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개가 사람을 무는 건 뉴스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19세기 미국 언론인 찰스 앤더슨 대너(1819~1897)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자가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는 건 '개가 사람을 무는 일'에 해당합니다.

 

2020년 전체 1순위 지명자인 스펜서 토켈슨(23)은 지명 후 667일이 지난 올해 4월 8일(이하 현지시간)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지난해(2021년) 전체 1순위 헨리 데이비스(22) 역시 마이저리그 AA까지 올라온 상태입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전체 1순위 헨리 데이비스(왼쪽)와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거꾸로 전체 1순위 지명자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구경도 못 해 보면 '사람이 개를 무는 일'이 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드래프트 제도를 처음 도입한 1965년 이후 지난해까지 전체 1순위 지명자는 총 56명입니다.

 

57년 동안 56명밖에 되지 않는 건 대니 굿윈(69)이 1971년1975년 두 번에 걸쳐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팀 벨처(61)는 1983년 미네소타에서, 브레이디 에이킨(26)은 2014년 휴스턴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고도 계약을 맺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데이비스와 이들을 제외하면 1순위 지명자 가운데 메이저리그 출전 경험이 없는 건 세 명입니다.

 

1966년 뉴욕 메츠에서 지명한 스티븐 칠콧(74·포수), 1991년 뉴욕 양키스 1순위 브라이언 테일러(51) 그리고 2013년 휴스턴에서 선택한 마크 어펠(31)이 그 세 명입니다.

 

휴스턴 마이너리거 시절 마크 어펠. 휴스턴 홈페이지

단, 오른손 투수 어펠은 이제 이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지울 준비를 마쳤습니다.

 

지명을 받은 지 3306일 만에 '메이저리그 팀에 합류하라'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마이너리그 AAA 소속인 어펠은 메이저리그 팀이 방문 경기를 치르고 있는 샌디에이고로 떠나 팀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맞습니다. 지금 샌디에이고에서 방문 경기를 치르는 팀은 휴스턴이 아니라 필라델피아입니다.

 

휴스턴은 어펠이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자 2015년 12월 12일 그를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했습니다.

 

2016년 스프링캠프 당시 마크 어펠. 탬파=AP 뉴시스

2016년을 AAA 팀 리하이 밸리에서 시작한 어펠은 그해 5월 22일 이후 등판 기록이 없습니다.

 

어깨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뒤 재활 과정에서 팔꿈치까지 다치는 바람에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던 겁니다.

 

2017년 시즌 개막에 맞춰 다시 리하이 밸리로 돌아왔지만 7월 5일 또 어깨에 탈이 났습니다.

 

결국 그는 루키 리그에서 그해 시즌을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2018년에도 다시 재활로 시즌을 시작해야 하는 신세가 되자 그는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야구장을 떠난 그는 휴스턴 고향 집으로 돌아가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휴스턴에서 전체 1순위 계약금으로 635만 달러(약 83억 원)를 받았던 어펠이었습니다.

 

어펠은 사실 2012년 드래프트 때도 전체 8순위로 지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프로행 대신 스탠퍼드대 잔류를 선택했습니다. 전공(공학) 공부를 마치고 싶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던 어펠이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스티븐 피스코티(31) 때문이었습니다.

 

스탠퍼드대 시절 마크 어펠.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홈페이지

피스코티와 어펠은 스탠퍼드대 야구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

 

오클랜드 소속으로 휴스턴을 방문한 피스코티를 보면서 어펠은 '아, 나는 정말 야구를 사랑하는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자신이 염증을 느꼈던 건 부상과 재활이지 야구 그 자체가 아니라고 깨달았던 겁니다.

 

어펠은 결국 지난해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필라델피아 구단을 찾아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어펠은 복귀 첫 해 AA와 AAA에서 총 71과 3분의 1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6.06을 기록했습니다.

 

리하이 밸리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지는 마크 어펠. 리하이 밸리 홈페이지

이런 성적을 남긴 만 29세 투수는 구단에서 방출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

 

필라델피아는 조금 더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어펠은 이번 AAA에서 19경기에 나와 28이닝을 평균자책점 1.61로 막으면서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코너 브로돈(27)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장을 받자 필라델피아는 그 자리를 에펠로 채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어펠은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 가운데 메이저리그에 오르는 데 두 번째로 오래 걸린 선수' 타이틀을 눈 앞에 두게 됐습니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맷 부시. 텍사스 홈페이지

네, 어펠보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는 데 더 오래 걸린 선수도 있습니다.

 

현재 텍사스에 몸담고 있는 오른손 투수 맷 부시(36)가 주인공입니다.

 

2004년 6월 7일 샌디에이고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은 그는 이로부터 4358일이 지난 2016년 5월 13일이 되어서야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원래 유격수였던 부시는 지명 2주 만에 음주 폭행사건을 저지르는 등 신문 스포츠면보다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선수가 됐습니다.

 

탬파베이 시절이던 2012년 3월 22일에는 음주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2015년 10월 30일까지 실형을 살기도 했습니다.

 

1972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데이브 로버츠.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홈페이지

거꾸로 지명 후 가장 빨리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1순위 선수는 데이브 로버츠(71)였습니다.

 

1972년 전체 1순위였던 로버츠는 지명 바로 다음 날인 그해 6월 7일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이 로버츠는 2022년 현재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 감독인 데이브 로버츠(50)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단, 로버츠는 메이저리그에서 총 709경기에 나서 통산 타율 .239를 남긴 뒤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1순위 지명자는 평균으로는 869일, 중간값으로는 729일 만에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

 

어펠은 결국 29일 안방 경기에서 애틀랜타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첫 등판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펠은 이날 팀이 1-4로 끌려가던 9회초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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