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터치다운을 앞둔 레너드 포넷(왼쪽)을 지켜보는 톰 브래디(12번). 탬파=AP 뉴시스

23일(이하 현지시간) 탬파베이 안방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내셔널풋볼콘퍼런스(NFC) 디비전 라운드.

 

경기 종료 42초를 남겨 놓고 탬파베이 쿼터백 톰 브래디(45)는 러닝백 레너드 포넷(27)에게 공을 넘겼습니다.

 

포넷은 9야드를 달려 로스앤젤레스(LA) 램스 쪽 엔드존에 진입가면서 터치다운에 성공합니다.

 

3쿼터 종료 3분 3초 전까지 3-27로 뒤지던 탬파베이가 기어이 27-27 동점 발판을 마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레너드 포넷 터치다운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이 플레이를 마지막으로 필드 바깥으로 나간 브래디는 다음 번 공격 기회를 기다렸지만 이 기회는 끝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램스 키커 맷 게이(28)가 버저비터 필드골을 성공시키면서 '디펜딩 챔피언' 탬파베이가 결국 30-27로 무릎을 꿇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정규리그 때 13승 4패(승률 .765)로 1976~1977 시즌 창단 후 팀 역사상 최고 승률을 남긴 이번 시즌 탬파베이도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예상했던 것처럼 22년에 걸친 브래디의 NFL 선수 생활도 마침표를 찍게 됐습니다.

 

탬파베이 유니폼을 입고 친정팀 뉴잉글랜드 안방 질레트 스타디움에서 손을 흔드는 톰 브래디. 폭스버러=로이터 뉴스1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브래디가 은퇴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29일 보도했습니다.

 

브래디 선수 생활은 한 마디로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브래디는 2000년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때 6라운드 전체 199위로 뉴잉글랜드에서 지명을 받아 NFL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신인이던 2000~2001 시즌 딱 한 경기 출전에 그친 브래디는 이듬해(2001년) 9월 23일 경기 도중 당시 주전이던 드류 블레드소(50)가 부상을 당하면서 출전 기회를 얻었습니다.

 

2001 슈퍼볼 당시 톰 브래디.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홈페이지

1주일 뒤에는 페이턴 매닝(46)이 이끌던 인디애나폴리스를 스타팅 멤버 데뷔전을 치러 44-13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로부터 다시 126일이 지났을 때 브래디는 NFL 결승전인 슈퍼볼 최우수선수(MVP)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해 슈퍼볼에서 뉴잉글랜드는 당시 세인트루이스에 둥지를 틀고 있던 램스를 20-17로 물리치고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브래디는 이후로도 18년 동안 뉴잉글랜드에서만 뛰면서 팀을 다섯 차례 더 슈퍼볼 정상으로 이끌었습니다.

 

2019~2020 슈퍼볼 당시 톰 브래디. 애틀랜타=로이터 뉴스1

NFL 역사상 어떤 쿼터백도 이렇게 오래 한 팀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했고 당연히 이렇게 많이 슈퍼볼 우승을 차지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2019~2020 시즌 플레이오프 1단계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테네시에 13-20으로 패하면서 '뉴잉글랜드도 리빌딩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경기가 열린 2020년 1월 4일 브래디는 만 42세 5개월 1일이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팀에서 연장 계약을 거부하자 브래디는 20년 동안 몸담았던 뉴잉글랜드를 떠나 탬파베이로 향했습니다.

 

2020~2021 슈퍼볼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뒤 손을 흔드는 톰 브래디. 탬파=로이터 뉴스1

그리고 지난 시즌 만년 하위팀 탬파베이를 이끌고 결국 일곱 번째 슈퍼볼 정상을 밟았습니다.

 

브래디는 그러면서 NFL 역사상 선수는 물론 팀 가운데서도 슈퍼볼 우승을 가장 많이 차지한 존재가 됐습니다.

 

브래디는 또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최다 슈퍼볼 MVP 수상 기록을 다섯 번으로 늘리면서 NFL 역사상 처음으로 두 개 팀에서 슈퍼볼 MVP로 뽑힌 선수가 됐습니다.

 

두 개 팀을 슈퍼볼 우승으로 이끈 쿼터백도 매닝(인디애나폴리스, 덴버)과 브래디뿐입니다.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역사상 최고 쿼터백으로 이름을 남긴 톰 브래디. SI 홈페이지

브래디는 정규리그 통산 패싱 야드 1위(8만4520야드), 터치다운 패스 1위(624개) 기록 보유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즌 정규리그 기록이 나빴던 것도 아닙니다.

 

브래디는 이번 시즌 패싱 야드 1위(5316야드), 패싱 터치다운 1위(43개)를 차지했습니다.

 

한 마디로 NFL 쿼터백으로 이룰 건 모두 이룬 뒤 팬들이 박수 칠 때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NFC 디비전 라운드가 끝난 뒤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을 빠져 나가는 톰 브래디. 탬파=AP 뉴시스

단, 아직 브래디가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한 건 아닙니다.

 

ESPN 보도가 나오기 전 "남은 미래는 나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게 브래디가 은퇴와 관련해 밝힌 내용 전부입니다.

 

브래디의 에이전트 업무를 맡고 있는 돈 이 역시 "브래디가 조만간 자기 계획을 밝히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을 뿐입니다.

 

브래디가 쉰 살까지 뛰는 걸 보고 싶었던 한 사람으로서 ESPN이 오보를 내보냈기를 바라지만 대세가 바뀔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은 게 사실.

 

다른 말이 필요있겠습니까. 덕분에 정말 즐거웠습니다.

 

브래디는 결국 31일 인스타그램에 작별 인사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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