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연주(29·사진 오른쪽)는 역시 '때려야 사는 여자'였습니다. 갑자기 '받는 여자'로 변한 최근 두 시즌은 확실히 황연주답지 못한 모습이었죠. 황연주는 18일 현재 딱 200점을 올리며 프로배구 2015~2016 NH농협 V리그 여자부 득점 9위에 올라 있습니다. 황연주가 득점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건 2011~2012 시즌(5위) 이후 네 시즌 만입니다. 소속팀 현대건설도 12승 3패(승점 35점)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오른쪽 날개 공격수인 황연주는 지난 시즌까지 4109점을 올렸습니다. 남녀 선수를 통틀어 황연주보다 프로배구에서 점수를 많이 올린 선수는 없습니다. 라이트 포지션에서 뛰다 보니 서브 리시브를 받을 일도 없었고 그 덕에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그런데 2013~2014 시즌에는 리시브 점유율이 14.3%로 오르더니 지난 시즌에는 18.9%까지 올랐습니다. 팀에서 세 번째로 서브를 많이 받는 선수가 황연주였습니다.
올 시즌에는 바뀌었습니다. 역시 같은 날 기준으로 황연주의 리시브 점유율은 0.4%. 프로 데뷔 이후 가장 서브를 적게 받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 현대건설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폴리(25·아제르바이잔)가 0.3%였으니까 그 자리에 황연주가 대신 들어간 셈입니다. 대신 수비형 레프트로 분류하는 외국인 선수 에밀리(22·미국)가 서브를 받고 있습니다. 에밀리는 팀내 최다인 리시브 점유율 34.4%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리시브 부담을 덜면서 황연주는 공격 성공률 36.8%로 이 부문 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토종 선수 중에서 황연주보다 공격 성공률이 높은 건 흥국생명 이재영(19·37.8%) 한 명뿐입니다. 황연주는 "이제까지 '힘의 배구'를 했다면 이제 '생각하는 배구'를 하게 된 것 같다"며 "키(177㎝)가 작다 보니 많이 움직여야 하고 실책도 많이 나오는데 다양한 공격 코스로 공을 때리면서 좀더 노련하게 경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덧 최우수선수(MVP)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프로 12년차 베테랑이 됐지만 이루고 싶은 꿈도 남아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역시 리그 우승. 황연주는 2009~2010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흥국생명에서 현대건설로 팀을 옮겼습니다. 그 뒤 2010~2011 시즌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 뒤로는 우승이 없습니다. 황연주는 "오프시즌 동안 진짜 열심히 했다. 스트레스 받고 연습한 만큼 보여줘야 한다. 우승에 도전 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 가지 목표는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서는 것.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대표팀에서 부름을 받지 못하던 황연주는 8월 일본에서 열린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컵 여자배구대회 때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황연주는 "런던 대회를 마치고 '다음 올림픽에 갈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1년 뒤에 열리게 된다"며 "새로 꿈이 생긴 것 같다. 올림픽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많이 노력해서 팀에 조금이라고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을 보내고 있는 황연주에게 다시 예전 같은 운동 능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 지난해 이맘때 썼던 글을 부정하는 모양새지만, 그래도 황연주가 '나이 든 공격수'로서 롤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서정주 시인을 패러디하자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사슴' 황연주가 과연 이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룰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