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금의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좀더 어렸을 때는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 or 취미가 무엇이냐 등의 질문을 받으면 BMW라고 답했다.

물론 여기서 BMW는 동성 모터스에서 판매하는 독일 자동차 브랜드 Bayerische Motoren Werke가 아니다. B는 Baseball, M은 Movie, W는 Woman이었다.

결국 나는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좋아했던 셈이다.

달리 말해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Fever Pitch)>가 단지 레드삭스 네이션의 일원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매일 아침마다 기억을 잃는다고 해도 드류 베리모어 같은 여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엄밀히 말해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를 야구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야구를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일 뿐이다.

게다가 <Fever Pitch>를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라고 번역해 '야구를 좋아하는 남자랑 사귀면 내가 미쳐야 되는구나'하는 불순한 사상을 전파시키기도 한다.

국내 영화 가운데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건 <아는 여자>다.

기본적으로 <아는 여자>에서 이나영은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라 '아는 야구 선수를 좋아하는 여자'로 나온다. 물론 이나영이라면 제 아무리 빠순이라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빠순이가 이나영처럼 예쁘지 않은 건 '엄연한' 사실이다. 모든 남자 야구팬들은 야구 좋아하는 여자와의 연애를 꿈꾼다는 점에서 이는 치명적인 문제다.

<Fever Pitch>가 여성들에게 헛된 망상을 심어준다면 <나쁜 여자>는 남자들에게 그렇다는 뜻이다. 스크린쿼터와 양성평등권을 존중하기 위해 이 두 영화를 일단 '야구 영화'의 범주에서 제외토록 하겠다.

이제 진짜 야구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내 인생 최고의 '야구 영화'로는 어떤 것들을 꼽을 수 있을까?

먼저 '아차상' 명단을 발표해 보자. (순서는 따로 없다.)

사랑을 위하여 For love of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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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동안 팀을 이끌어 온 에이스가 은퇴 경기를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는 사이 애인은 '나보다 야구가 더 소중하냐'며 그의 곁을 떠난다. 결론이 어떻게 날 것 같은가?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겠다고 작정한 감독의 모습이 너무도 눈에 선하다. 게다가 유머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삭막한 진지함으로 똘똘 뭉쳐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원래가 뻔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족속이다.


꿈의 구장 Field of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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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와 용서의 기법이라는 글을 번역하면서도 밝혔지만, 미국인들에게 스포츠는 정말 좋은 '화해의 수단'이다. 특히 아버지와 화해하는 데 있어 야구만한 촉매는 없다.

아버지와 화해한다는 건 미학적으로 분명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러니까 꿈의 구장은 '아버지와 나'라는 주제를 다룬 감동적인 영화지만 좋은 야구 영화로 분류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혹시 블랙삭스 스캔들을 다룬 영화를 더 찾고 있다면 <8 Men Out>을 추천한다.

(그나저나 연달아 케빈 코스트너 주연 영화가 탈락했다.)


미스터 베이스볼 Mr. Base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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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따금 케이블에서 볼 수 있는 영화다. 미국에서 퇴물 취급 받던 타자가 일본 리그로 건너와 팀워크의 소중함과 참된 사랑의 가치를 알아간다는 진부한 구성의 영화. 하지만 내가 진부한 구성의 팬이라는 사실은 이미 위에서도 밝혔다.

하지만 톰 셀릭과 아야 타카나시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 옆에 내가 서 있으면 어떻게 보이는지를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너무도 명백하게 보기 좋은 모습이 못 된다.

이런 개인적인 절차로 인해 베스트 10 진입에 실패했다. 물론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미스터 3000 Mr.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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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군대에 다시 가야 된다'는 말을 듣는 꿈을 꾼다. 더러 한 10억 쯤 준다면 다시 한 번 가 볼만 하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면 이건 어떨까? 3000 안타를 때리고 은퇴한 47세의 남자. 실수로 안타 3개가 기록에 더해졌다. 기록을 취소한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발상은 인정한다. 배우의 연기도 뛰어나다. 하지만 구성과 연출은 모두 늘어진다.


YMCA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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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 필름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 여성도 담배를 피우고, 여유롭게 골프도 치는 청년 부유층의 삶을 그린 필름이었다.

사실 일제 시대 젊은이들이 어떤 여가를 즐겼는지 우리는 너무도 모른다. 월미도나 남이섬 같은 데이트 코스가 일제 시대에 이미 개발됐다는 걸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런 사정으로 인해 당시 우리 야구가 어떤 모양새였는지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야구 초창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 야구팬들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이장호의 외인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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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케이블에서 우연히 다시 본 <이장호의 외인구단>이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한 동안 정수라가 부른 <난 너에게>를 MP3 플레이어에 꼭 챙기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단 한 마디로 말해 영화는 이현세의 원작 <공포의 외인구단>을 뛰어넘지 못한다. TV 애니메이션에게도 뒤진다는 게 개인적인 평이다.

그래도 그때 최재성이 정말 꽃미남이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음 시간에는 kini's 야구 영화 셀렉션 베스트 10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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