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두산이 '두목 곰' 김동주(38)를 풀어줬습니다.
두산은 그러면서 "25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출할 2015년 보류선수 명단에서 김동주를 제외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두산이 김선우(37)를 풀어줄 때도 보류선수란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도대체 보류선수란 무엇일까요?
보류선수할 때 보류는 한자로 '保留'라고 씁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이렇게 지킬 보(保)에 머무를 유(留)를 쓰는 '보류'를 검색하면 "어떤 일을 당장 처리하지 아니하고 나중으로 미루어 둠"이라는 풀이가 뜹니다.
그러면 이 선수는 나중으로 미뤄두는 선수일까요? 그렇다면 무엇을 미루는 걸까요?
이는 영어 낱말 'reserve'를 (일본에서) 잘못 해석한 데 따른 결과입니다.
reserve에는 "(어떤 권한 등을) 갖다[보유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지한다"는 영어 표현을 "All rights reserved"라고 쓸 때 바로 그 뜻입니다.
야구에서는 누군가 이 낱말을 "(자리 등을) 따로 잡아[남겨] 두다, (판단 등을) 보류[유보]하다"로 해석해 '보류선수'라고 엉터리로 적게 된 겁니다.
2014 야구 규약 제6장 47조 '보류절차'를 보면 "매년 11월 25일 이전에 구단은 총재에게 당해 연도 소속선수 및 제105조에 규정된 신고선수 중 익년도 선수계약 체결 권리를 보류하는 선수(이하 "보류선수"라 한다) 명단을 제출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년도 재계약 대상자가 바로 보류선수가 되는 겁니다.
이에 대해 최민규 기자는 "(자리 등을) 따로 잡아[남겨] 두다, (판단 등을) 보류[유보]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풀이했습니다.
'다음 시즌 계약할 권리가 있는데 계약은 일단 미뤄둔다'는 뜻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위에서 영어 표현 reserve를 가지고 말씀드린 것처럼 이 보류선수 제도는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 프로야구 리그였던 내셔널 어소시에이션(NA)과 초기 내셔널리그에는 보류선수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선수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어떤 팀과도 자유롭게 계약을 맺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구단주들은 이렇게 선수들이 자유롭게 오가면 몸값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1879년 각 팀에서 5명을 정해두고 이 선수들은 다른 팀에서 데려가지 못하도록 하는 권리, 즉 보류권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선수가 보호 선수인지 비밀에 부쳤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나중에는 리그 규칙에 "구단은 보호 선수가 누구인지 발표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그 뒤 NA는 똑같은 제도를 도입한 내셔널리그와 평화협정을 맺고 두 리그 사이에도 상대 보호 선수는 건드리지 않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리그는 점점 보호 선수 명단을 늘렸습니다.
나중에는 결국 팀 멤버 전부가 계약서를 쓰면서 '보류 조항'을 넣게 됐습니다. 구단이 모든 선수를 보류하게 된 겁니다.
이에 따라 구단은 팀에 속한 누구든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됐습니다. 구단에서 선수들을 재산처럼 받아들이게 된 겁니다.
그 뒤로 선수들은 1890년 보류 조항이 없는 플레이어즈 리그(Players League)를 만드는 등 이 조항에 반발했지만 미국 연방 대법원은 "야구는 상업이 아니라 오락"이라며 '셔먼 반독점법'을 위반한 게 아니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분위기가 바뀐 건 1966년 메이저리그선수노동조합(MLBPA)이 문을 열면서부터.
방아쇠는 1969년 말 커트 플러드(1938~1997)가 트레이드를 거부한 사건이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소속이었던 그는 이해 시즌이 끝난 뒤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 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보류 조항 때문에 이 트레이드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 조항이 위법이라며 당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였던 보위 쿤(1926~2007)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비록 플러드는 소송에서 패했지만 이는 나중에 자유계약선수(FA) 제도를 도입하게 되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이번에 나선 건 투수 데이브 맥널리(1942~2002)와 앤디 매서스미스(69). 두 선수는 '보류 조항'이 들어 있으면 1976년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겠다고 구단을 압박했습니다.
결국 MLBPA는 "메이저리그서 6년을 뛴 선수는 원하는 팀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다"는 FA 권리를 얻어냈습니다.
맥널리는 오라는 팀이 없어 결국 이해 유니폼을 벗었지만 1975년 19승(14패)을 기록한 매서스미스는 애틀랜타로 옮겨 이듬해 11승(11패)을 기록했습니다. 이를 통해 거의 100년 만에 메이저리그에서는 보류 조항이 사라졌습니다.
재미있는 건 김동주 역시 FA 라는 점입니다. 김동주는 2011년 12월 31일 두산과 3년간 총액 32억 원에 FA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렇다면 올해 어차피 계약이 끝나고 보류 조항에서 자유로운 게 아닐까요?
김동주 본인에게는 애석한 일이지만 프로야구에서 FA 자격을 다시 얻으려면 야구 규약 제159조에 따라 4시즌을 더 1군에서 뛰어야 합니다.
김동주는 기간도 미달인데다 계약 기간 절반 정도를 퓨처스리그(2군)에서 뛰었습니다. 그러니 꼼짝없이 보류 조항에 묶여 있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