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 라두카누(19·영국·세계랭킹 150위)가 서브 에이스로 '신데렐라 인 뉴욕' 스토리를 완성했습니다.
22년 만에 10대 맞대결로 열린 올해 US 오픈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 결정전 승자는 결국 라두카누였습니다.
라두카누는 11일(현지시간) 대회 결승전에서 레일라 페르난데스(19·캐나다·73위)에게 2-0(6-4, 6-3) 승리를 거뒀습니다.
결승전이 열린 미국 뉴욕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를 가득 채운 팬 2만3000명은 기립박수로 신데렐라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이날 우승으로 라두카두는 오픈 시대 들어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예선부터 시작해 정상까지 오른 선수가 됐습니다.
테니스에서 오픈 시대는 프로 선수에게 메이저 대회 문호를 개방한 1968년 이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더욱 대단한 건 라두카누가 예선 1회전부터 결승전까지 10경기에서 모두 2-0 승리를 기록했다는 것.
이 역시 앞으로 53년이 다시 지나도 보기 힘든 시나리오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경기 | 이름 | 랭킹 | 1세트 | 2세트 | 시간 |
예선 1회전 | 비비안 슈프스 | 285위 | 6-1 | 6-2 | 1시간 1분 |
예선 2회전 | 마리암 볼크바제 | 167위 | 6-3 | 7-5 | 1시간 37분 |
예선 3회전 | 마야르 샤리프 | 96위 | 6-1 | 6-4 | 1시간 14분 |
1회전 | 슈테파니 푀겔레 | 128위 | 6-2 | 6-3 | 1시간 18분 |
2회전 | 장슈아이 | 49위 | 6-2 | 6-4 | 1시간 22분 |
3회전 | 사라 사리베스 토르모 | 41위 | 6-0 | 6-1 | 1시간 10분 |
4회전 | 셸비 로저스 | 43위 | 6-2 | 6-1 | 1시간 6분 |
8강 | 벨린다 벤치치 | 11위 | 6-3 | 6-4 | 1시간 22분 |
준결승 | 마리아 사카리 | 18위 | 6-1 | 6-4 | 1시간 24분 |
결승 | 레일라 페르난데스 | 73위 | 6-4 | 6-3 | 1시간 51분 |
본선만 따졌을 때도 US 오픈에서 무실(無失) 세트 우승을 기록한 건 2014년 세리나 윌리엄스(40·미국·22위) 이후 올해 라두카누가 처음입니다.
예선을 통과해야 했다는 건 랭킹이 낮았다는 뜻입니다.
라두카두는 역대 메이저 대회 여자 단식 챔피언 가운데 가장 랭킹이 낮은 선수이기도 합니다.
단, 이본 굴라공(70·호주)은 1977년 호주 오픈(12월), 킴 클레이스3터르스(38·벨기에)는 2009년 US 오픈 정상에 오를 때 랭킹이 아예 없던 적이 있습니다.
출산으로 코트를 오래 떠나 있던 바람에 랭킹 포인트를 모두 잃었던 것.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이전에 랭킹 1위를 기록한 적이 있었습니다. 라두카두는 150위가 개인 최고 랭킹입니다.
영국 선수로 메이저 대회 여자 단식 챔피언에 오른 것도 1977년 윔블던 당시 버지니아 웨이드(76) 이후 라두카누가 44년 만에 처음입니다.
라두카누는 원래 예선전이 끝나고 귀국할 비행기 표를 미리 끊어둔 상태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메이저 대회에 두 번째 참가하는 선수에게는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생에 두 번째로 출전한 메이저 대회에서 여자 단식 챔피언에 오른 것 역시 라두카누가 처음입니다.
이전 기록은 네 번. 모니카 셀레스(48·당시 유고슬라비아)가 1990년 프랑스 오픈에서, 비앙카 안드레스쿠(21·캐나다·7위)가 2019년 US 오픈에서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결승전 프리뷰에 썼던 것처럼 캐나다 라두카누는 루마니아 출신 아버지와 중국계 캐나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덕에 영어는 물론 (바로 위에 있는 유튜브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표준 중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하고 루마니아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롤모델로 시모나 할레프(30·루마니아·13위)와 리나(李娜·중국·39) 두 선수를 꼽는 것도 이런 출생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소위' 다문화적 배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 살지만 태어난 곳은 캐나다 토론토이기 때문에 라두카두는 두 나라 국적을 모두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모두 금융계에 종사하는 덕분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라두카두는 어릴 때부터 운동과 공부에 모두 재능을 보인 '엄친딸'로 컸습니다.
라두카두는 일단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한 테니스 이외에도 골프 농구 모토크로스(오토바이) 발레 스키 승마 카트 탁구 등을 두루 섭렵한 만능 스포츠우먼입니다.
공부로는 영국에서 상위 5%만 입학할 수 있는 공립 영재 학교(그래머 스쿨)에 다녔고 올해 영국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A 레벨 테스트'에서 수학과 경제학에서 A 학점을 받았습니다.
2018년부터 프로 테니스 선수로 전향했지만 A 레벨 테스트 준비 때문에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에는 세 번만 나섰을 뿐입니다.
사실 토론을 좋아하는 라두카누는 프로 테니스 선수가 아니라 변호사가 '장래희망'이었습니다.
라두카누는 "메이저 대회 우승을 항상 꿈꿨지만 이렇게 빨리 꿈을 이룰 줄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나게 뛰면서 대회에 최대한 오래 머물러 보자'는 생각으로 한 경기, 한 경기씩 치렀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덧붙였습니다.
라두카누는 계속해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는 전혀 모르겠다. 매 순간을 계속 즐기면서 살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페르난데스는 랭킹 5위 안에 드는 선수를 3명이나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지만 결국 마지막 문턱 하나를 넘지 못했습니다.
페르난데스는 3회전부터 계속 풀 세트 경기를 치른데다 에린 라우틀리프(26·뉴질랜드)와 짝을 이뤄 복식 경기에도 출전했습니다.
그 때문에 총 16시간 47분 동안 경기를 뛰었습니다. 이는 라두카누(11시간 34분)보다 5시간 13분 더 긴 시간입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 나선 페르난데스는 트로피 시상을 앞두고 '원 모어 씽(One More Thing)'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오늘(9월 11일)이 뉴욕 시민 그리고 미국인에게 어떤 날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난 20년간 뉴욕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더 강하고 뛰어난 회복력을 갖춘 선수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윔블던을 앞두고 썼던 것처럼 여자 테니스는 누가 챔피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
그러면서 오히려 팬들 관심이 떨어지는 침체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올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나란히 '신데렐라 스토리'를 쓴 두 선수가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내년에는 또 다시 열국지(列國志)를 쓰게 될까요?
모처럼 나란히 '쇼를 훔친' 두 선수를 조금 더 자주 높은 곳에서 지켜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