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서브를 준비 중인 대한항공 비예나.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대한항공 외국인 선수 비예나(27·스페인)가 27일 안방 경기에서 재미있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비예나는 OK저축은행과 맞붙은 이날 경기 3세트 3-1 상황에서 서브 차례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는 서브를 넣고, 또 넣고, 또 넣고, 또 넣고, 또 넣고, 또 넣고, 또 넣고, 또 넣고, 또 넣고, 또 넣고, 또 넣었습니다.


비예나 서브 차례에서 대한항공은 총 10점을 올렸고 그 가운데 절반(5점)이 비예나의 에이스였습니다.


서브 득점에 성공하는 비예나.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결국 비예나의 이 서브 차례는 13-2가 되고 나서야 끝이 났습니다.


11번 연속으로 서브를 넣은 건 프로배구 남자부 역사상 2위에 해당하는 기록.


2014~2015 시즌 현대캐피탈에서 뛰었던 케빈(31·프랑스) 한 명만이 12번 연속 서브를 넣은 경험이 있을 뿐입니다. 


▌프로배구 남자부 연속 서브 시도 톱5
 순위  선수  팀  날짜  상대팀  기록
 ①  케빈  현대캐피탈  2014-12-02  LIG손해보험  12
 ②  비예나  대한항공  2020-01-27  OK저축은행  11
 ③  가스파리니  대한항공  2019-01-25  KB손해보험  10
 신영석  현대캐피탈  2018-10-26  OK저축은행
 김철홍  대한항공  2017-11-14  한국전력


당시 케빈은 3-3에서 서브 라인에 섰습니다. 이후 15-3에서 자신이 넣은 서브가 네트에 걸릴 때까지 계속 서브를 넣었습니다.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린 가스파리니(36·슬로베니아)는 10-9에서 서브를 시작해 19-9에서 역시 자기 범실로 서브 차례를 마감했습니다.


이렇게 연속해 서브를 넣으면 점수 차이가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배구에서는 점수를 따낸 팀만 서브를 넣으니까요.


그렇다면 꼭 이렇게 연속 서브 톱 5 안에 드는 기록을 남기지 않더라도 평소 서브 차례 때 가능한 한 여러 번 서브를 넣는 선수가 좋은 서버 아닐까요?


이날 현재까지 서브 라인에 섰을 때 평균적으로 제일 여러 번 서브를 넣는 선수는 현대캐피탈 박주형(33)입니다.


▌프로배구 남자부 평균 서브 시도 톱10(27일 현재)
 순위  선수  팀  평균 서브 시도
 ①  박주형  현대캐피탈  1.636
 ②  레오  OK저축은행  1.623
 ③  한상길  OK저축은행  1.606
 ④  정성규  삼성화재  1.600
 ⑤  나경복  우리카드  1.596
 ⑥  심경섭  OK저축은행  1.593
 ⑦  정지석  대한항공  1.588
 ⑧  노재욱  우리카드  1.571
 ⑨  유광우  대한항공  1.570
 ⑩  한선수  대한항공  1.568


재미있는 건 대한항공에서는 백업 세터 유광우(34)까지 세 명이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정작 이 글 주인공 비예나는 빠졌다는 점입니다.


비예나는 1.454개로 서브를 100개 이상 넣은 선수 가운데 34위에 그쳤습니다.


서브 득점 1위(세트당 0.714개)를 기록 중인 OK저축은행 레오(26·크로아티아)는 이 기록에서도 2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면 서브 득점 2위(세트당 0.576개)를 기록 중인 비예나가 이렇게 순위가 낮은 이유는 뭘까요?


정답은 서브 범실이 많이 때문입니다.


비예나는 현재까지 서브를 총 330개 시도해 그 중 53개를 에이스로 연결하는 동안 서브 범실 97개를 기록했습니다.


에이스로 우리 팀에 득점을 1점 안길 때마다 범실로 상대팀에 1.8점을 선물하니까 '교환비'가 맞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빼어난 서브 실력을 자랑하는 OK저축은행 레오.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사실 이 '교환비'는 퍽 중요한 개념입니다.


배구가 다른 '네트 스포츠'와 달리 서브를 넣는 팀(선수)에 불리한 종목이기 때문입니다.


지구 반대편 호주에서 열리고 있는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하고 비교해 보면 금방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날까지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경기에서는 총 1만871점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71.9%에 해당하는 7821점을 서브를 넣은 선수가 가져갔습니다.


이번 시즌 현재까지 프로배구 남자부 경기에서 서브 팀이 득점에 성공한 비율은 32.5%(1만4331점 가운데 4657점)가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꼭 서브 에이스를 자주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이 비율을 끌어올리는 선수가 역시 좋은 '서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서브 차례 때 팀 득점 비율 톱10(27일 현재)
 순위  선수  팀  서브 때 득점 비율
 ①  박주형  현대캐피탈  41.7%
 ②  레오  OK저축은행  40.3%
 ③  정성규  삼성화재  39.2%
 ④  한상길  OK저축은행  38.7%
 ⑤  유광우  대한항공  84.4%
 ⑥  심경섭  OK저축은행  38.1%
 ⑦  문성민  현대캐피탈  38.0%
 ⑧  나경복  우리카드  37.9%
 정지석  대한항공
 ⑩  이민규  OK저축은행  37.8%


이번에도 박주형이 1위입니다.


박주형 서브로 시작한 랠리 가운데 41.7%는 현대캐피탈 득점으로 끝이 났습니다.


리그 평균하고 비교하면 9.2%포인트 차이.


이 차이가 그렇게 클까요?


배구에서 1~4세트는 먼저 25점을 따는 게 목표입니다. 25점의 9.2%는 2.3점.


그러면 한 팀이 25점을 얻을 때 다른 팀은 21점에 멈춰 서게 됩니다. 배구에서는 우리가 점수를 따고 있을 때 상대 팀은 점수를 얻지 못하니까요.


서브를 넣고 있는 박주형. 현대캐피탈 제공


얼핏 생각하면 이상하기도 합니다. 박주형은 분명 '강서브'와 거리가 먼 타입이니까 말입니다.


박주형은 지금까지 서브를 247개 넣었는데 이 중 기록원이 '스파이크 서브'라고 인정한 건 13%(32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서브 득점 1위이자 두 기록에서 모두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레오는 211개 가운데 96.2%(203개)가 스파이크 서브였습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투구를 선보였던 그렉 매덕스. 동아일보DB


그런데 야구처럼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야구에서는 기왕이면 강속구를 던질 줄 아는 투수가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쉽습니다.


기본적으로 타격은 타이밍이고, 투구는 그 타이밍을 빼앗는 것(웨렌 스판).


강속구는 타이밍을 빼앗기 가장 좋은 무기입니다. 강속구를 앞세워 삼진을 연거푸 잡아내는 투수는 많은 야구 팬들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듭니다.


그런데 결국 투수는 삼진이 아니라 아웃을 잡아 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샌디 쿠팩스).


그래서 진짜 투수를 위대하게 만드는 건 팔이 아니라 두 귀 사이에 있는 뇌라고 부르는 것(그렉 매덕스)입니다.


외국인 공격수 앞에 있는 상대 리시버를 무너뜨리고 블로킹 유도에 성공한 박주형. KBSN스포츠 중계 캡처


이렇게 따지면 박주형은 삼진(에이스)은 잘 못 잡아도 아웃(점수)을 잘 빼앗는 투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 상대 코트에 서브를 내려 꽂지는 못해도(세트당 0.122개) 결국 우리 팀에 득점을 선물하니까요.


그러니까 유능제강(柔能制剛·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이라는 말은 배구에도 유효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박주형은 언제 봐도 참 좋은 서버입니다.


아, 여자부에서는 한국도로공사 박정아(27)가 지난해 11월 23일 친정팀 IBK기업은행을 상대로 12번 연속 서브를 넣은 게 역대 최다 기록입니다.


여자부는 또 자기 팀 서브로 시작한 랠리에서 득점한 비율도 39.5%로 남자부보다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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