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 구단에서 고우석(26)에게 'DFA(Designated For Assignment)' 처분을 내린 지 사흘(3일)이 지났습니다.
그 뒤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건 고우석이 '웨이버를 클리어했다'는 뜻입니다.
이에 따라 마이애미는 고우석의 계약을 산하 마이너리그 팀으로 완전히 양도(outright assignment)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습니다.
고우석은 지금까지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채 마이너리그 옵션을 소진 중이었는데 이제 명백하게(outright) 마이너리거 신분으로 바뀌게 되는 겁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 결과를 '마이너리그 팀으로 계약을 이관(outright)했다'고 쓰기도 합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DFA를 △지명할당 △양도지명 △방출대기 등으로 번역합니다.
이 세 가지 번역 가운데 실제 DFA 개념과 가장 거리가 먼 하나를 고르라면 지명할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FA에서 'assignment'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몫을 갈라 나눔. 또는 그 몫'이라고 풀이하는 할당(割當)과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전에는 DFA 대표 번역이 지명할당이었던 만큼 지금도 이 표기를 쓰는 언론사가 적지 않습니다.
메이저리그 규약 제6장을 'ASSIGNMENT OF PLAYER CONTRACTS'를 읽어 보면 assignment가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은 이를 '선수계약의 양도'라고 번역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양도(讓渡)는 '권리나 재산, 법률에서의 지위 따위를 남에게 넘겨줌. 또는 그런 일'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선수계약의 양도'를 네 글자로 줄이면 '트레이드', 두 글자로 줄이면 '이적'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건 메이저리그 규약 6(e)(1)입니다.
이 조항은 '메이저리그 경력 5년 이상인 선수가 서면으로 동의하지 않았을 때는 이 선수 계약을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이 아닌 구단으로 양도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네, 한국 언론에서 흔히 '마이너리그 거부권'이라고 부르는 내용이 이 조항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메이저리그 구단이 산하 마이너리그 팀으로 선수를 내려보내는 일도 선수 계약의 양도 = 트레이드에 해당합니다.
한국 또는 일본 프로야구 1, 2군과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 사이는 관계가 다릅니다.
1, 2군은 같은 회사에 속한 서로 다른 부서지만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는 원청-하청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너리그 팀은 메이저리그 팀과 '선수 교육 위탁 계약(PDC)'으로 묶였을 뿐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회사 = 구단입니다.
같은 규약 제2장에 따라 메이저리그 구단 보류(保留) 선수는 최대 40명입니다.
이를 흔히 '40인 로스터'라고 부릅니다.
이 40인 로스터에는 현역 로스터 26명에 10일(야수) 또는 15일(투수)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 그리고 마이너리그 구단에서 옵션을 사용 중인 선수를 포함합니다.
40인 로스터를 가득 채운 상태에서 보류 선수를 추가하려면 당연히 한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역시나 '메이저리그 : 마이너리그 ≠ 1군 : 2군인 이유 = DFA가 필요한 이유' 포스트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하려는 선수가 바로 메이저리그 규약 제2장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정 선수(DESIGNATED PLAYER)'입니다.
이 지정 선수는, 한국 프로야구 팀이 외국인 선수를 교체할 때 주로 등장하는, 웨이버(waiver) 공시 대상이 됩니다.
웨이버는 기본적으로 시즌 도중에 구단이 이 선수에 대한 보류권을 포기하려 한다고 다른 구단에 알리는 행정 절차입니다.
한국에서는 '웨이버 → 방출'이 공식에 가깝기 때문에 '방출대기'라는 번역이 등장했을 겁니다.
이번에도 메이저리그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메이저리그에는 '완전 양도 웨이버(outright assignment waivers)'와 '무조건 방출 웨이버(unconditional release waivers)' 두 종류가 있습니다.
DFA와 관련이 있는 개념은 당연히 완전 양도 웨이버입니다.
완전 양도 웨이버는 '우리는 이 선수 계약을 산하 마이너리그 팀으로 넘기려 하니 필요한 구단이 있으면 데려가세요'라고 알리는 절차입니다.
이 선수를 원하는 구단은 웨이버 공시 후 사흘(3일) 이내에 '클레임(claim)'을 걸어 영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웨이버를 통해 선수를 영입한 구단은 해당 선수를 바로 40인 로스터에 올려야 합니다.
반대로 이 선수를 원하는 구단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웨이버를 클리어했다'고 표현합니다.
이때부터 구단은 이 선수 계약을 산하 마이너리그 팀으로 양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
물론 이 선수를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할 수도 있고 방출할 수도 있습니다.
또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는 선수는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하는 대신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취득을 선택해도 됩니다.
아, 같은 시즌에 이미 웨이버를 클리어한 적이 있는 선수는 웨이버 공시 없이 바로 이 단계를 시작해도 됩니다.
그렇다면 DFA 이후 어떤 결과가 가장 많이 나왔을까요?
3일까지 올해 나온 DFA 종결 케이스는 총 217건입니다.
마이너리그로 계약을 이관한 사례가 79건(36.4%)으로 가장 많았고 웨이버 공시 기간 다른 구단에서 클레임을 건 케이스가 60건(27.6%)으로 그다음이었습니다.
이어 △트레이드 51건 △FA 자격 취득 17건 △방출 10건 순서였습니다.
DFA를 '방출대기'라고 번역하는 데 무리가 따르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맷 사우어(25) 케이스 한 건이 남습니다.
사우어는 지난해 12월 6일 (메이저리그 규정 제5장에 등장하는) '룰 5 드래프트'를 통해 뉴욕 양키스에서 캔자스시티로 팀을 옮겼습니다.
룰 5 드래프트로 선수를 영입한 구단은 새 시즌 내내 이 선수를 26인 로스터에 포함해야 합니다.
DFA 처분으로 26인 로스터(⊂ 40인 로스터)에서 빠진 뒤 웨이버를 클리어했을 때 이 선수는 무조건 기존 구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사우어 역시 DFA 이후 양키스 산하 AAA 팀 스크랜턴-윌크스바레(SWB) 소속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