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아시안게임)가 2일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제일 주목할 만한 결과라면 일본이 대회 종료일 기준으로 1982년 이후 36년 만에 처음 2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거꾸로 얘기하면 한국이 1986년 서울 대회 이후 32년 만에 처음으로 2위 자리를 내놓게 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회 종료일을 기준으로 한 건 1994년 히로시마·廣島 대회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대회 종료 시점에는 한국이 2위였지만 이후 중국 선수들이 약물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3위였던 일본이 금메달 1개 차이 2위로 올라섰습니다.)


이럴 때는 대한체육회장이 한마디 하셔야겠죠? 이기흥 체육회장은 이날 자카르타에서 열린 선수단 해단식에서 "현재 우리는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바뀌는 전환점에 와 있다. 학교체육 활성화와 스포츠클럽 확대 등 체육의 저변을 확대해 그 토양에서 국가대표가 나오는 선진국형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생활체육을 제아무리 강조한다고 해도 엘리트 체육에서 성과가 나오지는 않으니까요. 바로 일본이 이 사실을 보여준 나라입니다.



일본 스포츠 성공 비결은 한국 따라 하기!


일본은 1964년 도쿄(東京),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연이어 종합 3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자 생활체육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88 서울 올림픽 때 일본은 14위로 내려앉았고, 1996년 애틀랜타에서는 23위까지 순위가 내려갔습니다. 2000년 시드니 대회 때는 15위.


그 사이 일본은 생활체육 강국이 됐으니 엘리트 체육 성적은 아무 의미가 없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일본체육협회에서 일본올림픽위원회(JOC)를 분리하면서 엘리트 체육 강화에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한국 따라 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체육과학연구원(현 한국스포츠개발원)을 본따 2011년에는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國立スポーツ科學センター)를 만들었고, 2007년에는 태릉선수촌을 모델로 한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도 문을 열었습니다.



결과도 성공적. 일본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금메달 12개, 은메달 8개, 동메달 21개로 6위를 차지하며 8위 한국(금 9, 은 3, 동3)에 앞섰습니다. 계속해 이번 아시아경기 때는 한국(49개)보다 26개 많은 금메달(75개)을 따내면서 한국을 저만치 따돌리게 됐습니다.


물론 (대)기업도 이 과정에서 촉매 구실을 했습니다. NTC부터 공식 명칭이 '아지노모토(味の素) 내셔널 트레이닝 센터'입니다. 아지노모토는 일본을 대표하는 식품(조미료) 회사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진천선수촌 문을 열면서 이름을 '미원선수촌'이라고 붙인 셈입니다.


당연히 기업에서 선수도 후원합니다. 특히 육상이나 수영 등 기초 종목 선수가 많습니다. 리우 올림픽 때 수영 남자 개인 혼영 금메달리스트 하기노 고스케(萩野公介·24)는 타이어 회사 브리지스톤 직원이고,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육상 100m를 9초98에 뛴 기류 요시히데(桐生祥秀·23)는 닛세이(日生·일본생명) 소속입니다.



삼성 대신 ○○시청


한국도 그렇지 않냐고요? 네, 그랬었죠. 이제는 분위기가 살짝 다릅니다. 이번 아시아경기 때 수영 여자 개인혼영 금메달을 딴 김서영(24)은 경북도청, 육상 여자 허들 110m 금메달을 목에 건 정혜림(31)은 광주시청 소속입니다. 여자 사이클에서 4관왕을 차지한 나아름(28)은 (경북) 상주시청. 그러니까 이들은 사기업체 직원이 아니라 '계약직 공무원'인 겁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인기 종목 실업팀을 유지하는 이유는 전국체육대회 때문. 이제는 스포츠팬 대부분에게 외면 받는 대회지만 지자체 관점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릅니다.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고 왔는데도 전국체전 1회전에서 탈락했다는 이유로 팀이 사라질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팀이 결과적으로 비인기 종목에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의도부터 그렇다고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업이 비인기 종목에 돈을 쓰면 어떻게 될까요? 펜싱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 펜싱은 2003년 SK텔레콤에 후원을 시작하면서부터 탈(脫)아시아 레벨로 올라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펜싱은 이번 아시아경기 때도 금 6, 은 3, 동 3으로 종목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면 거꾸로 기업이 손을 떼면 성적이 내려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 최대 후원자는 삼성이었습니다. 한창때 삼성은 레슬링 배드민턴 빙상 승마 육상 탁구 태권도 등 7개 종목 '회장사'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빙상에서도 손을 떼면서 이제는 육상 하나만 남게 됐습니다. 한때 효자 종목으로 손꼽히던 배드민턴은 2년 전 리우 올림픽(사진)에서는 동메달 하나밖에 따지 못했고, 이번 아시아경기 때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노메달'에 그쳤습니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를 생각하면 앞으로 이렇게 특정 종목을 후원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얼마나 될지 알기도 쉽지 않습니다. 당장 이번 아시아경기 때도 조용했잖아요?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스포츠 마케팅을 활용할 기회를 꼭 한국에서 찾아야 할 필요 역시 전혀 없는 게 사실이고 말입니다.



비인기 종목까지 꼭 잘해야 하나?

맞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국제 스포츠 대회 성적이 올라간다고 우리 삶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종목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난번에 쓴 것처럼 한국이 스포츠 강국이 된 방식이 비정상적이었던 게 사실이고, 이번 아시아경기를 통해 그 한계가 드러났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스포츠 강국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요? 그 이후 한국 스포츠는 어떤 모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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