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다시 야구팬에게 익숙한 응원가를 부를 수 있게 될까요?


원래 프로야구 응원가는 많은 이들이 쉽게 따라부를 수 있도록 국·내외 인기 가요를 바탕으로 삼는 일이 많았습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을 대신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적확하게는 마케팅 부문 자회사인 KBOP가) 그 대가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음반산업협회 한국음악실연자협회 등 저작권 단체에 저작권료를 지급했습니다. KBO 관계자는 "지금껏 20억 원 정도를 저작권료로 썼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 중반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야구 각 구단에서 원곡을 편곡하고 개사해 응원가로 바꾸는 과정에서 저작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 결국 KBO와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지난해 5월 1일부터 대중가요를 바탕으로 한 응원가를 모두 사용하지 않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결정한 제일 큰 이유는 작사·작곡가 21명이 지난해 3월 15일 삼성을 상대로 소장을 접수했기 때문.


시간이 1년 가까이 흘러 드디어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법원은 대중가요를 응원가 스타일로 바꿔 불러도 저작인격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구단 손 들어준 법원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판사 박상구)는 윤일상 김도훈 씨 등이 "삼성이 음악 저작물을 야구 응원가로 쓰면서 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허락 없이 악곡 또는 가사를 일부 변경·편곡·개사해 동일성 유지권 또는 2차 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했다"며 4억2000만 원을 물어달라고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야구장 관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음역대를 좀 높게 하거나 박자 템포를 좀 빠르게 변경한 것으로 음악 전문가가 아닌 관객들로서는 기존 악곡과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일부분을 다르게 한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음악 저작물이 응원가로 사용되는 과정에 수반될 수 있는 통상적인 변경에 불과하다"며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내렸습니다.


2차 저작물 작성권 침해 주장에 대해서도 "삼성이 사용한 응원가들이 기존 악곡에 대한 사소한 변형을 넘어 기존 악곡을 실질적으로 개변한 것으로서 편곡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삼성이 응원가로 바꾸면서 새로운 가사를 덧붙인 데 대해서는 "대부분 새로운 가사로 변경하고, 일부 곡은 기존 가사와 변경된 가사 사이 유사한 문구조차 발견할 수 없다"면서 "원래 가사 중 창작성이 있는 기존 표현이 잔존해 있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가사를 만든 경우 변경된 가사는 독립된 저작물로 볼 수 있어 침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원고는 저작권자 이름을 밝히지 않아 성명표시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원고의 음악 저작물은 주로 야구 선수가 등장하는 동안 그리고 투수가 공을 던지고 재정비하는 동안 사용됐는데, 짧은 시간 동안 음악저작권자들의 성명을 일일이 표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판결했습니다.



새 시즌부터 원래 응원가 들을 수 있나?


그렇다고 다음달 개막하는 2019 시즌 곧바로 원래 응원가를 쓰기는 어렵습니다.


삼성 관계자는 "1심에서 승리했지만 원고 측에서 항소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이번 건 말고도 비슷한 소송이 두 건 더 진행 중인 상태"라며 "앞으로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단, 등장곡은 편곡 없이 그대로 재생했기 때문에 저작인격권 문제로부터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긍적적인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은 아직 저작권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 노래도 있습니다. '오~오오오오오 최!강!삼!성!'로 시작하는 팀 응원가가 바로 그 노래. 흔히 독일 그룹 '굼베이 댄스 밴드'가 부른 원곡 제목을 따서 '엘도라도(Eldorado)'라고 부르는 응원가입니다.


삼성 관계자는 "아직 원곡자와 사용 허가 여부에 대해서도 합의하지 못한 상태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노래는 전부 사용하지 않겠다고 방침을 정한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삼성만 이렇게 조심스러운 건 아닙니다. KBO 관계자는 "현재 삼성을 포함해 6개 구단이 저작인격권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다. 현재로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어떤 의견을 피력하기가 곤란한 상황"이라면서 "구단별로 응원가 사용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조율이 필요하다. 다음 마케팅 회의 때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저작인격권 무엇?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KBO에서 대표로 저작권료를 냈는데도 이런 문제가 생긴 건 저작권에 '저작재산권'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 이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 한국인권재단에서 '브런치'에 올린 글을 인용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저작권은 크게 두 가지,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으로 나눠진다. 흔히들 우리가 생각하는 저작권은 전자인 저작재산권이다. 저작재산권은 저작물을 일정한 방식으로 이용하여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저작권자가 그 저작물을 복제할 권리인 '복제권'(저작권법 제16조), 저작물을 공연할 권리인 '공연권'(동법 제17조), 저작물을 공중 송신할 권리인 '공중송신권'(동법 제18조), 저작물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전시할 권리인 '전시권'(동법 제19조),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배포할 권리인 '배포권'(동법 제20조), 판매용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대여할 권리인 '대여권'(동법 21조), 그리고 그 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하여 이용할 권리인 '2차적 저작물 작성권'(동법 제22조)이 그것이다.


저작인격권은 저작자가 자기의 저작물에 대하여 가지는 인격적인 이익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권리이다. 저작권법 제14조 1항에서는 '저작인격권은 저작자 일신에 전속한다'라고 규정하며 그 권리를 성문화하고 있다. 저작인격권에는 그의 저작물(혹은 원저작자의 동의를 얻어 작성된 2차적 저작물 또는 편집저작물 포함)을 공표하거나 공표하지 않을 것을 결정할 권리인 '공표권'(저작권법 제11조),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 또는 저작물의 공표 매체에 그의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할 권리인 '성명 표시권'(동법 제12조), 그 저작물의 내용, 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인 '동일성 유지권'(동법 제13조)이 있다.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의 차이는 '권리의 양도'의 가능성 유무다. 저작재산권은 조건의 범위 내에서 권리 자체를 양도 혹은 상속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저작권자가 해당 권리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저작인격권은 저작재산권이 이전한다 하더라도 원 저작자에 귀속되며, 절대 양도, 상속되지 않는다. 혹 양도계약 저작자가 저작인격권 양도를 약속하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효력이 없이 무효화가 된다. 결국 KBO응원가 사태를 보자면 지금까지 지불한 저작권료는 전부 '저작재산권'에 대한 비용이었으며, 각 응원가의 음원의 본 저작자가 본인의 저작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했기에 일어난 것이라는 분석이다.


야구팬이 응원가만 들으려고 야구장에 가는 건 아니지만 응원가가 빠지면 야구를 보는 재미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게 분명한 사실. 그런 점에서 법원 판단만큼이나 '원만한 합의'가 중요할 겁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있는 자리가 KBO 총재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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