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테니스에 '신데렐라'가 나타났습니다. 주인공은 비앙카 안드레스쿠(19·캐나다·세계랭킹 60위·사진).
안드레스쿠는 1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언 웰스에서 열린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 2019 BNP 파리바 오픈(인디언 웰스 마스터스)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앙겔리크 케르버(31·독일·8위)를 2-1(6-4, 3-6, 6-4)로 물리치고 생애 첫 WTA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안드레스쿠는 우승 직후 "미쳤다. 이건 그야말로 신데렐라 스토리"라면서 "지난해에는 오사카 나오미(大坂なおみ·22·일본·1위)가 그랬다. 이제 내 이름도 위대한 챔피언들과 함께 있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오사카는 지난해 이 대회에서 생애 첫 WTA 투어 우승을 경험한 뒤 US 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고, 올해 호주 오픈에서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나이만 보면 안드레스쿠가 오사카보다 더 대단합니다. 안드레스쿠는 이날 승리로 WTA에서 2009년 대회 등급을 조정한 이후 '프리미어 맨데터리(Premier Mandatory)'에서 우승한 최연소 선수가 됐습니다. 프리미어 맨더토리는 4대 메이저 대회(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 다음으로 높은 레벨입니다. BNP 파리바 오픈과 함께 마이애미 오픈, 마드리드 오픈, 중국 오픈 등 4개 대회가 이 레벨에 속합니다. 이 중에서도 BNP 파리바 오픈은 다섯 번째 메이저 대회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명성이 높습니다.
10대 선수가 이 대회에서 우승한 건 2001년 당시 만 19세였던 세리나 윌리엄스(38·미국·10위) 이후 안드레스쿠가 처음입니다. 세리나는 1999년 이 대회 첫 출전 때도 우승했습니다. 이 대회 첫 출전에 우승 트로피를 가져간 건 윌리엄스와 안드레스쿠뿐입니다. 안드레스쿠는 와일드카드(특별 출전권)로 이 대회에 출전에 우승한 첫 번째 여자 선수로도 이름을 남기게 됐습니다.
메이저 대회로 눈을 돌려 보면 마리야 샤라포바(32·러시아·29위)가 2006년 US 오픈 정상을 차지한 게 마지막 10대 여자 단식 우승 기록입니다. 최근 10대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건 2017년 프랑스 오픈 챔피언 옐레나 오스타펜코(22·라트비아·22위·사진). 생일이 사흘만 늦었어도 10대 챔피언이 될 수 있었지만 결승전이 열린 그해 6월 7일 오스타펜코는 20세 2일이었습니다.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쪽에서는 라파엘 나달(33·스페인·2위)이 2005년 머스킷티어컵(프랑스 오픈 트로피)을 가져간 게 마지막입니다.
이름 | 나이 | 대회 | 성별 | 메이저 타이틀 |
마르티나 힝기스 | 16년 3개월 26일 | 1997 호주 오픈 | 여 | 5 |
모니카 셀레스 | 16년 6개월 7일 | 1990 프랑스 오픈 | 여 | 9 |
트레이시 오스틴 | 16년 8개월 27일 | 1979 US 오픈 | 여 | 2 |
마리야 샤라포바 | 17년 2개월 14일 | 2004 윔블던 | 여 | 5+ |
마이클 창 | 17년 3개월 21일 | 1989 프랑스 오픈 | 남 | 1 |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 | 17년 5개월 23일 | 1989 프랑스 오픈 | 여 | 4 |
보리스 베커 | 17년 7개월 16일 | 1985 윔블던 | 남 | 6 |
마츠 빌란데르 | 17년 9개월 20일 | 1982 프랑스 오픈 | 남 | 7 |
세리나 윌리엄스 | 17년 11개월 16일 | 1999 US 오픈 | 여 | 23+ |
슈테피 그라프 | 17년 11개월 23일 | 1987 프랑스 오픈 | 여 | 22 |
비외른 보리 | 18년 10일 | 1974 프랑스 오픈 | 남 | 11 |
하나 만들리코바 | 18년 10개월 15일 | 1980 호주 오픈 | 여 | 4 |
라파엘 나달 | 19년 3일 | 2005 프랑스 오픈 | 남 | 17+ |
피트 샘프러스 | 19년 29일 | 1990 US 오픈 | 남 | 14 |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 | 19년 2개월 15일 | 2004 US 오픈 | 여 | 2 |
크리스 에버트 | 19년 5개월 25일 | 1974 프랑스 오픈 | 여 | 18 |
이바 마욜리 | 19년 9개월 26일 | 1997 프랑스 오픈 | 여 | 1 |
이본 굴라공 | 19년 10개월 5일 | 1971 프랑스 오픈 | 여 | 7 |
스테판 에드베리 | 19년 10개월 20일 | 1985 호주 오픈 | 남 | 6 |
어린 선수가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게 된 건 공인구 교체와 관련이 있습니다. 국제테니스연맹(ITF)은 2002년 (반발력이 적은) ‘느린 공’으로 공인구를 바꿨습니다. ‘서브 앤드 발리’ 전술이 테니스를 재미없게 만든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 (ITF 의도와 반대로) 테니스는 조금 더 파워풀한 경기로 바뀌었습니다. 이에 아직 신체가 완벽히 성숙하지 않은 10대 선수가 예전만한 성적을 올리기 어렵게 된 겁니다.
1998년 출전 연령 제한 규칙을 도입한 것도 10대 선수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이 규칙은 만 18세가 되지 않은 선수는 풀타임 스케줄을 소화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만 14세가 되기 전에는 아예 프로로 전향할 수 없으며, 여자 선수는 만 14세 선수는 WTA투어 대회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제니퍼 캐프리아티(42·미국)가 1990년 프랑스 오픈 여자 단식 준결승에 진출했을 때가 만 열네 살이었습니다.
반면 베테랑 선수는 의무 출전 경기 숫자가 줄면서 체력에 따라 일정을 조정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스타 선수라는 귀한 '상품'을 보호하려는 조치입니다. WTA는 지난해 12월 17일에는 임신 때문에 대회에 나오지 못했을 때는 출산일 기준으로 3년간 스페셜 랭킹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손질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안드레스쿠가 이런 제약을 극복하고 10대 메이저 챔피언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요? 안드레스쿠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10대 여자 테니스 선수 중 가장 앞서 있다는 평을 들은 건 아만다 아니시모바(18·미국·67위·사진)였습니다. 2001년생 아니시모바는 올해 1월 호주 오픈 4라운드 진출에 성공하면서 2000년대에 태어난 선수로는 처음 메이저 대회 16강에 올랐습니다.
아, 남자 쪽에서는 거의 3년 동안 정확하게는 메이저 대회 11번을 치르는 동안 10대는커녕 20대 챔피언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