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유니폼을 바꿔 입은 현대캐피탈 주장 문성민(왼쪽)과 대한항공 주장 한선수.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 이 정도면 너나 할 것 없이 현대캐피탈과 '유니폼 교차 광고' 이벤트를 벌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은 2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5라운드 맞대결을 벌일 때부터 상대 모기업 로고를 새겨 넣은 유니폼을 입고 뜁니다.


맨 위에 있는 사진에서 보신 것처럼 현대캐피탈은 'KOREAN AIR'라고 쓴 유니폼을 입고, 대한항공은 'Hyundai Card'라고 쓴 유니폼을 입는 것.


3위 현대캐피탈은 이날 대한항공에 2-3으로 무릎을 꿇은 걸 시작으로 3승 3패에 그쳤습니다. 그 결과 6라운드 여섯 경기에서 승점 8점을 추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현재 승점은 53점. '봄 배구' 티켓을 따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 현대캐피탈이지만 이제 2위 이상을 노리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반면 대한항공은 이 경기에서만 승점 2점에 그쳤을 뿐 6라운드 다섯 경기에서 모두 승점 3점을 챙기며 승점 17점을 더했습니다.


그러면서 승점 62점을 확보하면서 4라운드까지 최강이었던 우리카드(64점)를 승점 2점 차이로 추격했습니다.


OK저축은행(44점), 삼성화재(39점), KB손해보험(30점)은 나란히 승점 7점을 더했고 한국전력(23점)은 9연패에 빠지면서 승점 3점을 더하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대한항공 곽승석. 한국배구연맹(KOVO)


• 국가대표 주전 세터 한선수(35)가 공격을 조율하는 팀이 서브 리시브까지 된다면 상대팀으로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게 당연한 일.


대한항공은 5라운드 때 리시브 성공률 45%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어떤 팀도 한 라운드에 이렇게 높은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팀 전체 서브 리시브 가운데 39.1%를 책임진 곽승석(32)이 리시브 성공률 51.6%로 이번 라운드에서 제일 높은 기록을 썼습니다.


그 덕에 대한항공은 팀 공격 효율 .419로 라운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역시 좋은 세터는 좋은 서브 리시브는 더 좋은 공격으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혹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 봐 밝히면 저는 서브 리시브가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지 서브 리시브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절대 아닙니다.




우리카드 하승우.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 우리카드는 이번 라운드를 통해 이제 '두께'까지 확보한 팀이 됐습니다.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은 하승우(25)를 5라운드 막판 두 경기 선발 세터로 내보냈습니다. 주전 세터 노재욱(28)이 고질적인 허리 통증을 호소했기 때문.


이 두 경기에서 하승우가 띄운 세트(토스)를 받아 때려 우리카드 선수들이 기록한 공격 효율은 .456이었습니다.


이번 라운드 때 이보다 높은 효율로 팀 공격을 이끈 세터는 대한항공 한선수(.470) 한 명뿐이었습니다.


하승우 혼자가 아닙니다. 백코트에서 한성정(24)이 서브 리시브 성공률 51.7%를 기록하면서 부진에 빠진 황경민(24)의 빈자리를 지웠습니다.


하승우와 룸메이트 사이인 한성정은 "(어릴 때부터 친구 사이였던) 황경민이 뛰는 걸 보면서 '(왜 내가 아니라) 황경민이 코트에 나설까' 많이 생각했다. 결국 이유는 서브 리시브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감독님께서 항상 추구하시는 게 서브 리시브, 디그(상대 득점을 막아 내는 수비)다. 감독님 말씀처럼 '뒤에서 잔잔한 배구'를 하는 살림꾼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캐피탈 박주형.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 거꾸로 현대캐피탈이 부진에 빠진 이유도 역시 '뒤에서 잔잔한 배구'를 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


박주형(33)은 4라운드 때까지 서브 리시브 성공률 47.8%(3위)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5라운드 때는 이 기록이 35.9%(16위)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보니 대각에 서는 전광인(29)에게 부담이 쏠렸습니다.


1~4 라운드 때는 상대 서브 가운데 3분의 1(33.4%)을 받았던 전광인이 5라운드 때는 45.1%를 받아야 했던 건 꼭 대표팀 일정으로 자리를 비웠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그러면서 공격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1~4라운드 때 .348이었던 공격 효율이 5라운드 때는 .252까지 떨어진 상황.


요컨대 현대캐피탈이 살아나려면 전광인이 살아나야 하고, 전광인이 살아나려면 박주형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리고 세터 얘기는…


현대캐피탈 팬들 정신 건강을 감안해 생략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박주형이 흔들린 가운데서도 현대캐피탈은 서브 리시브 성공률 41.6%로 이번 라운드 2위를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OK저축은행 최홍석.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 5라운드 때 승점 7점을 더한 OK저축은행도 4라운드(승점 11점)보다 못했지만 현대캐피탈이 부진한 덕을 봤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봄 배구' 진출에 실낱 같은 희망이 살아 있는 상황.


남자부 준플레이오프는 3, 4위 사이 승점 차이가 3점 이내일 때만 열리고 현재 두 팀은 승점 9점 차이입니다.


6라운드 맞대결에서 OK저축은행이 이긴다고 가정하면 남은 5경기에서 승점 3점 차이를 줄어야 합니다.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6라운드 초반 일정이 좋은 건 일단 고무적인 부분. 


OK저축은행은 KB손해보험(26일), 한국전력(29일)과 맞붙는 걸로 마지막 라운드 일정을 시작합니다. 또 두 경기 모두 안방 경기입니다.


일단 두 경기에서 모두 승점 3점을 따야 그다음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키플레이어는 최홍석(32). 무엇보다 이제 한 번 터질 때도 되지 않았겠습니까?



신직신 감독과 남성고 동문인 삼성화재 송희채와 김형진.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 삼성화재는 5라운드 첫 세 경기에서 연달아 패하면서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7연패에 빠졌습니다. 그 전까지는 4연패 이상 당한 적이 없던 삼성화재였습니다.


'발리볼 비키니'를 통해 말씀드렸 것처럼 삼성화재는 서브 리시브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확률이 제일 높은 팀입니다. 그러니까 서브 리시브를 잘하면 이기고 못하면 집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캐피탈을 3-1로 물리친 18일 경기야 말로 신직신 감독이 꿈꾸던 그대로 흘러간 경기였을 겁니다.


삼성화재는 이날 서브 리시브 성공률 46.6%를 기록하면서 현대캐피탈(31.7%)에 앞섰습니다.


그 덕에 이 팀 주전 세터 김형진(25)은 고준용(31) 박철우(35) 송희채(28)에게 골고루 공을 띄울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키 플레이오는 송희채입니다. 4라운드 노우트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렇게 송희채가 살아야 삼성화재가 삽니다.


그러나 5라운드 때도 송희채는 서브 리시브 성공률 31.3%를 기록하는 데 그쳤고 삼성화재는 승점 7점 추가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KB손해보험 김정호와 마테우스.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이 노우트 시리즈를 쓸 때마다 KB손해보험에 대해 드리는 말씀을 거의 똑같습니다. 숫자와 선수 이름만 달라질 뿐입니다.


KB손배호험은 5라운드 6경기에서 공격을 총 612번 시도했습니다. 이 가운데 외국인 선수 마테우스(23·브라질)가 공격한 건 몇 번일까요?


정답은 297번입니다. 이를 비율로 바꾸면 48.5%가 됩니다. 남자부 7개 팀 선수 가운데 그 누구도 이렇게 공격 점유율이 높지 않았습니다.


결과도 좋습니다. 마테우스는 5라운드 때 공격 효율 .397을 기록했습니다. 공격을 51개 이상 시도한 선수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기록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요?' 


추측컨대 KB손해보험은 마테우스에서 (상호 옵션을 포함해) 2년 계약을 제시했을 겁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내년에 마테우스가 계속 뛴다고 해도 이 정도가 한계일 겁니다.


어차피 그렇다면 차라리 국내 선수들하고 조금 더 손발을 맞추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난 시즌 5라운드 때도 이 팀에 있던 펠리페(32·브라질·현 우리카드)가 실컷 공을 때렸지만 KB손해보험은 무얼 얻었죠? 



한국전력 김명관.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 그런 점에서 한국전력이 김명관(23)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건 긍정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명관은 경기대 출신으로 올 시즌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때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장신(197㎝) 세터입니다.


이번 라운드 들어 김명관이 공을 띄웠을 때 팀 동료가 기록한 공격 효율은 .261.


원래 한국전력 주전 세터였던 이호건(24)의 올 시즌 전체 기록이 .354니까 어찌됐든 '당장'을 생각하면 이호건을 쓰는 게 낫습니다.


그러나 모교 인하대를 9관왕으로 만들었던 그 이호건과 한국전력 이호건은 갈수록 다른 선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호건에게 긴장감을 불러 넣는 목적이라고 해도 김명관이 코트에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게 나쁜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 마무리는 늘 엇비슷한 문장. 프로배구에서는 한 라운드가 끝난다고 휴식기가 있는 게 아닙니다.


당장 내일(23일) 의정부에서 안방 팀 KB손해보험과 우리카드가 6라운드 첫 경기를 벌입니다.


이번 시즌에는 경기 말고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모쪼록 별 탈 없이 시즌을 마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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