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1루 코치 박스를 향해 뛰어가는 얼리사 내컨 샌프란시스코 코치. 샌프란시스코=AP 뉴시스

얼리사 내컨(32) 샌프란시스코 코치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은 여성 지도자가 됐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12일(이하 현지시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라이벌 샌디에이고와 안방 경기를 치렀습니다.

 

1회말부터 6점을 뽑으면서 경기를 시작한 샌프란시스코는 2회말에도 4점을 더하면서 10-1로 앞서갔습니다.

 

문제(?)는 적시타를 치고 1루에 나가 있던 스티븐 더거(29)가 이 상황에서 2루를 훔쳤다는 겁니다.

 

불문율 논란을 일으킨 스티븐 더거의 2루 도루. MLB.tv 중계화면 캡처

타석에 있던 조이 바트(26)가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공수 교대 시간이 됐습니다.

 

3루 쪽에 있는 안방 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앤트완 리처드슨(39) 샌프란시스코 1루 코치에게 마이크 실트(54) 샌디에이고 3루 코치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9점 차이로 앞선 2회말에 도루 사인을 내는 건 불문율 위반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감정이 격해지면서 발언 수위가 올라갔고 결국 리처드슨 코치가 퇴장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라운드에서 타격 훈련을 돕고 있는 얼리사 내컨 코치. 샌프란시스코 구단 홈페이지

팀 내컨 코치는 배팅 케이지에서 선수들 타격 훈련을 돕던 중이라 이 상황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카이 코레아(34) 벤치 코치가 배팅 케이지로 건너와 '1루 코치로 나가야 하니 준비해 달라'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트레이닝 셔츠만 입고 있던 내컨 코치는 등번호 92번 유니폼을 챙겨 입고 헬멧을 손에 들고 출전 준비를 마쳤습니다.

 

3회말을 앞두고 내컨 코치가 1루를 향해 걸어 가자 관중 2만5560명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에릭 호스머, 다린 러프, 얼리사 내컨 코치(왼쪽부터). 샌프란시스코=로이터 뉴스1

내컨 코치가 1루 코치 박스에 도착한 뒤에는 샌디에이고 1루수 에릭 호스머(33)도 악수와 함께 축하 인사를 전했습니다.

 

내컨 코치와 1루에서 처음 만난 샌프란시스코 선수는 (한국 프로야구 삼성에서도 뛴 적이 있는) 다린 러프(36)였습니다.

 

3회말 공격이 끝난 뒤에는 샌프란시스코 포수 커트 카살리(34)가 포옹으로 내컨 코치를 반겼습니다.

 

내컨 코치는 물론 이 경기가 13-2 샌프란시스코 승리로 끝날 때까지 계속 1루 코치 자리를 지켰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 중인 얼리사 내컨 코치. 샌프란시스코=로이터 뉴스1

내컨 코치는 "우리는 매일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자 그라운드에 선다. 나는 오늘 조금 더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나는 이 정도가 끝'이라고 한계를 정한다. 그러나 내가 메이저리그 코치가 된 것처럼 그 동안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누군가는 해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학창 시절 소프트볼 선수였던 내컨 코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1호 여성 코치이기도 합니다.

 

감독 특별 보좌역으로 타자들 컨디션 조절을 돕고 있는 내컨 코치는 샌프란시스코가 지난해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대타 홈런 기록(18개)을 새로 쓰면서 능력을 인정 받았습니다.

 

지난해 시범경기 때 1루 코치를 보고 있는 얼리사 내컨 코치. 샌프란시스코 홈페이지

리처드슨 코치가 퇴장 당한 뒤 게이브 케플러(47) 감독이 내컨 코치에게 1루 코치 박스를 맡긴 건 사실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처드슨 코치가 '주전'이라면 내컨 코치가 '백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컨 코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기간인 2020년 7월 20일 연습 경기와 지난해 스프링캠프 기간에도 1루 코치를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내컨 코치는 "1루 코치 박사는 경기를 관람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라며 웃었습니다.

 

사령탑 데뷔전에서 승리를 거둔 레이철 볼코벡 뉴욕 양키스 산하 A팀 탬파 감독. 뉴욕 양키스 제공

미국 야구계에서 '금녀의 벽'을 깨고 있는 건 내컨 코치 혼자가 아닙니다.

 

뉴욕 양키스는 올 시즌 개막과 함께 산하 로우 A 팀 탬파 지휘봉을 레이철 볼코벡(35) 감독에게 맡겼습니다.

 

탬파가 8일 시즌 개막전에서 9-6 승리를 거두면서 볼코벡 감독은 '조직 야구'에서 첫 승을 거둔 여성 감독이 됐습니다.

 

그러니 조만간 메이저리그 팀 지휘봉을 여성 감독이 잡게 된다고 해도 놀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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