의하여야 한다.
원래 임의탈퇴라는 말은 영어 표현 'Voluntary Retirement'를 번역한 것. 위에서는 1을 제외하면 그런 뉘앙스를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단에서 마음대로(임의로) 선수를 '탈퇴시켰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듭니다. 마지막 문장에 있는 "제8장 소정의 절차" 일부를 가져오면 더욱 그렇습니다.
제66조 [복귀신청] ① 임의탈퇴선수는 총재가 당해 선수를 임의탈퇴선수로 공시한 날로부터 1년이 경과한 날부터 복귀를 신청할 수 있다.
제68조 [복귀구단] 복귀하는 선수는 탈퇴 또는 실격처분 당시의 소속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
그러니까 임의탈퇴선수 신분이 되면 최소 1년은 프로야구에서 뛸 수 없고, 그것도 임의탈퇴 '처분을 내린' 구단하고만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국인) 선수는 웨이버 공시를 거부해봤자 아무 이득이 될 게 없는 겁니다. 게다가 KBO 외국인선수 고용 규정'에 따르면 외국인 선수가 임의탈퇴선수 신분이 되면 구단은 잔여 기간 연봉을 지금하지 않아도 됩니다. 계약서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외국인 선수로서는 웨이버를 받아들이는 쪽이 일단 더 나은 상황인 겁니다.
그런데 임의탈퇴선수로 묵였는데도 다른 구단하고 계약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해 넥센에서 웨이버 공시를 요청했던 나이트(40)가 바로 그런 케이스. 원래 삼성에서 뛰던 나이트는 2010년 8월 임의탈퇴로 팀을 떠났지만 넥센에서 삼성에 임의탈퇴 해제를 요청했고, 삼성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넥센에서 활약할 수 있었습니다. 무릎 부상을 안고 있던 노장 외국인 선수인데다 당시 넥센이 약팀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나이트는 2011년 삼성 상대 평균자책점 7.01을 기록하며 고마움을 전했습니다(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