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2019년 제 2차 이사회. 선수협 홈페이지
이것 참 재미있게 됐습니다. 먼저 스포츠경향에서 18일 '[단독]'을 붙여 보도한 내용부터 보시겠습니다.
프로야구 FA(자유계약선수) 제도 개혁에 큰 희망이 생겼다. 선수들이 FA 계약 상한제를 수용하기로 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지난 15일 10개 팀 선수단 대표로 꾸려진 이사회를 열고 FA 제도 개선안에 대해 협의했다. 지난해 9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10개 구단이 제안했던 4년 80억원 상한제를 중심으로 한 몇가지 사안에 대해 팀별로 의견을 수렴했고 이날 모인 자리에서 논의한 결과 선수협은 일단 FA 상한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FA 자격 취득기간 1년 축소와 보상규정 완화(보상선수 폐지), 최저연봉 인상 등 다른 안건들을 구단들이 수용해줘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80억원'을 떠나 상한제 자체를 반대했던 지난해 입장에서 크게 물러났다.
이 보도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건 개인적으로 FA 계약 상한제 도입에 반대하기 때문.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깁니다.
일단 FA 계약에 상한선이 있다는 게 다소 모순처럼 들리는 건 사실이지만 스포츠 시장에 이런 사례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이번 미국프로농구(NBA) FA 관련 포스트에 여러 차례 쓴 것처럼 NBA는 연차와 자격에 따라 FA가 계약할 수 있는 최장 기간과 최고 금액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를 흔히 맥스 또는 맥시멈 계약이라고 부릅니다.) 프로배구 여자부도 지난해 '선수 연봉 최고액은 샐러리캡(연봉 상한제) 총액 25%를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을 도입했습니다. (남자부에는 이런 규정이 없습니다.) 이는 국·내외 대표 사례를 꼽은 것뿐 꼭 두 리그에만 이런 규정이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한국 프로야구 각 구단은 FA '뒷돈' 처리에 대해서는 도가 튼 지 오래. 그래서 사실 지난해 선수협에서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더 이상했습니다. 제도 시행 첫 해에는 다들 상한선을 철저하게 지킬 것이라고 예상했던 걸까요?
롯데에서 13년을 보낸 뒤 삼성과 4년 80억 원(발표액 기준)에 FA 계약을 맺은 강민호. 동아일보DB
거꾸로 구단에서 왜 저런 제안을 했는지가 의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신사 협정'을 맺자는 제안이었을 텐데 그런 협정 지금까지 수 없이 맺고 또 어겼잖아요? SK는 2013년 겨울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이던 30만 달러에 스캇(41)과 계약을 맺었을까요? 바로 그해 여름에 메이저리그에서 275만 달러를 받았던 선수였는데요?
이런 이유로 사실 상한제보다는 나머지 조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KBO가 지난해 선수협에 보낸 FA 제도 변경 관련 제안서 내용은 이랬습니다.
FA 계약 총액을 4년간 최대 80억원으로 제한하고 계약금은 계약 총액의 30%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또한 FA 자격 요건을 고졸 선수는 9년에서 8년, 대졸 선수는 8년에서 7년으로 1년씩 단축하고 최근 3년간 구단 평균 연봉 순위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자고 했다. 등급 구분을 위한 연봉 순위 산정시 FA 선수 및 해외진출 복귀 계약 선수는 제외키로 했다.
FA 자격을 첫 취득할 경우 A등급(보호 선수 20명외 1명+전년도 연봉의 200%), B등급(보호 선수 25명외 1명+전년도 연봉의 100%), C등급(전년도 연봉의 100%)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FA 자격을 재취득할 경우 A등급(보호 선수 25명외 1명+FA계약기간 평균 연봉의 150%), B등급(보호 선수 30명외 1명+FA계약기간 평균 연봉의 100%), C등급(FA계약기간 평균 연봉의 70%)으로 세분화했다.
FA 규정 위반시 해당 계약을 무효로 하고 해당 선수는 1년간 참가 활동을 정지하며 해당 구단에는 1차 지명권 박탈 및 제재금 10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선수협은 △FA 총액 상한선 폐지 △연봉 감액 제도 폐지 △FA 등급제 보상 완화 △부상자 명단 제도 현실화 △최저 연봉 인상 등을 제안했습니다. 2010년부터 FA 등급제 도입을 주장해 온 한 사람으로서 제가 제일 주목했던 건 FA 등급제 보상 완화.
선수협은 B, C 등급 선수의 보상 규정을 이보다 더 완화해야하며, FA 자격을 취득하고도 선언을 미룬 선수의 경우 무조건 4년을 기다려야 FA를 다시 얻을 수 있는 현재의 제도를 바꿔 계약 기간 만료로 FA 자격 취득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수협은 이번에는 아예 보상 선수를 없애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선수협은 FA 상한제를 받아들이는 대신 보상권에서 보상선수를 없애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지난해 KBO와 10개 구단이 연봉 기준으로 A~C등급으로 나눠 보상규정을 완화하려 제안한 등급제와는 조금 다르다.
선수협에서 보상 규모를 줄이려는 건 "'최대어'로 불렸던 양의지(32)는 4년간 총액 125억원에 NC로 이적해 '대박'을 쳤지만 대부분의 30대 고참인 중소형 FA들은 계약기간부터 싸워야 했고 결국은 2, 3년에 20억원대 이하로 소속팀에 잔류했(기)" 때문. 요컨대 빈인빅 부익부가 너무 심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보상 규모와 선수 몸값 쏠림 현상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미국 100 달러, 한국 1만 원, 일본 1만 엔 지폐.
한미일 프로야구를 비교하면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 한국 프로야구 순서로 보상 규모가 작고 그 결과 FA가 팀을 옮기기도 쉽습니다. 메이저리그는 퀄리파잉오퍼(QO)를 받지 않은 선수는 아무 제약 없이 팀을 옮길 수 있고, 일본 프로야구는 선수 등급(클래스)에 따라 보상 내용이 다릅니다. 한국은 모든 FA 보상 기준이 똑같습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몸값이 제일 비싼 선수는 마이크 트라우트(28)입니다. 트라우트는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원 소속팀 로스앤젤레스(LA) 에인절스와 사실상 FA 계약을 맺으면서 올해 3600만 달러(약 424억 원)를 받고 뛰게 됐습니다. 개막일 기준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은 436만 달러(약 51억3600 만 원). 그러면 트라우트는 이 평균 연봉보다 8.23배를 받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올해 최고 연봉 선수는 스가노 도모유키(菅野智之·30)입니다. 오른손 투수인 스가노는 올해 요미우리(讀賣)에서 6억5000만 엔(약 70억7800만 원)을 받습니다. 이는 이번 시즌 일본 프로야구 1군 평균 연봉 7187만 엔(약 7억8300만 원)보다 9배 많은 금액입니다. (일본 프로야구 연봉은 기본적으로 추정치)
한국에서는 선수협 회장 이대호(37·롯데)가 연 평균 37억5000만 원으로 1위입니다.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고 각 팀에서 연봉을 제일 많이 받는 선수 27명 연봉을 평균 내면 2억5142만 원. 이대호는 한 명 몸값이면 이 1군급 선수 15명이 연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팀 '특급 선수'를 빼앗기지 않겠다며 높다랗게 쳐놓은 담벼락이 지대(rent)와 맞물려 이런 선수들 몸값만 올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각 구단에서 정말 FA 몸값이 너무 비싸서 부담이라면 (물론 저는 엄살이라고 생각하지만) 보상 규모를 줄여야 합니다. '보상 선수를 아예 없애자'는 선수협 제안을 받으세요.
그 대신 샐러리캡 제도를 도입할 게 아니라면 FA 계약 상한제 카드는 거두어 들이세요. 선수협에서 이 정도 성의 확인했으면 충분하지 않나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차피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다들 어길 규정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