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극소수의 몇몇만 아는 이야기겠지만, 작년 여름 책을 한 권 쓰겠노라고 폼을 잡은 적이 있었다. 본문도 쓰기 전에 제목부터 정해뒀는데 <야구 해설자들의 거짓말>이라는 다소 뻔한 제목이었다.

이 블로그를 오래 읽었고, 내가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야구를 보는지 아시는 분이라면 아마 제목만으로도 대충 어떤 내용인지 짐작을 하시리라 믿는다. 그러니까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는 건 사실 그리 위험하지 않다든가 희생번트는 득점 확률을 높이는 데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묶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물론 게으름을 주된 이유로) 이 책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앞으로 언제 ‘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지 알 수 없어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책을 쓰고 있습니다'하고 말할 일은 없을 것만 같다. 이건 진심으로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굳이 내가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세상에는 이미 좋은 야구 책들이 나와 있다. 여태 살면서 읽은 야구 관련 서적 가운데 기억에 남는 10권을 추려보도록 하겠다. (이건 절대 손윤 님 블로그를 보고 작성하게 된 포스트가 아니다! 정말 그럴까? ㅡㅡ;)


10.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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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이 일본 야구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해 yes24에서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우리 프로야구나 MLB에 비해 일본 야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에 대해 딱히 변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은 '일본 야구'를 소개하는 책은 못 된다. 어떤 의미에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의미론에 대한 도전이며 고전적 내러티브 패러다임의 해체를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야구를 배운답시고 야구 시를 900편 쓰고, 포르노 100편을 보는 초딩 1년생의 이야기는 확실히 일반적인 야구 교양 서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본 야구에 대해서가 아니라 '소설적 담론의 위기'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제목만으로도 뭔가 그럴 듯 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9. 스포츠 2.0 플러스 - 2007 프로야구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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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야구 서적의 품격을 논하자면 사실 이 책은 그리 높은 순위를 차지할 수 없다. 스카우팅 리포트라고는 하지만 세부적인 통계의 나열을 제외하면 그리 특이할 만한 것도 없다. 메이저리그 팬이라면 이미 익숙한 포맷인 게 사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런 책이 시도된 건 <스포츠 2.0 플로스 - 2007 프로야구 특별판>이 처음이다. 박동희 기자가 이 책을 박노준 당시 SBS 해설 위원께 전해드리러 갔을 때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야구 통계 서적이 없다"며 목청을 튀기시다가 책을 열어보고 흠짓 놀랐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건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이 책에 참여했다고 해서 목록에 포함시킨 건 절대 아니라는 뜻이다. (참고로 2008 시즌이 코 앞인 현재까지도 이 책 만든 수고비는 입금되지 않았다.)


8. Money Ball : The art of winning an unfair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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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가 야구 만화가 못 되는 것처럼 사실 <머니볼> 역시 야구 책과는 거리가 있다. 이 책은 오히려 경영 서적에 더 가깝다. 스몰 마켓 팀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묘사한 책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출루율'이라는 개념이 야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게 된 이유 정도는 이 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국내에 이 정도 책이 완역된 것 역시 상당히 오랜만이다. (원래 처음이라고 썼는데 2위에 선정된 책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원서 페이퍼백과 번역본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적하건대, 이렇게 번역이 엉터리인 책도 참 드물다고 생각한다. 야구에서 score book은 점수를 적어둔 책이 아니라 '기록지'다.


7. 야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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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태평양 돌핀스의 유민'이라고 부르는 분, 김은식 씨. 이 문장만으로도 내가 이 책에 대해 어떤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만한 분들은 아시리라 믿는다. 정말이지 태평양 돌핀스 경기를 딱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아무런 여한이 없을 것만 같다.

소위 세이버쟁이로 불리기 시작한 이후 제일 싫은 일이 있다면, 야구를 '기록'만 가지고 보는 사람 정도로 취급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 역시 '야구의 추억'에 너무도 목마른 사람이다. 1년에 100경기 이상 야구장을 찾는 건 ‘야구의 추억'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김은식 씨의 이 문장이 가슴에 와 닿은 모양이다.

정치권력과 재벌기업들의 속셈 이전에 야구팬들의 열정이 있었고, 승부 이전에 페어플레이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으며, 위대한 업적과 기록 이전에 순수한 땀방울에 대한 감동이 있었음을 되새기고 되살리고자 했다. 그것이 '야구의 추억'이다.

맞다. 그게 야구의 추억이다.


6. Think Better Base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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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Think Better Baseball>은 야구 코칭 입문서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야구를 좀 더 쉽고 친근하고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진 책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일반 야구팬에게 이 책은 그리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야구팬들은 곧잘 야구 지식에 대한 '타는 목마름'에 시달리고는 한다. 그리고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플레이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 없이는 해설자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니까 도대체 '기본기'라는 게 뭐야?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가장 기초적인 동작부터 어떤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역시나 가장 기억에 남는 표현은 Back Somebody Up. 그게 FUNdamental의 기본이다.


5. 바이오메카닉스 피칭이론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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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한 모임에서 오랜만에 조용빈 님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던 그 자리. 잠시 야구를 떠나 다른 길로 돌아서 오시겠다던 말씀이었다.

그때 이 책을 받았던 그 순간이 기억났다. 첫 느낌은 유쾌한 충격 그 자체였다. '드디어 대한민국에도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 그리고 곧바로 찾아든 어쩔 수 없는 의문 ; '그런데 이 책을 과연 누가 사 볼까?'

결과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그래도 언젠가 야구가 하나의 '문화'와 '연구 주제'로 대한민국에서도 당당히 인정받게 되는 날이 온다면 분명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믿는다.

김은식 씨가 인정받듯 조용빈 님도 인정받아야 '야구 문화'가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4. The Science of Hit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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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 이론을 크게 구분하자면 "선형(Linear) 계열"과 "회전(Rotational) 계열"로 나뉜다. 이 책의 저자 테드 윌리엄스는 회전 계열 신봉자다. 따라서 이 책은 회전 계열 타격 이론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편견이 퍽 강한 축이기 때문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만 믿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선형 계열보다는 회전 이론만 믿고 '체중을 싣는다‘ 혹은 '팔목을 쓴다'는 표현 같은 것들을 곧잘 무시하고는 한다.

혹시 여기까지 읽고 '어? 정말 그런 게 없다는 말이야?'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미 이 책의 마력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여태 타격에 대해 얼마나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 느끼게 되실지도 모르겠다. 단, 테디 할아버지의 잘난 티를 참아낼 자신이 있다면.


3. Ball 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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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야기하자면 호세 칸세코가 지은 <Juiced>의 아버지뻘 쯤 된다고 해야 할까? 메이저리그 판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던 여자, 약물, 도박, 인종차별 등을 낱낱이 '까발린' 책이다. 출판 당시 미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에 등극하기도 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용이야 어찌됐든 '미키 맨틀'이 얼굴에 침 뱉고 "평생 너와 상종하지 않겠다"는 멋진 말을 날려주시고, 특정 구단이 경기 시작 전 책으로 장작더미를 쌓아서 화형식을 거행하는 책을 쓴다는 것 역시 그런 대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이런 말로도 읽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면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100% 확실한 건 아니지만 <스포츠 2.0>의 최민규 기자님이 한 동안 최고의 야구 서적으로 이 책을 언급하고는 했다. 그러면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좀 드시는지?




2. The Thinking Fan's Guide to Base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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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렇게 원제를 써 놓으면 '도대체 이게 무슨 책이야?'하고 반문하실 분들이 꽤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줄 아는 놈들에게 야구를 소개해 주겠다'니 아니 그런가? 그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야구란 무엇인가?'

그렇다. 어디선가 소문을 한 번 씩 들어봤을 바로 그 책. 그러나 절판이 됐다는 이유로 대학 도서관에서나 구할 수 있게 된 그 책. 조금 더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고 이종남 기자가 번역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지도 모를 바로 그 책이다.

그런데 책은 이렇게 유명한데도 원저자 레너드 코퍼트 씨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선수 출신이 아닌 사람 가운데 가장 먼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이 바로 코퍼트 씨다. 도대체 어떤 글을 써야 그렇게 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대학 도서관을 뒤져보자.


1. The Book ; Playing percentages in Base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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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서의 정관사 The는 어떤 특정한 책을 수식하는 구실을 맡고 있는 건 아니다. 'The Book‘이란 야구계의 통념, 전통적 대응법 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래서 'The Unwritten book is finally written'이라는 문구도 등장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기준만 놓고 보자면 이 책은 'The Book‘이라고 불릴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이하드 세이버메트리션을 꿈꾼다면 확실히 그렇다. 말하자면 수학을 전공했다든지, 직업이 회계사가 아니라면 함부로 추천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나 역시 숫자가 싫어서 문과를 지망한 놈이고,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참고 다 읽었다. 그리고 나면 뭔가 야구를 보는 또 다른 관점을 얻게 된다고 할까?

맹신과 무지 사이에 어떤 게 더 위험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The Book>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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