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올해 클레이 코트 대회 우승 없이 프랑스 오픈에 출전한 라파엘 나달. 파리=로이터 뉴스1

감히 누가 황제를 의심했습니까.

 

'클레이 코트 황제' 라파엘 나달(36·스페인·세계랭킹 5위)이 잔뜩 상처 입은 채 스타드 롤랑가로스에 입성한 건 사실.

 

게다가 황제 역시 예년과 달리 '도전자' 신분으로 올해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황제 징표인 '쿠프 드 무스크테르'를 들어 올린 채 대회 주경기장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를 떠났습니다.

 

나달에게 가장 약발이 좋은 진통제는 역시 '앙투카'였던 겁니다.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컵 '쿠프 드 무스크테르'를 들어올리고 있는 라파엘 나달. 파리=로이터 뉴스1

나달은 6일 열린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카스페르 루드(24·노르웨이·8위)를 3-0(6-3, 6-3, 6-0) 물리치고 황좌를 되찾았습니다.

 

나달은 대회 5연패를 노리던 지난해 준결승에서 노바크 조코비치(35·세르비아·1위)에게 패하면서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날 패배로 나달은 프랑스 오픈 참가 역사상 처음으로 한 선수에게 두 번 패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8강에서 조코비치를 3-1로 따돌린 뒤 준결승에서 알렉산더 츠베레프(25·독일·3위)에게 기권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 다시 챔피언이 됐습니다.

 

나달이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한 건 이번이 열 네번째입니다.

 

물론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역사상 그 어떤 선수도 특정 4대 메이저 대회(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에서 이렇게 많이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대회 기간에 36번째 생일(6월 3일)을 맞은 나달은 1972년 안드레스 히메노(당시 34세·스페인)가 세웠던 프랑스 오픈 최고령 우승 기록도 새로 썼습니다.

 

나달은 "만 36세에 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한번 더 우승할 수 있었다는 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대단한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가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나달은 올해 오후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4대 메이저 대회 역대 남자 단식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날 우승으로 이 기록을 22승까지 늘렸습니다.

 

공동 2위 그룹인 조코비치, 로저 페더러(41·스위스·47위)와는 이제 2승 차이입니다.

 

나달은 이번 우승으로 지난해 조코비치가 그랬던 것처럼 한 해에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캘린더 그랜드슬램' 기록에 도전할 자격도 얻었습니다.

 

ATP 역사상 이런 기록을 남긴 건 1969년 로드 레이버(84·호주) 한 명뿐입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남긴 문구를 써놓은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 트위터 캡처

프랑스 오픈 주경기장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에 들어서면 '승리는 가장 끈질긴 자의 것'(La victoire appartient au plus opiniâtre)이라는 문구가 기다립니다.

 

한 번이라도 나달이 뛰는 걸 본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나달보다 이 문구를 잘 증명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는 걸 말입니다.

 

2005년 발바닥 관절이 변형되는 뮐러바이스 증후군 진단을 받은 나달은 이번 대회 기간 내내 왼발에 마취 주사를 맞고 뛰었습니다.

 

이전에는 특수 깔창 등으로 통증을 이겨냈지만 이제는 마취 없이 이겨낼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해진 것.

 

조코비치와 맞붙은 8강전을 앞두고는 "내 마지막 프랑스오 픈 경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벽돌을 구워서 만든 붉은 흙 앙투카를 깐 이 코트에서 롤랑가로스에서 나달을 막아서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달은 이날까지 프랑스 오픈 115경기 가운데 112번(97.4%)을 이겼습니다. 특히 결승전에서는 14전 전승입니다.

 

생애 첫 맞대결을 하필 앙투카 위에서 벌여야 했던 루드는 "어떤 선수라도 프랑스 오픈 무대에서 나달을 만나야 한다면 도망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서웠지만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에서 나달과 만나는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생각으로 겨우 버텼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도 노르웨이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 오른 루드는 2시간 18분을 버틴 끝에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준우승 기록을 남겼습니다.

 

루드는 이전까지 지난해 호주 오픈 16강에 진출이 개인 최고 메이저 대회 성적이었습니다.

 

'나달 아카데미' 출신인 카스페르 루드(왼쪽)와 라파엘 나달. 파리=로이터 뉴스1

단, 다른 코트 특히 윔블던이 열리는 미끄러운 잔디 코트 위에서도 나달이 버틸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나달은 "윔블던에 나가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소염제만으로 통증을 이겨낼 수 있다면 윔블던에 나가겠지만 마취 주사를 맞으면서까지 뛰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나달은 계속해 "일단은 고주파 치료로 통증을 잡아볼 생각"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치료가 잘되지 않으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수술을 받게 되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은퇴 가능성까지 시사했습니다.

 

물론 당장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나달이 건강하게 뛰는 걸 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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