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에서 상대 팀 서브를 받고 나서 네트를 향해 달려들어 스파이크를 꽂아 넣는 장면은 레프트만 연출할 수 있습니다. 배구에서는 리베로하고 레프트만 서브 리시브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리베로는 수비 전문 선수라 수비만 잘하면 되지만 레프트는 '날개 공격수'라 공격도 해야 합니다.
공격과 수비 모두 잘하면 제일 좋겠지만 이런 선수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 프로배구에서는) 레프트를 보통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눠 코트에 내노냅니다. 당연히 한 명은 공격형, 한 명은 수비형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에서는 김학민(34) 신영수(35)는 공격형, 곽승석(29) 정지석(22)은 수비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리베로는 원래 서브 리시브를 하라고 있는 포지션이나 다름없지만 리시브 점유율이 팀내 1위인 리베로는 찾기가 힘듭니다. 13일 현재 2016~2017 NH농협 V리그 남자부 경기에서 리시브가 팀에서 서브를 제일 많이 받은 건 대한항공 백광현(25) 한 명뿐입니다. 그나마 정지석하고 똑같이 리시브 점유율은 23.6%로 공동 1위입니다.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리시브 실력이 제일 좋은 리베로가 받기 딱 좋게 서브를 넣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백광현 본인에게는 안타까운 얘기지만 대한항공에서 최고 '구멍'은 리베로 자리로 통하는 게 현실이고 말입니다.
서브 리시브 의무가 없는 라이트나 세터, (전위) 센터는 리베로나 레프트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면 서브를 넣는 팀에서는 결국 공격형 레프트를 타깃으로 삼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적어도 공격형 레프트가 공격에 참여하는 걸 까다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수비형 레프트는 리베로처럼 원래 리시브를 잘해서 그 자리에 나서는 선수입니다.
삼성화재에서는 외국인 선수 타이스(26·네덜란드·사진 오른쪽)가 공격형 레프트입니다. 타이스는 삼성화재 팀 전체 공격 중 49.8%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타이스가 리시브를 한 뒤 곧바로 공격에 참여한 비율은 36.9%로 내려갑니다. 타이스에게 서브를 넣으면 그가 공격에 참여하는 비율을 10% 포인트 이상 떨어뜨릴 수 있는 겁니다. 이 기록만 보면 타이스를 서브 타깃으로 삼는 게 나쁘지 않은 전략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공격 성공률입니다. 자기가 리시브를 받지 않았을 때 53.5%인 타이스의 공격 성공률은 리시브 이후 곧바로 공격할 때 63.2%로 올라갑니다. 공격 실패까지 감안하는 공격 효율은 .349에서 .489가 됩니다. 야구에서 타율 .349인 타자를 .489로 만드는 구종이나 코스가 있다면 배터리(투수+포수)는 이를 피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 배구는 다를까요?
타이스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삼성화재는 가뜩이나 공격 부담이 큰 타이스가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라이트 전향을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타이스는 "리시브 받고 공격하는 것도 OK"라며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참고로 구단에서는 서브에 있어서도 스파이크 서브를 버려도 된다고 얘기했지만 '나만의 패턴이 있다'며 역시 사양했다고 합니다.)
타이스가 이상할 정도로 기록이 올라가는 건 맞지만 타이스만 그런 건 아닙니다. 올 시즌 서브를 한 개라도 받은 선수들 평균 공격 성공률은 51.8%. 리시브 이후 곧바로 공격할 때 이 기록은 53.7%로 올라갑니다. 현대캐피탈에서 뛰었던 톤(33·캐나다)이 없었다면 이 차이가 더욱 벌어졌을지 모릅니다. 톤은 리시브하지 않았을 때 49.0%, 했을 때 49.6%으로 공격성공률이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아직 표본이 너무 적지만 톤 대신 현대캐피탈에 합류한 대니(29크로아티아)도 리시브 후 공격 때 33.3%로 전체 평균(43.5%)에 미치지 못합니다.
현재 선두 대한항공이 잘 나가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김학민은 올 시즌 리시브 점유율 18.7%로 수비형 레프트 수준으로 상대 서브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리시브 이후 곧바로 공격할 때 성공률이 60.8%나 됩니다. 전체 공격 성공률이 49.6%밖에 되지 않는 곽승석도 자기가 리시브한 공을 다시 상대 코트에 넘길 때는 성공률 60.8%짜리 공격수로 바뀝니다. 상대 팀으로서는 어느 쪽에 넣어도 죽을 맛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