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에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보여준 모습은 이른바 '스몰볼'로 표현되고는 한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잔야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발장타에 의존하기보다 팀배팅에 의존한 공격 패턴을 보인다는 얘기. 즉 번트를 많이 대고, 작전을 많이 걸고, 또 도루도 많이 하는 그럼 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는 AL 팀 가운데 53개의 희생번트로 1위를 기록했다. 도루 부분에 있어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다. MLB에 소속된 30개 팀 가운데 도루 4위(AL 3위). 확실히 잔야구를 많이 구사한 게 사실이다. 그 결과 741점으로 AL 14개 팀 가운데 득점 9위라는 평균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도, 승률에 있어선 .611로 AL 최고 기록을 내달렸다. AL 팀 가운데 승률이 6할이 넘어간 팀은 화이트삭스가 유일하다.
작년 화이트삭스의 팀 승률은 83승 79패로 .512, AL 중부지구 2위, AL 전체로는 7위였다. 포스트 시즌 진출에도 실패한 건 당연지사. 그런데 1년만에 갑자기 1할 가까운 승률을 끌어 올리며 월드 시리즈에까지 진출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스몰볼에서 비롯된 결과일까? 지난 시즌과의 비교를 통해, 이번 시즌 화이트삭스의 성공 비결을 알아보자.
지난 해에 비해 승수가 16승이나 늘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스포츠는 득점은 많이 하고 실점은 적게 할수록 승률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화이트삭스의 경우 승수가 적었던 지난해 오히려 득점이 124점 많았다. 하지만 실점은 이번 시즌에 186점이 더 적다. 이 결과로 우리가 주목해 볼 수 있는 건 득/실점 자료를 토대로 구한 이른바 피타고라스 승률이다. 지난 해 화이트삭스의 피타고라스 승패는 84승 78패, 실제 성적과 거의 유사하다. 이번 시즌은 피타고라스 승률에 비해 무려 8승이나 더 거뒀다. 이게 '스몰볼'의 효과일까? 공/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를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다.
공격력을 알아보는 대표적인 지표인 타율, 출루율, 장타율 모두 지난해에 비해 감소했다. 그 결과 평균 득점 역시 0.77점 하락. 순수한 장타력을 알아보는 ISO(장타율 - 타율) 역시 지난해 .189에서 이번 시즌 .163으로 13.8% 정도 감소했다. 홈런도 42개나 줄었다. 지난 시즌 이 팀에서 활약했던 매글리오 오도네스와 카를로스 리가 기록했던 홈런은 모두 40개, 이 두 선수의 빈 자리만큼 홈런 수가 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확실히 지난해와 비교할 때 파워라는 측면에서는 이번 시즌 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사실 지난해 화이트삭스는 242개의 홈런으로 뉴욕 양키스와 함께 AL 팀홈런 1위팀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200개의 홈런 역시 리그 4위 기록이다. 우리가 흔히 '빅볼'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보스턴보다도 하나 많은 수치. 게다가 기본적으로 스몰볼을 하기 위해선 우선 주자를 루상에 내보내는 게 중요하다. 말하자면 높은 출루율이 필수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팀은 그렇지가 않다. (AL 11위) 그런데도 이 팀을 스몰볼 팀이라 볼 수 있을까? 소위 작은 야구를 나타내주는 몇몇 자료들을 통해, 이 팀의 '스몰볼'을 알아보도록 하자.
도루가 43.1%나 늘었다. 이는 스캇 포세드닉 영입 효과라 볼 만하다. 포세드닉은 59개의 도루를 기록, LAA의 숀 피긴스에 이어 리그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팀 도루 1위는 윌리 해리의 19개였다. 도루자도 늘긴 했지만, 이는 도루 시도가 늘어난 것에 대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도루 성공률도 좋아졌다. 확실히 도루에서만큼은 지난해에 비해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전혀 다른 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도루 부분에 있어선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특이할 만한 건 작년에도 화이트삭스는 희생번트 1위팀이었다는 사실이다. 홈런 1위, 희생번트 1위. 지난 시즌에 비해 이번 시즌 희생번트수가 줄긴 했지만, 2위와의 격차는 오히려 벌어졌다. 지난 시즌엔 2개, 이번시즌엔 7개. 희생플라이는 개수에선 차이가 나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리그 9위다. 병살 역시 마찬가지다. 개수는 늘었지만, 순위는 오히려 하락했다.
장타 부분에 이르면 확실히 지난해에 비해 감소한 모습을 보인다. 이번 시즌 476개의 장타를 기록 장타수 10위, 545개의 장타로 4위에 올랐던 지난해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홈런이라는 점에 국한시켜 비교해 보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 시즌 AB/H는 22.9로 2위였다. 23타석 마다 홈런이 하나씩 쏟아졌던 꼴이다. 이번 시즌 역시 27.6으로 수치는 낮아졌지만, 리그 4위 기록. 리그 전체 홈런수가 줄어든 것에 대한 영향이지 팀 홈런 자체가 급격히 감소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변화다.
도대체 무엇이 이 팀을 지난해에 이렇게 다른 팀으로 보게끔 만들었을까? 희생번트는 올해만 많았던 게 아니다. 장타수가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홈런만 놓고 보자면 그렇지도 않다. 리그 평균을 감안하자면 더더욱 그렇다. 도루에 있어서는 확실히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그럼 도루수가 늘어난 게 이 팀을 갑자기 이렇게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팀은 사실 '스몰볼'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되는 팀은 아닐까?
사실 홈런 3위팀에게 스몰볼을 한다는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사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소위 클러치 상황, 그러니까 7회 이후 3점차 이내의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느냐 하는 점을 판단해 보면 이는 충분히 근거 있는 이야기가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확실히 지난해에 비해 득점의 질이 좋아졌다. 그들은 경기 막판 접전 상황에서는 확실히 스몰볼을 구사했다.
지난 시즌, 이런 상황에 놓인 경기는 총 96경기였다. 이 상황에서 2004 화이트삭스는 모두 13개의 희생번트를 댔다. 전체 대비 22.4%.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치른 100경기에서 2005 화이트삭스의 희생번트는 21개. 전체 대비 39.6%다. 네 경기를 더 치렀다는 점을 감안해도 희생번트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득점차를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 있어서도 7회 이후, 2005 화이트삭스는 모두 27개의 희생번트를 성공시켰다. 전체 대비 50.9%. 지난 시즌 27.6%(16개)와 대비되는 장면이다. 말하자면 경기 막판 효율적으로 번트를 사용했다는 얘기다.
홈런은 어떤가? 이 상황에서 나온 홈런수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32개로 똑같다. 하지만 총 홈런수를 감안할 때 그 비율이 다르다. 지난해는 전체의 13%, 이번 시즌은 16%로 그 비율이 향상됐다. 지난해 이 상황에서의 OPS는 .784, 이번 시즌엔 .714로 제법 차이가 났다. 하지만 득점에 있어선, 넉 점 차이(124, 120)밖에 나지 않는다. 게다가 전체 득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 향상된 16%를 기록했다. 점수가 필요한 시점에서 지난해에 비해 보다 능률적인 공격을 펼쳤다는 얘기다. 그 결과 이 상황에서의 승패는 62승 34패, 무려 .646에 달하는 승률이다.
이를 스몰볼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OPS를 중시하는 야구 풍조를 '머니볼'이라고 했을 때 확실히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야구를 한 것만큼은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스몰볼'이든 혹은 어떤 이들이 부르듯 '스마트볼'이든간에 말이다. 득점의 양이 중요한 건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이지만, 득점의 질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피타고라스 승률보다 9승이나 더 건질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런 질 좋은 득점이 한 몫을 담당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들이 올해 성공한 원인은 공격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맨 처음 제시된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득점뿐만 아니라 실점 역시 줄었다. 그리고 실점의 감소폭이 더 크다. 득점이 주는 건 장려할 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실점의 경우엔 다르다. 이어서 투수진 및 수비의 변화를 알아보자.
2루타를 2개 더 맞은 걸 제외하고는 모든 면이 향상됐다. 특히 순수 장타 허용률 (피장타율 - 피안타율)에 있어선 .181 대 .148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18.2%나 줄어든 수치이다. 타선에서 경험한 13.8%의 감소치를 웃도는 기록. 확실히 투수진이 안정돼 있다는 뜻이다. 이들의 장타 허용률 .397은 리그 3위다. 더군다나 이들의 홈구장 U.S. 셀룰러 필드의 이번 시즌 홈런 파크팩터는 1.329로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쿠어스 필드(1.369)에 이은 2위 기록이다. 이런 구장에서 세운 기록이기에 이들 투수진의 안정성이 더더욱 빛난다고 하겠다.
선발 4인방의 면모를 보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마크 벌리 (236 2/3이닝, 방어율 3.12), 프레디 가르시아 (228, 3.87), 존 갈랜드 (221, 3.50), 호세 콘트라레스 (204 2/3, 3.61). 이 네 명의 선수 모두 200이닝을 넘게 던지면서 3점대 방어율을 찍었다. 불펜진 역시 LAA와 함께 1, 3위를 다툴 정도로 수준급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개과천선한 모습이다. 지난 해 이들의 모습을 보면 벌리 (245 1/3, 3.89), 가르시아 (103, 4.63), 갈랜드 (217, 5.18), 콘르라레스 (74 2/3, 5.79)로 벌리를 제외하자면 모두가 이번 시즌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투수진의 순수한 능력만을 알아보는 지표인 DIPS(Defense Independent Pitching Stats.)를 구해보면, 4.19로 팀 방어율 3.61보다 높은 수치를 보인다. 이는 수비진의 도움 역시 무시 못할 수준이었음을 뜻한다. 실제로 팀 방어율 대비 DIPS의 비율을 알아보는 DIPS%에 있어서는 1.16으로 AL 소속팀 가운데 1위다. 투수진의 안정도 안정이지만, 수비가 그만큼 투수들을 많이 도와준 셈이다.
DIPS와 달리 수비진의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는 DER(Defense Efficiency Ratio)이라 불린다. 이는 홈런, 삼진, 볼넷을 제외하고 인플레이 된 타구가 몇 %나 아웃으로 처리됐는지를 나타낸다. 화이트삭스의 이번 시즌 DER은 .713, 오클랜드에 이어 AL 2위 기록이다. 화이트 삭스 투수진의 G/F 비율은 1.3. 땅볼이 더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아래서 다섯 번째 기록이다. 땅볼 타구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수비 뒷받침이 좋았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시즌의 DER은 .691, 이 수치 역시 다소 향상됐다.
결국 이들의 성공은 훌륭한 투수진 그리고 견실한 수비에서 비롯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점의 최소화가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인 셈이다. 이렇듯 적은 실점만 허용한 상태에서 비록 많은 득점은 아니지만 질 높은 득점을 뽑아냄으로써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취임 2년째를 맞아 확실히 노련해진 아지 기엔 감독의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이제 그들은 1959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에 올라 갔다. 그리고 휴스턴이 될지 세인트루이스가 될지 모를 상대를 기다리며 우승의 꿈에 젖을 부푼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화이트삭스와 올해의 화이트삭스는 분명 다른 팀이다. 초반의 다크 호스를 넘어 챔피언 자리를 꿈꿀만한 분명한 강팀이다. 그들이 과연 챔피언이 될 수 있을지, 그래서 이만수 코치님도 한국에서 못다 이룬 우승의 꿈을 이를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자.
+ 참고자료 ;
스몰볼을 통해 2년간 득점 양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나타내주는 그래프이다. 면적으로 표시된 건 리그 평균 득점 분포, 막대그래프는 시카고의 득점 분포다.
2004년의 경우, 점수대가 상대적으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고득점 부분에 이르면 리그 평균보다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5년을 보면, 점수가 4점에서 8점 사이에 집중돼 있다. 특히 5, 6점을 집중적으로 뽑아냈다. 이게 '스몰볼'의 결과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측가능하고 지속적인 공격력을 선보였음을 알 수 있다.
둘을 비교하는 그래프를 그려 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가장 많은 빈도를 보인 2득점과 4득점의 경우 각각 1승 23패(승률 .042), 10승 14패(.417)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가장 빈도수가 많았던 2점과 5점의 경우 각각 12승 17패(.308), 20승 8패(.714)의 성적을 거뒀다. 이 또한 팀의 변화를 나타내주는 결과물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