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로야구 (아직 새 구단명이 없어서) 히어로즈가 고종욱(29·사진 왼쪽)을 SK에 내주고 삼성에서 이지영(32·사진 가운데)을 받아오게 됐습니다. 선수를 보낸 팀과 받아온 팀이 다른 건 삼각 트레이드를 진행했기 때문. 중간에 연결고리로 원래 SK에서 뛰던 김동엽(28·사진 오른쪽)이 삼성으로 팀을 옮깁니다. 한국 프로야구 37년 역사상 삼각 트레이드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로써 이번 오프시즌에만 8명이 트레이드로 유니폼을 갈아입었습니다. 방아쇠를 당긴 건 KT였습니다. KT를 중심으로 강민국(26·NC→KT) 홍성무(25·KT→NC) 조용호(29·SK→KT) 남태혁(25·KT→SK) 전유수(32·SK→KT) 등 5명이 팀을 옮겼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야구 취재진 사이에서는 앞으로도 대형 3루수가 팀을 옮기는 등 트레이드가 더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반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는 재미있는(?) 소식이 들리지 않습니다. 시장이 열린 지 17일이 지났지만 모창민(33·3년 17억 원)은 NC, 최정(31·6년 106억 원)과 이재원(30·4년 69억 원)은 SK와 '집 토끼' 자격으로 계약을 맺었을 뿐입니다. 이번 FA 시장 최대어 양의지(31)를 제외하면 협상 테이블에서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릴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 반대급부로 트레이드 카드를 여기저기 맞춰보고 있는 겁니다. 


FA 시장이 이렇게 미지근한 제일 큰 이유는 역시 '지대(rent) 부담' 때문입니다.



원래 '지대(地代)'는 "지상권자가 토지 사용의 대가로 토지 소유자에게 지급하는 금전이나 그 외의 물건"(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는 낱말이지만 경제학에서는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잠시 이 개념을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를 보시면: 


사람들은 대개 노동을 공급해서 돈을 번다.


수입이 적다며 불만족스러워하지만 지금의 일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일을 할 때보다 수입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일에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지금의 일이나 직장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사람들이 벌고 있는 돈에서 지금의 일 말고 다른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즉, 노동의 기회비용. kini註 - 전용·轉用수입)을 뺀 차를 '경제적 지대'라고 부른다.


경제적 지대는 지금의 일을 하면서 받고 있는 일종의 웃돈인 셈이다.


(중략)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회사원으로 일할 수 있으므로 일반 근로자의 노동 공급은 비교적 쉽게 증가한다.


이런 사람들은 경제적 지대를 별로 벌지 못한다.


이에 비해 연예인, 프로 운동선수, 의사, 변호사는 지금의 직업을 포기하면 다른 곳에서는 이보다 훨씬 적은 수입을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벌고 있는 수입의 대부분이 경제적 지대다.


이들이 경제적 지대를 많이 버는 이유는 노동 공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의사나 변호사들이 대학 입학 정원이나 시험의 합격자 수를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공급을 제한해 경제적 지대를 늘리고 몸값을 비싸게 하기 위해서다.


의사나 변호사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소수만 보유할 수 있는 특정한 권리'가 있으면 경제적 지대를 더 많이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면허가 필요한 특정 직종이나 국가 등에서 허가를 받아야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은 모두 경제적 지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는 FA가 바로 이런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 연봉 3억5000만 원을 받은 이재원이 FA가 아니었다고 해도 앞으로 4년 평균 17억2500만 원(69억 원÷4년)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사실 프로야구라는 노동 시장에서는 FA 자격을 얻기 전까지는 선수가 보류권(保留權)에 묶여 있기 때문에 지대를 누리는 쪽은 구단입니다. 그러다가 이 선수가 (전성기 기량을 유지한 채) FA 자격을 얻고 나면 균형이 선수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래프 출처


현재 프로야구 구단에서는 FA 제도 도입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무게추가 선수 쪽으로 기울어도 너무 기울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엄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FA 계약 총액을 4년 80억 원으로 제한하려 했었다는 게 그 방증. KBO 관계자는 "FA 상한제는 KBO가 주도한 게 아니라 10개 구단이 먼저 의견을 모아 발의했다. 구단들의 생각에 우리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양의지는 아마 80억 원이 훌쩍 넘는 돈에 계약을 맺을 겁니다. 공급이 적은 자원일수록 지대가 따르게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양의지 같은 선수가 FA 시장에 나오는 건 드물고 또 드문 일이니까요. 양의지는 올 시즌 소속팀 두산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주전 포수이면서 잠실구장을 안방으로 쓰면서 OPS(출루율+장타력) 1.013(4위)를 기록한 강타자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김정준의 야구수다'에서 결론 내린 것처럼 양의지가 결국 '린의지'가 될 확률이 제일 높다고 봅니다. 그리고 정말 NC와 계약한다면 몸값 총액이 100억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어차피 이 정도 금액이 아니라면 양의지도 '홈 디스카운트'를 감수할 의지가 있을 테고, 현재 분위기에서 이 정도 금액을 부담할 수 있는 팀은 NC밖에 없으니까요.


이렇게 보는 첫 번째 이유는 다른 구단은 모기업 고위층까지 결재 라인을 올라가면서 설득 작업을 벌여야 하지만 NC는 김택진 구단주(엔씨소프트 대표)만 OK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또 NC가 추구하는 '프런트 야구'가 제대로 뿌리 내리도록 하려면 이동욱 감독이 연착륙하는 게 필수입니다. 새 구장이 문을 여는 것도 NC로서는 지갑을 열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모기업 사정도 극과 극입니다. 두산은 정부에서 탈(脫)원자력발전소 정책을 추진하면서 핵심 계열사로 손꼽히는 두산중공업이 휘청이고 있지만, 엔씨소프트에서 발매한 모바일 게임 '리지니M'은 출시 1년 만에 매출 1조50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당연히 지대를 부담할 여력도 NC가 더 큽니다.


또 이재원이 69억 원을 받았다는 것도 분명 양의지 몸값에 영향을 줄 겁니다. 두 선수 모두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경험이 있는 포수지만 두 선수는 '클래스가 다르다'고 해도 크게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적어도 연간 10억 원 이상 지대가 붙어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재원과 양의지 모두 '리코스포츠 에이전시' 소속이기 때문에 이 금액이 바로미터로 작용할 확률이 높습니다.



거꾸로 LG와 재계약할 게 유력한 박용택(39)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FA는 지갑을 활짝 여는 팀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유니폼을 벗는 베테랑이 늘어나고 트레이드 시장이 바쁘게 움직인다는 건 구단에서 유망주를 시장에 공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뜻이고, 시장에 남아 있는 FA가 '과연 대체 불가능할 정도인가'를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게 사실이니까요. 그러면 지대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프로야구 10개 구단이 FA 시장에서 19명에게 쓴 돈은 631억500만 원이었습니다. 평균으로 따지면 33억2000원이 넘지만 중간값(median)은 12억 원이었습니다. 그만큼 이미 빈익빈 부익부가 심했던 것. 올해는 이 두 값 차이가 더 벌어져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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