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리시브가 흔들려서 졌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 좀 알려주세요."
몇 시즌 전 프로배구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 들어온 한 남자부 감독에게 이렇게 요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즈음 경기를 내 준 감독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브 리시브 타령'으로 바빴기에 저렇게 이야기했던 것.
그러나 이 감독은 꿋꿋하게 '리시브가 흔들려서 진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석) 자리로 돌아와 확인한 기록지에는 이 팀이 리시브 성공률에서 앞선 것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도 감독이 그렇게 믿는다면 리시브가 흔들려서 진 게 맞습니다.
물론 이번 시즌에도 이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한국전력 김철수 감독(사진)은 25일 경기에서 선두 대한항공에 2-3으로 석패한 뒤 "이긴 세트에는 서브 리시브가 잘 됐지만 진 세트에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감독은 30일 현대캐피탈에 0-3으로 완패한 뒤에도 "기본적인 서브 리시브가 안 되니까 연결도 잘 안 되고, 공격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며 "서브 리시브가 제일 안 되는데 고쳐지질 않는다. 힘든 부분"이라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이날 경기 승부처로는 1세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세트에서 한국전력은 20-20까지 현대캐피탈과 대등하게 맞섰지만 결국 22-25로 세트를 내주면서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이 1세트에서 현대캐피탈이 기록한 리시브 성공률은 36.8%였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전력 리시브 성공률은 얼마였을까요?
정답은 42.9%입니다. 네, 한국전력 리시브 라인이 현대캐피탈보다 더 서브를 잘 받았습니다.
이 경기만 그랬던 게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경기 때 세트별 득점과 서브 리시브 성공률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25일 프로배구 남자부 경기 요약
세트 | 한국전력 | 대한항공 | ||
득점 | 리시브 성공률 | 득점 | 리시브 성공률 | |
1 | 25 | 46.7% | 22 | 52.4% |
2 | 14 | 15.8% | 25 | 53.8% |
3 | 26 | 18.8% | 24 | 39.1% |
4 | 19 | 36.8% | 25 | 47.1% |
5 | 8 | 0% | 15 | 77.8% |
김 감독 설명과 달리 한국전력이 따낸 1, 3세트 때 서브 리시브 성공률이 오히려 대한항공보다 낮았습니다.
그렇다고 '이긴 세트에는 서브 리시브가 잘 되는데 진 세트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김 감독 설명이 아주 틀린 이야기인 건 아닙니다. 배구에서는 서브 리시브 성공률이 높은 팀이 (세트를) 이길 확률이 올라가는 건 사실이니까요.
이날 현재 2018~2019 도드람 V리그 남자부는 총 270세트를 소화했습니다. 이 가운데 67.4%(182세트)가 서브 리시브 성공률에 따라 승패가 갈렸습니다. 대한항공은 81세트를 소화하는 동안 65세트(80.2%)에서 서브 리시브 성공률 우위를 점했습니다. 이 우위를 바탕으로 대한항공은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거꾸로 이야기하면 32.6%는 서브 리시브 성공률에서 뒤진 팀이 세트를 따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대한항공(42점)에 승점 1점차로 뒤진 2위 현대캐피탈(41점)은 리시브 성공률에서 뒤진 23세트 가운데 11세트(47.8%)를 따냈습니다. 남자부 7개 팀 가운데 제일 높은 기록입니다. 그 덕에 현대캐피탈은 50세트를 따내는 동안 28세트를 내줘 세트득실률(1.79)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전력은 이런 상황에서 세트를 따낸 비율이 23.1%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KB손해보험(17.9%)이 있어서 한국전력이 이 부분 최하위는 아닙니다.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 역시 '리시브 타령'이라면 김 감독과 가왕 자리를 놓고 겨뤄야 하는 수준입니다.)
▌서브 리시브 성공률 관련 팀 순위 (30일 현재)
순위 | 팀 | 승점 | 총 세트 | 세트득실률 | 리시브 우위 | 리시브 열세 극복 |
① | 대한항공 | 42 | 81 | 1.163 | 80.2% | 25.0% |
② | 현대캐피탈 | 41 | 78 | 1.786 | 70.5% | 47.8% |
③ | 우리카드 | 33 | 75 | 1.237 | 24% | 47.4% |
④ | 삼성화재 | 31 | 77 | 1.139 | 42.9% | 40.9% |
⑤ | OK저축은행 | 31 | 71 | 1.029 | 56.3% | 29.0% |
⑥ | KB손해보험 | 18 | 66 | 0.583 | 48.6% | 17.9% |
⑦ | 한국전력 | 8 | 82 | 0.3980 | 36.6% | 23.1% |
표를 보면 아시는 것처럼 우리카드는 리시브 성공률에서 앞선 게 전체 75세트 가운데 24%(18번)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 6위 한국전력이 36.6%니까 우리카드가 압도적인 꼴찌라고 할 수 있습니다. KB손해보험은 48.7%로 삼성화재(42.9%)보다도 앞선 4위입니다.
요컨대 팀 순위를 가르는 건 리시브 성공률 그 자체가 아니라 '리시브가 흔들렸을 때 어떻게 대처했느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 담당 기자 시절 (당시 전 세계 교육계가 주목하던) 핀란드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난 선생님 한 분은 "학생 모두가 가정교육을 잘 받고, 지적 이해력도 뛰어나다면 교사 일이 훨씬 쉬울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교사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코트에 나가 있는 선수가 상대 서브를 척척 받아낸다면 배구 감독 일이 훨씬 쉬울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배구 감독 일이 훨씬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