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요 며칠 대학생 인턴 기자 친구들하고 배구 취재를 할 일이 있었는데, 배구 경기에 대한 개념을 잘 모르더라고요. 배구장 취재 갔을 때는 세터 토스(세트) 문제도 잘 찾아내던 친구도 로테이션이라는 개념을 잘 모르고 말입니다. 그래서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배구 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다.

배구에서 서브는 문자 그대로 '서비스'였습니다. 경기를 시작하기 위해 상대에게 공을 쳐주는 행위였죠. 그래서 코트에 나와 있는 선수 6명이 돌아가면서 서브를 넣게 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말입니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먼저 경기를 시작할 때 ①선수가 서브를 넣습니다. 만약 우리 팀이 득점에 성공하면 계속 ①선수가 계속 서브를 넣습니다. 그러다 상대팀에서 득점하면 상대 선수가 넣고, 다시 우리 서브 차례가 오면 ⑥선수가 서브를 넣는 겁니다. 대신 ①자리에 있던 선수는 ②→③→④→⑤→⑥ 순서로 자리를 옮기고 말입니다. 이렇게 선수들이 돌아가는 걸 '로테이션(roration)'이라고 합니다.


(이건 선수 한 명이 돌아가는 순서를 표시한 겁니다. 배구에서 자리 번호를 쓸 때가 있는데 이 때는 반시계 반향으로 ①→⑥ 순서입니다.)


그런데 배구에는 레프트, 라이트 같은 포지션이 따로 있다고 들으셨다고요? 네, 맞습니다. 이 그림에서 위치는 서브 순간 그러니까 수비 팀 관점에서는 리시브 때 위치를 가리킵니다. 레프트, 라이트 같은 포지션은 공격할 때 위치를 나타내는 말이고요. 상대팀이 서브를 가져갈 때마다 한 자리씩 옮기고 그 자리에서 공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이 자리를 못 지키면 '포지션 폴트'라는 반칙을 저지르게 됩니다.


레프트, 리베로만 서브를 받는다.

그럼 한번 실제 포지션을 볼까요? 배구는 원래 아래 그림 같은 포지션으로 경기에 나섰습니다. 그래야 순서대로 한 바퀴를 돌면 뒤에 있는(후위) 선수들이 앞 줄(전위)에 왔을 때 다시 레프트-센터-라이트 순서가 될 테니까요.



그러다 공격수들이 공을 잘 때리려면 공을 토스(공식 용어로는 세트)해 주는 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 선수가 바로 세터죠. 보통은 후위에 있는 날개 공격수(레프트와 라이트를 함께 일컫는 말) 중 한 명 대신 세터가 들어갔습니다. (배구 초창기에는 세터가 두 명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또 주로 블로킹과 속공을 담당하는 센터들은 키가 커서 리시브가 약했습니다. 한국 대표팀 장윤창이 스파이크 서브를 상용화(?)시킨 뒤로 서브는 날로 강해져 가는데 말이죠. 그래서 수비만 전담하는 '리베로'라는 포지션이 등장하게 됐습니다. 이미 세터는 라이트를 대신해 들어가는 자리로 굳어진 다음이었죠. (물론 정확한 배구 역사하고는 다른 표현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대 배구에서 경기를 시작 때 서브권을 가진 팀은 보통 아래 같은 포지션으로 경기에 나오게 됐습니다. 리베로는 경기(세트)에 선발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일단 센터가 출전한 뒤 곧바로 교체 투입합니다.



이렇게 자리잡고 있으면 세터가 제일 먼저 서브를 넣고 경기를 시작하겠죠? 그러다 점수를 잃어 상대방에게 서브권을 넘겨줬다고 칩시다. 이 때는 자리를 바꾸지 않습니다. 로테이션은 수비팀이 득점했을 때 자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서브를 넣는 선수가 바뀌는 거니까요. 그래서 지금 이 자리 그대로 서브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 다시 점수를 주고 받으면 로테이션을 해야 하죠. 아래 그림처럼 말입니다.



리베로 위치가 이상합니다. 왜 그럴까요? 세터는 공격수가 공을 잘 때리도록 공을 세트해 주는 게 제일 중요한 미션. 그렇기 때문에 세터가 리시브를 받으면 세트를 할 수가 없습니다. 배구에서는 한 선수가 연달아 공을 터치하면 반칙이거든요. 그래서 리베로가 세터 곁에 붙어서 원래 세터가 받아야 할 리시브까지 대신 받아주는 겁니다.


여기서 로테이션을 한 번 더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앞줄(전위)은 리베로-레프트-라이트, 뒷줄(후위)은 세터-레프트-센터 순서가 될 겁니다. (머릿속으로 한칸씩 옮겨 보세요.)


리베로는 전위에 오면 안 됩니다. 그래서 경기 시작 때 교체했던 센터하고 자리를 바꿉니다. 그럼 전위는 센터-레프트-라이트 순서가 되겠죠? 후위로 간 센터는 일단 서브를 넣습니다. 리베로는 서브를 넣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상대 서브 때 다시 리베로에게 자리를 내줍니다. 그러면 아래 그림 같은 포지션이 됩니다.



네, 복잡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서브를 받는 팀 선수들은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여기서 자리를 지킨다는 뜻은 1)앞 선수가 뒤 선수보다 뒤로 오면 안 되고 2)왼쪽 선수가 가운데 선수보다 오른쪽에 오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 그림에서 앞줄 선수들, 즉 센터-레프트-라이트는 모두 뒷줄 선수들 보다 앞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뒷줄 선수들도 세터-레프트-리베로 자리를 지키고 있고요. 이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겁니다. 대신 리시브가 약한 선수들 '보호'하려고 그 선수들 근처에 붙어 있는 거죠. 그래서 아래 그림 같은 포지션도 가능합니다. (로테이션을 한 번 더 했습니다.)



앞줄 선수들은 세터-센터-레프트 순서를 지키고 뒷줄 선수들도 레프트-리베로-라이트 순서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죠. 비록 V자 형태로 서 있기는 하지만 그 어떤 뒷줄 선수도 앞줄 선수 앞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렇게 서도 관계가 없는 겁니다.


여기까지 그림을 보시면서 재미난 사실 하나 발견 못 하셨나요? 바로 서브는 리베로하고 레프트만 받는다는 겁니다. 바로 위 그림 오른쪽에 레프트하고 라이트가 겹쳐 있는데요, 이때 리시브 '의무'가 있는 선수는 레프트입니다. 왜 그런지는 이 글 마지막을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왜 세터가 제일 먼저 서브를 넣을까?

그럼 공격은 어떻게 할까요? 사실 이건 보통 세터가 서브를 제일 먼저 넣는 이유하고도 관련이 있습니다. 자, 다시 그림을 보겠습니다. 실제로 네트 앞에 곧바로 바로 떨어지는 서브는 사실상 없는데다, 공격을 하려면 어차피 위치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서브를 받을 때는 이렇게 선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이 포지션을 이해 못 하시는 분은 안 계시겠죠?)



세터는 리베로 뒤에 서 있다가 상대가 서브를 넣으면 곧바로 네트 쪽으로 붙어서 토스(세트)를 준비합니다. 리베로가 서브를 받으려 자리를 잡으면 레프트도 공격 위치를 잡죠. 서브를 받은 리베로는 세터와 일직선상에 서서 다시 공을 받을 준비를 합니다. 그럼 아래 그림 같은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



이때 세터는 공격수 4명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공을 세트하는 자신과 어차피 공격에 가담할 수 없는 리베로를 빼고는 모든 선수들에게 공을 띄울 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세터가 후위에 있고, 리베로가 제대로 리시브를 받을 때 가장 효과적인 공격 전술을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후위에 있는 레프트가 공을 받아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전위 레프트가 공을 받으면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만약 이 그림처럼 전위 레프트가 리시브를 하다가 중심을 잃어 공격에 가담하기가 곤란한 상황이 되면 세터는 오른쪽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수비 팀이 보기에도 오른쪽에 블로킹을 뜰 필요가 사라지는 거죠. 그래도 라이트를 활용하거나 센터 속공을 쓸 수 있는 상황은 됩니다. 중앙 후위 공격도 여전히 가능한 상황이죠. 그래서 세터 후위에 오래 있을 수 있도록 후위가 가장 먼저 서브를 넣는 포지션을 감독들이 가장 많이 채택하는 겁니다.


여기서 퀴즈 하나: 그럼 경기(세트) 시작 때 서브를 받는 팀은 세터를 어디에 두는 게 좋을까요? 맨 처음 로테이션 그림에서 ⑥번, 그러니까 다음 서브 위치에 두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세터를 후위에 가장 오래 둘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럼 세터가 전위에 있을 때는 어떨까요? 일단 아래 그림 같은 포지션이라고 치겠습니다.



이제 쉽게 아시는 것처럼 당연히 이렇게 서서 서브를 받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선수들 위치를 한 번 조정해 보겠습니다. (앞줄 세터-센터-레프트①, 뒷줄 레프트②-리베로-라이트 순서입니다.)



자, 이 상황에서 누가 리시브를 해야 제일 좋을까요? 물어볼 것도 없이 '리베로'입니다. 센터 대신 리시브하라고 있는 포지션이 리베로니까 말입니다. 그럼 세터는 다시 아래 같은 공격을 연출할 수 있게 됩니다.



라이트가 백어택을 해야 해서 후위에 있을 때보다는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해볼 만한 싸움이죠. 거꾸로 상대팀에서는 굳이 리베로에게 공을 줄 필요와 이유가 전혀 없는 겁니다. 그럼 누구를 노려야 할까요? 당연히 레프트①입니다. 레프트①이 리시브를 하다가 중심을 잃거나 넘어지기라도 하면 세터는 아예 왼쪽을 쓸 수가 없게 됩니다.



사실상 라이트 백어택을 빼고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 마주하게 되는 겁니다. 당연히 수비팀은 왼쪽을 비워둘 테니 가운데 속공을 띄우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동선이 꼬였으니 중앙 후위 공격 같은 것도 남의 이야기이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는 리시브가 흔들리면 라이트 백어택에 의존하는 '몰방 배구' 말고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게 됩니다. 감독들이 틈만 나면 리시브, 리시브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물론 세계 배구 흐름과는 다르지만요.)


여기에 라이트가 공을 받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라이트가 공을 받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대팀은 그냥 오른쪽은 버리면 되는 겁니다. 아래 그림처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트들은 서브가 넘어올 때 아예 코트 바깥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는 세터가 후위에 있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왼쪽을 버리면 된다는 사실만 달라질 뿐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배구 선수에게 "라이트에서 레프트로 포지션을 바꿔보라"고 주문하는 건 공격 자리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꾸라는 뜻이 아니라 '리시브를 강화하라'는 뜻이 되는 겁니다. 레프트가 되면 적어도 세터한테 오는 서브는 받아줘야 하니까요.


배구는 선(線)의 경기

물론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건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경기에서는 상대팀에 따라 로테이션 순서를 바꾸는 일이 퍽 잦습니다. 기본적으로 전위에서 블로킹 싸움을 붙여야 하는 변수도 있기 때문이죠.


또 이해를 쉽게 하려고 선수들이 리시브 포지션에서 그대로 공격을 하는 것처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는 서브를 넣는 순간 자기 자리를 찾아갑니다. 서브를 넣고 나서는 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도 라이트는 오른쪽으로 이동하거나, 백어택 자리를 잡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리시브를 안 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레프트를 같은 포지션처럼 설명했는데 실제로 (한국에서는) 주공격수와 보조공격수로 나뉩니다. 보통 세터와 로테이션 선수가 붙어 있는 선수(세터-레프트)가 주공격수입니다. 왜냐하면 보조공격수, 즉 수비가 더 좋은 레프트를 라이트하고 붙여 놔야(라이트-레프트) 수비에서 라이트를 해방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공격수는 중앙 후위 공격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배구는 얼핏 '점(點)'의 경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선수들이 각자 점처럼 흩어져 공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니까요. 그러나 실제로는 점과 점을 이어주는 선이 중요한 경기입니다. 패스와 토스, 스파이크로 이어지는 선은 물론 코트 위에서 선수들이 움직이는 모양새도 그렇습니다.

혹시 이 글로 처음 로테이션을 알게 된 분이 계시다면 서브를 넣는 선수만 보지 마시고, 서브를 받는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살펴보시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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