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해 열린 동아일보기 전국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천시청 정구부. 동아일보DB


누구나 남을 깎아 내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혹시 그게 자기 밑바닥을 드러내는 건 아닌지 조심해야 합니다.


먼저 중부일보에서 6일 보도한 "이천 체육지원센터장 '파리채 놀이' 정구 비하발언 법적 책임 불가피" 기사부터 읽어보겠습니다.


6일 시와 시민들에 따르면 권덕상 시 체육지원센터 소장이 지난 2일 이천시청 내부망에 '이섭학당(직장경기부 3개팀)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짱구반(정구부)의 특징은 파리채 비슷한 기구를 가지고 즐기는 놀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섭학당 관리인이라고 자칭한 권 소장은 이어 "나라 안에 짱구 놀이를 즐기는 학당(실업팀)이 8개가 있고 학생(선수)은 70여명이 된다"고 밝혀 대한민국 정구를 비하한 것도 모자라 "이섭학당 짱구반(이천시청 정구부)이 전국 최고로 잘 한다고 하는데 우습기도 하고 기가 차기도 한다"고 말해 이천시청 정구팀의 정통성 자체를 무시했다.


경기 이천시청은 정구(소프트테니스)와 마라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실업팀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11일 각 운동부 감독과 선수를 불러 모은 뒤 일방적으로 해체를 통보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종철 이천시의회 의장마저 "조례상 기구인데 기본적으로 협의를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 시의회를 외면하면서까지 일방적으로 해체하는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을 정도로 비판이 거셌습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구단주(?)가 팀을 없애겠다는 뜻이 확고하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그러니 Let's go with that.


그렇다고 해서 지방직 5급 공무원이 '파리채' 어쩌고 조롱해도 좋을 만큼 대한민국 소프트테니스가 허접한 존재일까요?


이천시청 소속으로 2014 인천 아시아경기 남자 단식 금메달을 차지한 김형준. 동아일보DB


일단 소프트테니스는 올림픽 종목이 아닙니다.


이건 어떤 종목 관계자가 '우리 팀을 살려주세요'하고 이야기할 때 불리한 요소입니다.


대신 아시아경기(아시안게임)에서는 1994년 히로시마(廣島) 대회 때부터 소프트테니스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습니다.


이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까지 한국은 일곱 차례 아시아경기에서 △금 25개 △은 15개 △동 16개 등 메달을 총 56개 따냈습니다.


아시아경기 소프트테니스에서 금메달을 제일 많이 딴 나라도 대한민국이고, 전체 메달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도 한국입니다.


대만이 금메달 8개, 전체 메달 34개로 각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까 차이가 작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히로시마 대회 때 한국에 소프트테니스 첫 금메달을 안긴 주인공이 바로 이명구(52) 현 이천시청 감독입니다.


당시 '이천군청' 소속이던 이 감독은 순천대 유영동(46·현 NH농협은행 감독)과 함께 당시 남자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2014년 인천 대회 때도 이천시청 소속 김형준이 대표팀 에이스 김동훈(31·현 NH농협은행 코치)을 물리치고 남자 단식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이 정도면, 적어도 5급 공무원 한 사람보다는, 이천시청 소프트테니스부가 우리 사회에 이바지한 게 더 많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국위선양(國威宣揚)' 따위는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인가요?


국위선양이 얼마나 촌스러운지 제1조 '목적'에서 '국위선양'이라는 문구를 빼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지난달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국민체육을 진흥하여 국민의 체력을 증진하고, 건전한 정신을 함양하여 명랑한 국민 생활을 영위하게 하며, 나아가 체육을 통하여 국위 선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 현행 '국민체육진흥법' 제1조


국민체육진흥법이 바뀐 건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체육 단체장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개정안도 2018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예전에는 지자체장이 각 지역 체육회장도 맡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이천시장이 이천시체육회장도 맡았던 건 겁니다.


그러다 이 개정안이 올해 1월 16일부터 효력을 발생하면서 이날 이후에는 '민선' 체육회장에게 자리를 내주게 됐습니다.


실제로 이천시체육회장 자리도 엄태준 시장에서 정원진 전 이천시체육회 수석 부회장에게 넘어갔습니다.


그 전에는 시장·군수가 각 시군 체육회장이었으니까 시·군청 소속 운동부가 전국체육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그게 곧 시장·군수 '업적'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 기사 그리고 이 포스트 또 이 기사를 통해 말씀드린 것처럼 지자체는 열심히 실업팀을 운영했습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체 실업팀 977개 가운데 50.1%인 489개 팀이 지자체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군수가 체육회장이 아니니 '예산을 들여 가면서' 팀을 운영할 필요가 크게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이천시청 전경. 동아일보DB


남해원 이천시체육지원센터 체육진흥팀장이 '경인일보'에 기고한 '시민들이 공감하는 직장운동경기부를 새롭게 창단하겠다'를 보면 이런 문제의식이 잘 드러납니다.


지난 1985년부터 시작된 이천시청 직장운동경기부는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이천시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수 년 동안 전국적으로 직장운동부 운영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이천시청 직장운동경기부도 생활체육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시민들의 우려와 질타가 지속되는 가운데 운동부 운영상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이천시는 임용기간에 대한 문제와 보수체계, 선수선발, 중복 수당지급에 의한 시금낭비, 운동경기부별 균형문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재임용 등의 문제가 노출되면서 지난해 조례 등 개정을 통해 잘못 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중략)


이천시는 시민들과 공감하고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직장운동경기부, 시민들의 생활체육활성화와 체육인구 저변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종목을 발굴하여 새롭게 창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시는 지난 8월 13일 이천시체육회와 이천시장애인체육회가 소속 가맹단체 전체를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 직장운동경기부 희망 종목을 추천해 줄 것을 의뢰하고 새로운 종목의 창단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어떤 종목이 선정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며 다만 시민들이 세금 사용에 대해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경기종목이기를 희망한다.

요컨대 이천시는 지금까지 예산을 들여 열심히 '비인기 종목 엘리트 운동부'를 키웠지만 '생활 체육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으니 앞으로 '세금 사용에 대해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종목 운동부를 새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런 결정에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국제 스포츠 대회 성적이 올라간다고 우리 삶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종목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이 스포츠 강국이 된 방식이 비정상적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 꿈을 비웃을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꼭 소프트테니스를 '파리채 놀이'에 비유해야 '체육을 통한 시민의 주민의식 함양, 체육을 통한 시민과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건가요?


공무원은 법과 공문으로 말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지방공무원법 제51조는 "공무원은 주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어떤 법령에도 공무원이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어떤 종목을 폄훼해도 괜찮다는 조문은 없습니다.


이천시 내부망을 자기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올려도 된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역시 없습니다.


센터장님, 그 어떤 분야에서라도, 아시아 최강 아니 전국 최강으로 인정받은 적 있으신가요?


이천시청 홈페이지에 자랑스레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그 '짱구반' 아이들은 적어도 자리에 오르고 또 올랐답니다.


아직 인생이 많이 남았으니 센터장님이 어디까지 올라가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센터장님 바닥이 어디까지인지는 이번 기회를 통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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