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꽃사슴' 황연주(28·사진)는 2006년 이후 지난해까지 여자 배구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 자리를 굳게 지켰습니다. 프로 원년(2005년) 흥국생명에서 데뷔해 현대건설로 팀을 옮긴 지금까지 프로배구 소속 팀에서도 당연히 같은 포지션. 황연주는 12일 현재까지 총 3899득점으로 프로배구 역사상 남녀부를 통틀어 가장 점수를 많이 올린 선수입니다.

이렇게 배구에서 라이트는 주 공격수 자리이기에 서브를 받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프로배구 첫 여자부 신인상 출신인 황연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막내 때도 그는 팀이 서브 1323개를 받는 동안 67개(5.1%)만 받은 선수였고, 2012~2013 시즌까지 리시브 점유율이 3.2%밖에 되지 않는 '공격 전문 요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율이 지난 시즌부터 14% 수준으로 급격히 올랐습니다. 한국전력 레프트 전광인(23)이 올 시즌 자기 팀 서브 15.7%를 받아 내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무시하기 힘든 숫자입니다. 황연주는 "지난 2년간 주변에서 '부진하다, 기량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졌던 게 사실"이라며 "내가 공격 위주 선수이다 보니 리시브가 걱정되는 건 맞다. 하지만 더 발전하려면 보강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황연주 서브 리시브 점유율 추이

황연주가 서브를 받아주면서 제일 신이 난 선수는 단연 폴리(24·아제르바이잔). 원래 서브를 받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레프트로 뛰는 폴리지만 올해 리시브 점유율은 0.47%밖에 되지 않습니다. 개수로 따지면 4개. 어쩌다 실수로 서브 리시브를 하는 수준입니다. 공격할 때는 황연주와 폴리가 자기 자리를 유지하지만 수비 때는 서로 롤(role)을 바꾸는 겁니다.


황연주는 "폴리가 워낙 좋은 선수라 내 공격 비중이 줄어들 걸로 예상했다. 그런 부분에서도 마음을 가다듬고 짜증내지 않고 팀에 도움이 되도록 뛰고 있다"며 "내가 안 되더라도 팀이 우승하면 모두가 잘해서 우승한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황연주는 서브 리시브뿐만 아니라 디그(실점을 막는 수비)에서도 세트당 3.16개로 전체 8위, 팀 내에서는 리베로 김연견(21·3.49개)에 이어 2위에 올라 있습니다.

요즘 황연주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박건하 축구 대표팀 코치(43)가 생각나고는 합니다. 1996년 프로축구 삼성 창단 멤버로 14골 6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상을 탔던 그 역시 말년에는 수비수로 뛰었었죠. 스피드는 예전만 못했지만 지능적인 플레이에 뛰어났죠. 공격수 출신이라 상대 공격수 심리를 읽는데도 능했고요.

물론 황연주가 흔히 말하는 '보공'으로 포지션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을 앞둔 데다, 날개 공격수 치고 작은 키(177㎝)를 운동 능력으로 커버했던 황연주로서는 다시 전성기 같은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할 확률이 높은 게 사실. 그래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코트의 리더'로서 그를 더 오래 보고 싶은 겁니다. "웨이트 하기 싫지만 이거 한 번 더 들면 1년 운동 더 한다는 생각으로 참는다"는 황연주라면 할 수 있으리라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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