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토론토에 사는 뉴욕 양키스 팬 데릭 로드리게스. CNBC 홈페이지

캐나타 토론토에 사는 아홉 살짜리 뉴욕 양키스 팬 데릭 로드리게스는 올해 어린이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물론 이건 한국 시간 기준이고 캐나다는 11월 20일이 어린이날입니다.)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난 데릭은 5년 전 토론토로 이사를 온 뒤에도 메이저리그 응원팀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데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부터 아버지가 '뉴욕의 연인' 데릭 지터 광팬이었기 때문입니다.

 

데릭은 4일 가족과 함께 양키스가 방문 경기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토론토 안방 구장 로저스 센터를 찾았습니다.

 

뉴욕 양키스 2번 타자로 3일 경기를 소화한 애런 저지(오른쪽). 토론토=로이터 뉴스1

0-1로 끌려가던 6회초에 에런 힉스가 좌전 안타를 치고 나가면서 양키스가 추격 기회를 잡았습니다.

 

게다가 다음 타자는 데릭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에런 저지였습니다.

 

데릭은 이날 저지의 이름과 등번호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힉스가 도루에 실패하면서 2사 주자 없는 상황으로 바뀐 그때.

 

저지가 비거리 130m짜리 동점 홈런을 날렸습니다.

 

에런 저지 시즌 9호 홈런. 유튜브 화면 캡처

외야 2층 관중석에 떨어진 이 공을 주운 건 토론토 팬 마이크 랜질로타 씨였습니다.

 

공을 손에 넣고 환호하던 랜질로타 씨 눈에 양키스 모자를 쓰고 있는 데릭이 들어왔습니다.

 

열두 살 때 할아버지와 찾은 안방 경기에서 파울볼을 '특템'했던 기억이 생생했던 랜질로타 씨는 바로 데릭에게 공을 건넸습니다.

 

그러니까 부산 사직구장에서 1만km 넘게 떨어진 토론토에도 '아주라' 정신이 살아 있었던 겁니다.

 

데릭은 눈물을 흘리면서 랜질로타 씨를 꼭 끌어안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저지 홈런 후 외야 관중석에선… 유튜브 화면 캡처

이 장면이 TV 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고 저지도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저지는 "두 사람을 모두 만나고 싶다"는 뜻을 구단에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데릭과 랜질로타 씨는 물론 두 사람 가족이 모두 로저스 센터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저지는 경기 전 타격 훈련을 마친 뒤 방문팀 더그아웃에서 이들을 맞았습니다.

 

저지의 홈런공을 선물 받고 펑펑 울었던 데릭은 직접 저지와 만난 뒤에도 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에런 저지와 직접 만난 뒤 눈물을 보이고 있는 데릭 로드리게스. 토론토=로이터 뉴스1

저지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누구인지 묻자 데릭은 등을 돌려 저지의 이름을 보여줬습니다.

 

저지는 "아직도 어린이들이 내 이름과 번호을 새긴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면 전율이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어릴 때 이들과 똑같은 꼬마 팬이었다. 이런(어린이들이 나를 응원하는) 일은 내가 늘 꿈꿔왔던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저지는 자신이 직접 사인한 장갑과 공도 데릭에게 선물했습니다.

 

데릭은 "학교에 빨리 가서 친구들과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다. 그런데 다들 토론토 팬이라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마이크 랜질로타 씨, 데릭 로드리게스, 에런 저지, 세사르 로드리게스. 토론토=로이터 뉴스1

양키스의 선물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양키스는 로드리게스 가족을 양키스타디움에도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로드리게스 가족은 물론 판사석(The Judge's Chambers)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됩니다.

 

그렇다고 토론토 팬 랜질로타 씨가 빈손으로 돌아간 건 아닙니다.

 

토론토 외야수 조지 스프링어는 이 소식을 접한 뒤 랜질로타 씨에게 유니폼을 선물했습니다.

 

 

저지가 어린이 팬을 살뜰히 챙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저지는 2019년에도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 참가한 선수 전원이 사인한 신발을 신고 경기에 출전한 적도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부' 프로야구 선수이은 어린이 팬 사인 요청조차 거부하기 바쁘고 그런 상황을 팬들이 이해해줘야 한다는 프로농구 해설위원도 있었던 게 사실.

 

그러나 이런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슈퍼스타도 어린이 팬이 자신에게 또 리그에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프로 선수 여러분 정말이에요. 팬이 없다면 여러분이 하고 있는 건 그냥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놀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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