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나 윌리엄스(37·미국·사진 왼쪽)는 역시 '정말 괜찮은' 엄마입니다. 윌리엄스는 지난해 9월 1일(이하 현지시간) 딸 올림피아를 낳은 뒤 이번 시즌 다시 코트로 돌아왔습니다. 임신과 출산 때문에 대회에 많이 출전하지 못해 세계랭킹(현재 26위)은 낮지만 올해 윔블던 결승에 진출하면서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 로저스컵 조직위원회는 대회 개막을 이틀 앞둔 4일 "윌리엄스가 개인 사정을 이유로 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알려왔다"고 전했습니다. 지난달 24일 조직위에서 윌리엄스에게 특별출전권(와일드카드)을 발급한 지 12일 만이었습니다. 윌리엄스는 2001, 2011, 2013년 이 대회 우승자입니다.
Serena Williams has withdrawn from @CoupeRogers for personal reasons.
— Caroline Cameron (@SNCaroline) 2018년 8월 4일
윌리엄스가 정확하게 이유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해석이 나왔습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이유로 꼽힌 건 충격패 후유증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윌리엄스는 지난달 31일 무바달라 실리콘 밸리 클래식 1회전에서 요해나 콘타(27·영국·48위)에게 51분 만에 0-2(1-6, 0-6) 패했습니다. 윌리엄스가 딱 한 게임밖에 따지 못하고 경기를 내준 건 1995년 프로 데뷔 이후 이 경기가 처음이었습니다.
Overnight in San José, Serena Williams suffered the worst defeat of her 23 year professional career.
— BBC Tennis (@bbctennis) 2018년 8월 1일
Beaten 6-1 6-0 by Johanna Konta. pic.twitter.com/VLFm2Vx3RK
실제로는 콘타가 아니라 딸 올림피아가 문제(?)였습니다. 윌리엄스는 7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난주 내내 침울(in a funk)하고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산후우울증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3년도 간다고 들었다"며 "엄마와 자매 친구들과 엄청 수다를 떤 결과 '내가 부족한 엄마'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적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윌리엄스는 "나 말고도 엄마들 대부분이 이런 감정을 느낄 거다. 그래서 꼭 이야기하고 싶다. 만약 힘든 하루나 일주일을 보내고 있어도 그냥 정말 괜찮은 거라고 말이다"라는 말로 글을 끝맺었습니다.
윌리엄스가 이런 감정을 표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윌리엄스는 지난달 7일에도 "연습을 하느라 딸이 첫 발걸음을 떼는 걸 보지 못해 울었다"고 트위터에 남기기도 했습니다.
She took her first steps... I was training and missed it. I cried.
— Serena Williams (@serenawilliams) 2018년 7월 7일
이럴 때 제일 행동을 잘해야 하는 사람은 역시 남편. 지난해 11월 16일 윌리엄스가 결혼식을 올린 알렉시스 오헤니언 레딧 공동 창업자(35)는 "저녁에 이탈리아 음식이 먹고 싶다"는 아내에게 이탈리아 베네치아 여행을 선물했습니다. (유머겠죠, 설마?)
윌리엄스가 산후우울증을 잘 극복하고 WTA 역사상 네 번째로 출산 후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획득하는 선수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이미 세 명이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마거릿 코트(76·호주)가 첫번째 케이스. 코트는 1972년 아들 대니얼을 낳은 뒤 돌아와 1973년 한 해에 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US 오픈 타이틀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호주 오픈 때 윌리엄스가 그랬던 것처럼 코트 역시 1971년 윔블던 때 임신한 몸으로 일정을 소화해 결승까지 진출했습니다.
당시 윔블던 결승에서 코트를 꺾었던 이본 굴라공(67·호주)도 1977년 5월 딸 켈리를 낳은 뒤 그해 12월에 열린 호주 오픈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이해부터 일정을 조정했기 때문에 1977년에는 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 후 1980년 윔블던에서도 우승했습니다. 출산 후 윔블던 정상을 차지한 건 아직까지 굴라공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엄마 챔피언'은 킴 클레이스터르스(35·벨기에). 클레이스터르스는 2008년 딸 야다 엘르를 낳은 뒤 2009년 코트로 돌아와 그해 US 오픈 정상에 섰습니다. 2010년에 US 오픈 2연패에 성공한 그는 2011년 호주 오픈 우승도 경험했습니다. 클레이스터르스가 출산 전에 메이저 대회 단식 정상에 오른 건 2005년 US 오픈 한 번밖에 없었습니다.
윌리엄스만 네 번째 '엄마 챔피언'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닙니다. 2012년과 2013년 호주 오픈 챔피언에 올랐던 빅토리야 아자란카(29·벨라루스·95위)도 2016년 12월 아들 레오를 낳은 뒤 코트를 누비고 있습니다. 올해 윔블던 16강에서 윌리엄스와 맞붙은 예브게니아 로디나(29·러시아·79위)도 여섯 살짜리 딸 아나와 함께 투어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테니스는 유리천장을 뚫은 대표적인 종목이고, 지난해(2017년) 호주 오픈 때는 사상 최초로 남녀 단식 결승 모두 30대 맞대결로 펼쳐지는 등 갈수록 선수 생활이 길어지고 있는 종목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여자 챔피언 시상대에 자녀가 함께 오른다고 해도 놀라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