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번에는 살짝 시프트를 걸어서 통했는데 오늘은 저쪽에서 다 파악해서 안 될 거예요.


프로배구 2019~2020 도드람 V리그 남자부 3일 경기를 앞두고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만난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 감독이 말한 '지난번'은 현대캐피탈이 OK저축은행에 3-0 완승을 기록한 지난해 12월 24일 맞대결.


두 팀은 10일 만에 '리턴매치'를 벌였습니다. 최 감독 예상대로(?) OK저축은행이 3-1 승리를 기록하면서 이날 경기는 끝이 났습니다.


배구 자리 번호. 서브를 넣는 순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배구에서는 서브 때 각 선수가 자기 로테이션에 맞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현대캐피탈은 당시 OK저축은행 서버가 공을 띄울 때까지 이 자리를 지켰지만 이후 슬쩍 자리를 바꿨습니다.


리시브 능력이 부족한 문성민(34)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문성민은 서브 리시브 의무가 없는 라이트 출신이라 리시브 경험 자체가 부족합니다. 이날까지 리시브 성공률은 2.6%가 전부.


그래서 문성민을 대신해 '리베로' 여오현(42)이나 '수비형 레프트' 박주형(33)이 서브를 받도록 한 겁니다.


상대 서브를 받고 있는 현대캐피탈 박주형. 그는 3일 경기까지 리시브 성공률 48.9%로 같은 팀 여오현(49.5%)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문성민이 리시브 능력이 떨어지면 상대팀에서는 그에게 서브를 많이 넣을 게 당연한 일.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 때 문성민은 상대 서브를 다섯 번(8.8%)밖에 받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문성민이 리시브에 실패한 것도 한 번밖에 없었습니다.


최 감독은 당시에는 이 작전이 통했지만 OK저축은행 석진욱 감독이 비디오 분석을 통해 파훼법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날도 문성민은 3세트 1-1 상황에서 상대 서브를 받지 못했습니다.



상대팀이 연속해 서브를 넣을 때 우리 팀 선수는 계속 같은 로테이션 순번을 지켜야 합니다. 약점이 있는 로테이션이라면 빨리 벗어나는 게 좋겠죠?


그래서 최 감독은 이 상황에서 시프트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아래 GIF처럼 말입니다.



이번에도 전진선(24)이 때린 서브는 6번 자리에 있는 문성민을 향해 날아왔지만 5번 자리 쪽에 있던 (로테이션 순서는 2번) 박주형이 슬쩍 자리를 옮겨 서브를 받았습니다.


느린 화면으로 보시면 각 선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조금 더 자세히 보입니다.



바로 이 다음에 재미있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박주형도 서브 리시브 성공률 21.4%를 기록 중인 송명근(27)을 타깃으로 삼았는데 리베로 정성현(29)이 나타나 이 서브를 받았습니다.



OK저축은행 석 감독 역시 변칙 시프트를 활용한 겁니다. 물론 이 장면에서만 그런 건 아니고 경기 후반에는 이 시프트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최 감독은 경기 후 "역시 진욱이가 따라할 줄 알았다"며 웃었습니다. 최 감독과 석 감독은 인천 주안초 시절부터 함께 배구를 했던 사이입니다.


사실 크리스마스 이브 때 현대캐피탈은 조금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리시버끼리 아예 자리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이 변칙 시프트에 저작권이 있는 건 아니니 앞으로 이를 활용하는 팀이 늘어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서브 때는 서버에게 눈길이 가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앞으로는 받는 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한 번 살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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