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로배구 TV 중계를 보다 보면 세트가 시작할 때마다 위 그림처럼 선수 위치를 나타내는 컴퓨터 그래픽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스포츠 중계에 저런 그림이 나오면 포지션을 알려주는 게 보통이지만 배구에서는 서브 로테이션 순서를 나타냅니다. 


배구에서 선수들은 오른쪽 그림 같은 순서로 서브를 넣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에서 현대캐피탈 대니(30·크로아티아)는 레프트라서 전위 왼쪽에 자리잡은 게 아니라 4번 서버라서 그 자리에 있는 겁니다. 역시나 배구 중계 때 4번 자리 같은 표현을 들으셨을 텐데 그 자리가 바로 이 자리입니다.


전체적으로 이 그림을 야구에 비유하자면 수비 위치 그래픽보다 타순표 그러니까 라인업에 더 가깝습니다. 표현도 야구하고 똑같이 라인업 또는 (서빙·serving) 오더입니다. 야구에서도 9번 타자가 공격을 마치면 1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는 것처럼 배구에서도 6번 서버까지 서브가 끝나면 1번이 다시 서브를 넣습니다.


야구하고 제일 큰 차이는 야구는 경기 시작 전에 한 번만 오더 용지를 교환하지만 배구는 매 세트마다 라인업을 제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각 팀에서 심판진에 서브 순서를 적은 종이를 건네면, 부심은 경기 시작 2분 전에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실제로 제 위치에 맞게 서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 다음 서버가 바뀔 때마다 선수들은 시계 방향으로 한 칸 씩 자리를 옮깁니다. 이 자리는 서브 때 각 선수가 지키고 있어야 하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이를 어기면 '포지션 폴트'라는 반칙을 저질러 상대에게 1점을 헌납하게 됩니다.


선수가 6명만 있는 팀도 로테이션을 짜는 방법은 1440가지나 됩니다. 선수 6명을 줄세우는 방식 720(6×5×4×3×2×1) 가지고, 방향도 두 가지(프런트오더, 백 오더)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 각 팀은 선수가 6명보다 훨씬 많은데도 실제로 적어 내는 라인업 종류는 100가지도 넘지 않습니다.


프로배구 2016~2017 NH 농협 남자부 경기에서 22일 경기까지 라인업 종류를 가장 다양하게 적어낸 건 OK저축은행입니다. OK저축은행이 31경기에서 120세트를 진행하는 동안 적어 낸 라인업은 총 86가지입니다. 똑같은 라인업을 1.4번밖에 쓰지 않은 셈입니다. 그다음으로는 31경기 121세트 동안 66가지를 쓴 대한항공이 두 번째로 라인업 종류가 많았습니다.


최하위 OK저축은행과 현재 선두 대한항공은 성적이 정반대인 만큼 라인업 종류가 많았던 이유도 다릅니다. OK저축은행은 거의 시즌 내내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고 '주포' 송명근(24)도 제 컨디션으로 출장한 경기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니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으로서는 없는 살림을 쥐어 짜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대로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은 풍족한 살림을 즐겼죠. 레프트 두 자리에 곽승석(29) 김학민(34) 신영수(35) 정지석(22) 등 네 명을 놓고 이리저리 카드를 맞춰가며 라인업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센터 쪽에서도 김형우(35) 진성태(24) 진상헌(31) 등 3명이 각각 70세트 이상 뛰었고 최석기(31)도 46세트를 소화했습니다.


거꾸로 라인업 종류가 가장 적었던 팀은 한국전력이었습니다. 한국전력은 역시 31경기서 133세트를 치르는 동안 라인업을 29가지밖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라인업 한 개를 평균 4.6번 활용한 셈입니다. 원래 '오소독스'한 오더는 세터가 1번 자리, 그러니까 서브를 제일 먼저 넣는 자리에 오는 겁니다. 이 비율도 31.6%(42세트)로 한국전력이 제일 높았습니다.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은 "상대에 따라 오더를 다양하게 바꾸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뜻밖"이라면서 "우리 팀은 주전과 비주전 선수 사이에 격차가 크기 때문에 다양하게 선수를 기용하는 데 한계가 있어 그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신 감독이 열 번 이상 쓴 라인업은 5개. 이 역시 남자부 7개 팀 중에서 제일 많은 기록이었습니다.


▌프로배구 2016~2017 NH농협 V리그 남자부 구단별 라인업 숫자 

 순위  구단  세트  라인업 개수  평균 사용 횟수
 ①  OK저축은행  120  86  1.4
 ②  대한항공  121  66  1.8
 ③  KB손해보험  124  50  2.5
 ④  현대캐피탈  126  47  2.7
 ⑤  우리카드  126  43  2.9
 ⑥  삼성화재  128  40  3.2
 ⑦  한국전력  133  29  4.6

※ 22일 현재


오더 종류를 따질 때는 서브 순서도 따졌습니다. 예컨대 우리 팀이 서브를 먼저 넣을 때 A-B-C-D-E-F 순서로 된 오더와 나중에 넣을 때 F-A-B-C-D-E는 같은 오더로 취급한 겁니다. 또 서브를 넣지 않는 포지션인 리베로 역시 따로 따지지 않았습니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