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로배구 '슈퍼 쌍둥이' 이다영(왼쪽), 이재영. 동아일보DB


"이재영-다영 쌍둥이가 한 팀에서 뛰는 일은 없어야 한다."


프로 스포츠 리그에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제)이 존재하는 이유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쓸 수 있을 겁니다.


특정 팀에만 스타(급) 선수가 몰려 전력이나 마케팅 측면에서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려는 안전장치가 샐러리캡이니까 말입니다.


9일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단장 모임)는 일단 여자부 샐러리캡에 인공호흡기를 붙이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오늘자 '[IN&OUT]'을 통해 말씀 드린 것처럼 지금까지는 '흥국생명 vs 나머지 5개 팀 연합' 구도로 논쟁을 이어왔습니다.


5개 팀 연합은 △2020~2021 시즌 샐러리캡을 16억 원으로 올리고 옵션캡 4억 원을 만들고 △선수 한 명에게 샐러리캡 25%(4억 원) + 옵션캡 50%(2억 원)까지 지급할 수 있도록 하며 △다음 시즌부터 곧바로 연봉을 공개하고 원천징수영수증 등으로 샐러리캡 준수 여부를 확인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흥국생명은 △2020~2021 시즌 20억 원, 2021~2022 시즌 25억 원, 2022~2023 시즌 25억 원 + 옵션캡 5억 원으로 순차적으로 샐러리캡을 올리고 △선수 개인 몸값에 상한선을 두지 말고 △2022~2023 시즌부터 샐러리캡 준수 여부를 검증하자고 맞섰습니다.


요컨대 5개 팀 연합은 흥국생명이 이번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이재영(흥국생명), 이다영(현대건설·이상 24) 쌍둥이와 모두 계약하려고 억지를 부린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반면 흥국생명은 "5개 구단이 선수단 몸값을 깎아 내리려 담함하고 있다"고 반발했습니다.


흥국생명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구단에서 선수단 몸값을 깎아 내리려고 답함'하고 싶어서 세상에 샐러리캡이 있는 겁니다.


흥국생명은 지난(2018~2019) 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한 팀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정규리그 3위였지만 '봄 배구'가 열렸다면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전력이었습니다.   


게다가 남녀부 13개 팀을 통틀어 (KOVO에서 목을 매는) 평균 TV 시청률이 시즌 제일 높은 팀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혼자만 잘 나가는 팀이 없도록 하려는 게 바로 샐러리캡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날 이사회에서도 흥국생명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5개 팀 연합은 '샐러리캡 18억 원 + 옵션캡 5억 원'을 수정안으로 제시했습니다.


계속 옵션캡이 따로 나오는 건 프로배구가 아주 이상한 샐러리캡을 운영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남자부 샐러리캡 규정을 손질했을 때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까지 프로배구에서는 '계약서에 명기된 기준연봉'만 샐러리캡을 지키면 옵션으로는 얼마를 주든 관계가 없었습니다.


5개 팀 연합은 이렇게 한걸음 양보했지만 흥국생명은 당초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사회 참석자들은 표결을 통해 한 쪽 방안을 선택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결론은 물론 '18억 + 5억 원'이었습니다.



5개 팀 연합이 표결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선수 한 명에게 '샐러리캡 25%(4억5000만 원) + 옵션캡 50%(2억5000만 원)'까지만 줄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살아 남았습니다.


이에 따라 흥국생명은 이재영에게 다음 시즌 연봉으로 최대 7억 원까지만 제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재영은 이번 시즌 이미 여자부 연봉 3위(3억2000만 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이다영은 연봉 1억8000만 원으로 공동 9위였지만 현대건설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기 때문에 몸값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흥국생명이 이번 FA 시장에서 두 선수를 모두 붙잡을 수 없는 건 아닙니다. 


흥국생명이 아니라 그 어떤 팀이라도 두 선수를 영입하고 싶다면 전체 샐러리캡을 23억 원 밑으로만 맞추면 됩니다.


샐러리캡이 있는 미국 프로 스포츠 리그에서 '반지 원정대'가 등장할 때처럼 말입니다.


이다영(왼쪽)과 이재영 쌍둥이. 동아일보DB


그러나 아마 흥국생명은 (다른) 방법을 찾을 겁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정말 KOVO에서 곧이 곧대로 선수단 몸값 검증을 시작하면 문제가 되는 구단이 흥국생명 하나일 확률은 사실 제로(0)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7억 원이 선수 한 명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금액은 아닙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샐러리캡, 옵션캡과 별도로 팀당 최대 3억 원까지 승리 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허락하기도 했습니다.


3억 원은 팀이 챔피언 결정전까지 전승을 거뒀을 때 팀원 전체가 나눠 갖는 돈이지만 그 돈뭉치 안에 또 어떤 길이 숨어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7년 연속으로 프로배구 연봉 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대건설 양효진.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위'로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현재 70%인 샐러리캡 최소 소진율을 50%로 내리기로 했습니다.


예전에는 샐러리캡이 14억 원일 때도 선수단 몸값 총액으로 9억8000만 원은 지급해야 했는데 이제는 18억 원으로 샐러리캡이 올라도 9억 원만 써도 되는 겁니다.


만약 어떤 팀은 선수단 몸값으로 최소 9억 원만 쓰는데 다른 팀은 23억 원을 전부 쓴다고 치면 선수단 몸값 총액은 2.6배 차이가 나게 됩니다.


이렇게 팀별 연봉 차이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샐러리캡을 유지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샐러리캡을 운영 중인 미국(북미) 리그를 보면 2019~2020 시즌 기준으로 선수단 몸값을 제일 많이 쓰는 팀과 제일 적게 쓰는 팀 사이에 미국프로농구(NBA)는 1.2배,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는 1.3배, 북미프로아이스하키리그(NHL)는 1.4배 차이가 전부입니다.


아직 샐러리캡을 채택하지 않은 한국 프로야구도 올 시즌 기준으로 1.7배 차이가 전부입니다.


작전 시간 도중 활짝 웃고 있는 KGC인삼공사 선수단.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종합하면 여자부 6개 구단 안에는 여전히 '배구에 쓰는 돈이 아깝다'는 팀도 있고, 돈을 더 못 써서 안달인 팀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샐러리캡을 없애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샐러리캡만 없으면 '슈퍼 쌍둥이 팀'도 세상에 나올 수 있고 '우승도 필요 없다. 그저 조용히 팀만 유지하고 싶다'는 팀도 경제적으로 살림을 꾸려갈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팬들 눈높이는 이미 저만큼 올라갔는데 행정은 아직도 한참 뒤쳐진 느낌적인 느낌을 떨쳐 내기가 쉽지 않은 여자부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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