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야구팬이 기대하는 모든 걸 맛볼 수 있는 게임이었다. 에이스끼리의 맞대결, 양 팀 거포의 역전 홈런, 그리고 마무리 투수의 맞대결, 마지막으로 승부와 패배가 교차하는 쾌감과 안타까움의 순간까지. 세인트루이스에겐 기사회생의 환락이었고, 휴스턴으로서는 자칫 불안감으로 빠져들 수 있는 한숨의 한판이었다.
 
 
 
오늘 경기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앨버트 푸홀스다. 9회초 2아웃, 휴스턴이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건 아웃 카운트 하나뿐이었다. 2점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 타석에 앨버트 푸홀스가 들어서고, 투수 코치가 마운드를 방문 휴스턴의 마무리 투수 릿지 선수의 용기를 북돋았다. 1구는 헛스윙. 하지만 2구를 그대로 통타 좌월 아치를 그리며 팀을 탈락 위기에서 살려냈다. 스타의 가치가 무엇인지, 단어 그대로 별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드라마는 데이빗 엑스타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앞선 두 타자 모두 아웃으로 물러난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 작은 체구의 유격수는 볼 카운트 2S 1B에서 좌익수쪽으로 굴러가는 땅볼 타구를 치면서 1루에 안착했다. 그리고는 2루로 도루. 하지만 1986년 ALCS에서 데니스 애커슬리 팀이 승리한 네 경기에서 모두 세이브를 챙긴 이후, 처음으로 똑같은 기록에 도전 중인 두 배터리는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에드먼즈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불안한 징조가 감돌았다. 하필 타석에 들어선 선수가 푸홀스였던 것이다. 이번 시즌 Win Shares 1위 선수, 앨버트 푸홀스 말이다.
 
그가 때려낸 공은 저 멀리, 미닛 메이드 파크의 명물 철로(鐵路)를 넘어 떨어졌다. 덕아웃 밖으로 뛰쳐나가 승리를 만끽하려던 휴스턴 선수단 전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반면, 세인트루이스 덕아웃은 환호로 가득 찼다. 베이스를 돌고 들어온 푸홀스를 팀의 감독, 토니 라루사가 힘차게 끌어 않았다. "잘했어, 푸홀스. 위대한 푸홀스."
 
반면, 휴스턴은 믿었던 마무리 투수 브래드 릿지가 무너진 건 충격이다. 그는 NLCS에서 세 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 중이었다. 게다가 휴스턴이 이번 시즌 앞선 채 시작한 9회에 역전을 허용한 것은 딱 한번뿐이었다. 이 경기가 두 번째.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7회에 역전 쓰리런을 날렸던 랜스 버크만의 표정도 굳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그들은 희망을 숨기지 않았다.
 
"오늘밤은 무척이나 힘들 겁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 일어나면, 전 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힘차게 경기에 나설 수 있을 거예요." 홈런을 얻어맞은 릿지의 인터뷰 내용이다.
 
오늘 경기 내용을 그래프로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양 팀이 주도권을 서로 주고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2회말 비지오의 방망이가 부러지면서 안타로 연결, 휴스턴이 먼저 선취점을 따냈다. 하지만 3회초 세인트루이스의 반격이 있었다. 엑스타인의 안타. 그리고 도루. 에드먼즈 선수의 단타로 무사 주자 1, 3루 상황. 하지만 믿었던 푸홀스와 레지 샌더스가 차례로 삼진으로 물러나며 기세가 한풀 꺾이는 듯 싶었다. 하지만 래리 워커의 볼넷으로 2사 주자 만루. 이번 시리즈에서 .138의 타율밖에 기록하고 있지 못하던 마크 그루질라넥의 안타가 텨졌다. 엑스타인과 에드먼즈가 득점하며 2대 1로 경기 역전.
 
 
 
그리고는 양 팀 주포간의 홈런 대결이었다. 휴스턴의 랜스 버크만이 선방을 날렸다. 7회말 다시 경기를 뒤집는 쓰리런을 날리며 주도권을 다시 휴스턴쪽으로 가지고 왔다. 실제로 경기는 거의 휴스턴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실제로 필요했던 건 달랑 아웃 카운트 하나뿐이었다. 아니, 스트라이크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2사후, 모든 게 달라졌다. 푸홀스의 홈런으로 화룡점정. 승부는 그걸로 끝이었다.
 
오늘 경기 선수들의 활약상을 수치로 표시해 보면 아래와 같다.
 
 
 
역시나 양 팀의 두 홈런 타자가 팀에 뛰어난 공헌을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도 달랐다. 결국 승부는 세인트루이스로 장소를 옮겨 판가름나게 됐다. 휴스턴에서는 로이 오스왈트, 세인트루이스에서는 마크 멀더가 각각 선발로 경기에 나선다.
 
'92 시즌 파이어리츠, '86 시즌 레드삭스, 역시 '86 시즌의 에인절스는 각각 시리즈 승리를 아웃 카운트 하나 앞에서 놓친 채, 그대로 시리즈를 내준 팀들이다. 휴스턴이 이런 불명예를 안은 4번째 팀이 될지, 아니면 기사회생에 성공한 세인트루이스가 지난해에 이어 월드 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게 될지, 그 모든 건 세인트루이스에서 결정된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