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서 일단 구단 쪽 제안에 '콜'을 외쳤습니다. 단, 제일 뜨거운 감자를 먹을 건지 말 건지는 히든 카드를 받아 보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선수협은 2일 서울 강남구 임피리얼팰리스호텔 총회를 열고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제안한 제도 개선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유효투표 346표 가운데 찬성 195표(56.4%), 반대 151표(43.6%)로 개선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단, 샐러리캡(연봉상한제) 도입에 대해서는 'KBO 쪽 설명이 부족하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니까 '조건부 수용'이 이날 총회에서 정한 기본 방침입니다.
총회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 이대호 선수협회장. 뉴시스
선수협 회장을 맡고 있는 롯데 이대호는 "KBO 이사회 개선안을 보면 샐러리캡을 도입한다는 말만 있을 뿐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는데 무작정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KBO 보충안을 검토한 뒤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이 들어오면 각 구단 이사를 통해 선수단 의견 파악에 나설 계획"이라면서 "샐러리캡에 상한 금액은 물론 하한 금액도 들어 있어야 수용할 수 있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따라서 샐러리캡 도입을 두고 양쪽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개선안 수용 방침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7월 15일 열린 선수협회 제2차 이사회 장면. 선수협 홈페이지
'왜 구체적인 내용이 빠졌냐'는 질문에 KBO도 할 말은 있습니다. 샐러리캡 도입은 선수협에서 자유계약선수(FA) 80억 원 상한제를 거부하면서 먼저 KBO에 제안했던 카드였기 때문. 그래서 구단 쪽도 '콜'을 외친 다음 선수협회 선택을 기다리고 있던 겁니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다음 이사회(사장단 모임) 때 샐러리캡 금액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금액 조정 과정에서 선수협과 충분히 대화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매일신문에서 정리한 승수 대비 연봉 자료. 홈페이지 캡처
개인적으로는 한국 프로야구에 샐러리캡이 꼭 필요한 제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샐러리캡을 도입하는 제일 큰 이유는 '리그 전력 평준화'입니다. 특정 구단에서 몸값이 비싼(≒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싹쓸이해 독주하는 걸 방지하려는 것.
한국 프로야구는 연봉과 승률이 별 상관 없는 리그입니다. 프로야구가 10개 구단 체제를 갖춘 2015년 이후 구단별 연봉 상위 27명 연봉 총액과 정규리그 승률 사이 상관관계를 알아보면 R²가 .0312밖에 되지 않습니다.
연도별 연봉 총액과 승률을 Z점수 방식으로 표준화한 뒤 분석
그러니 샐러리캡을 도입하려는 이유는 그냥 '몸값 줄이기' 정도가 될 겁니다. 그러면 모든 구단이 앞장서 이 제도를 지켜야 하는데 과연 그게 될까요?
샐러리캡이라는 제도를 도입하려면 일단 선수가 얼마를 받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프로야구에서는 선수 계약 과정에서 '통일계약서'를 무시하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KBO 규약 38조는 "구단과 선수는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하더라도 통일계약서의 조항을 변경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39조에서는 "38조에 위배된 특약이나 계약서에 기재되지 않은 특약은 무효로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B구단과 C선수의 계약서에는 "본 계약과 한국야구위원회 선수계약 사이에 충돌이 있는 경우 본 계약의 조건을 우선한다"고 기재돼 있다. 대놓고 KBO 규약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 B구단 관계자는 "타 구단에서도 비슷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2014년 삼성이 안지만(36)과 계약할 때 언론 발표 내용과 실제 계약 조건이 달랐다는 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저 제도 하나 도입한다고 각 구단이 갑자기 '착한 양'으로 발전할까요? 그보다 '뒷돈'을 찔러주는 방식만 발전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그럴수록 이미 연봉이 적은 선수만 손해를 볼 확률이 높습니다. 이럴 거면 80억 원 상한제 카드로 '족보'를 맞춰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