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삿포로돔 마운드 위에 빅 보스 유니폼을 벗어 놓고 있는 신조 쓰요시 니혼햄 감독. 아사히(朝日) 신문 제공

"(올 시즌) 결과는 팬들을 안타깝게 한 꼴찌입니다. 이 책임은 감독에게 있습니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이제 빅 보스 유니폼을 벗기로 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신조 쓰요시(新庄剛志·50)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감독은 이렇게 말한 뒤 입고 있던 유니폼을 마운드 위에 벗어놓고 그라운드 밖으로 나갔습니다.

 

니혼햄이 28일 삿포로돔에서 지바 롯데에 3-11로 패하면서 올해 안방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다음이었습니다.

 

니혼햄은 내년부터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로 안방 구장을 옮기 때문에 이 경기는 니혼햄이 삿포로돔(札幌ドーム)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신조 쓰요시 니혼햄 감독이 삿포로돔 마운드 위에 벗어 놓은 빅 보스 유니폼. 퍼시픽리그 TV 화면 캡처

니혼햄은 세 시즌 연속으로 퍼시픽리그(PL) 5위에 그치자 팀 OB 출신인 신조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면서 분위기 쇄신을 꾀했습니다.

 

그러나 9월 18일 이미 최하위(6위)를 확정했고 이날까지 58승 3무 81패(승률 .417)에 그친 상황.

 

신조 감독은 올해 1년만 계약을 맺은 상태라 정말 이대로 지휘봉을 내려 놓는다고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신조 감독 본인도 이틀 전 "시즌 마지막 안방 경기가 끝나고 여러분께 보고 드릴 말씀이 있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상태였습니다.

 

본인 이름을 쓴 유니폼을 입고 다시 등장한 신조 쓰요시 니혼햄 감독. 아사히(朝日) 신문 제공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신조 감독은 자기 이름을 쓴 유니폼을 다시 입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 4시에 가와무라 (고지) 사장이 불러서 '내년에도 지휘를 맡아 달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대답은 하지 않았습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우선 여자 외주신 팬 모두에게 여쭤보고 싶습니다. '내년에 신조 쓰요시가 에스콘 필드에서 감독을 맡아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삿포로돔 고별 경기에서 연설 중인 신조 쓰요시 니혼햄 감독. 아사히(朝日) 신문 제공

구장을 가득 채운 4만1138명에게 박수를 받은 신조 감독은 "(본인은) 가끔은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하지만 본성은 좋은 녀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가와무라 사장님, 지금 답을 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신조 감독은 "내년 개막전 선발은 왼손 에이스 가토에게 맡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신조 감독이 이야기한 투수는 '제구의 달인'으로 통하는 가토 다카유키(加藤貴之·30)입니다.

 

 

신조 감독은 "내년에는 2위나 6위나 똑같다"면서 "니혼이치(日本一)만을 목표로 흔들리지 않고 싸워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어 "삿포로돔, 고마워요"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습니다.

 

원래 요미우리(讀賣)와 도쿄돔(東京ドーム)을 안방으로 나눠 쓰던 니혼햄은 2004년 삿포로돔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러면서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고 일본으로 돌아오려던 신조 감독을 영입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수비 연습 중인 현역 시절 신조 쓰요시 니혼햄 감독. 산케이(産經) 신문 홈페이지

신조 감독은 니혼햄에 입단하면서 '삿포로 돔을 가득 채우겠다', '팀을 니혼이치로 이끌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신조 감독은 실제로 가면을 쓰고 수비 연습에 참가하거나 곤돌라를 타고 천장에서 등장하는 등 적극적으로 팬 서비스에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2006년 기어이 팀을 니혼이치로 이끈 뒤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여기에 작별 인사까지 맡았으니 신조 감독이 이 구장의 시작과 마무리를 모두 책임진 셈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꼴찌 팀 감독에게 '잘했다'고 하기는 힘든 노릇.

 

보수적인 일본 야구계 문화를 생각하면 신조 감독은 더더욱 '돌X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한국 프로야구는 맨날 위기라고 하면서 누구 하나 이런 이벤트를 기획하는 인물도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쌩쇼'라고 봐도 크게 무리는 아닌 이날 행사가 참 부러웠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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