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데이빗 오티스가 예년만 못하다. 물론 여전히 그의 OPS(.916)는 9할이 넘어간다. 이런 타자에게 부진하다고 말하는 건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타율을 보면 조금 다른 얘기가 펼쳐진다. 오늘 현재까지 오티스의 '06 시즌 타율은 .257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03년부터 3년간 평균 타율 .297보다 40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그 결과 출루율과 장타율 역시 예년에 비해 각각 19, 48포인트 낮은 수치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PECOTA는 세이버메트릭스 전문 사이트 Baseball Prospectus의 예측 시스템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이 시스템 역시 오티스의 하향세를 전망했지만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순수 출루율(IsoD .107)이나 순수장타율(IsoP .295)은 사실 PECOTA의 예측(.109, .289)과 유사한 수치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기본적으로 타율이 나오지 않으니 다른 기록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건 소위 '오티스 쉬프트'다. 배리 본즈에게 상대 수비가 사용하는 것처럼 내야수들을 극단적으로 우측으로 옮기는 수비 포메이션 말이다. 오티스는 이 포메이션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번트 안타를 시도해 성공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적응에 애를 먹는 모습이다. 이런 결과는 타구 스프레이 차트를 확인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빨간색 g가 땅볼로 아웃 처리된 타구의 위치를 나타낸다. 검은 s는 단타를 뜻한다. 이 차트를 보면, 작년에 비해 올해 쉬프트에 걸리기 딱 좋은 타구를 오티스가 더 많이 날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31.4%이던 땅볼 비율이 올해는 37.9%로 6.5%포인트 늘었다. 게다가 쉬프트를 뚫고 만들어진 내야 안타도 거의 없다. 이 타구들이 거의 고스란히 수비수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라는 얘기다. 이래서는 높은 타율을 기대하기 어렵다.

땅볼 타구가 늘어남과 동시에 라인드라이브성 타구가 줄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22.5%이던 라인드라이브 비율이 16.0%로 줄었다. 그만큼 질이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라인드라이브성 타구의 75%가 안타로 연결된다. 따라서 이 역시 낮은 타율의 원인이라고 하겠다. 그래프를 통해 보면 이 변화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그래프는 Fangraphs.com의 자료다. 그래프에서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나타내는 색은 빨강이다. 녹색은 땅볼, 파랑은 플라이볼을 뜻한다. '06년 부분을 부면 땅볼이 늘어나면서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줄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무엇이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줄였을까? 한번 지난해와 올해 타격 준비 자세를 비교해 보자.


가장 큰 차이는 왼쪽 팔꿈치의 높이다. 물론 촬영된 각도 차이를 고려해야겠지만 그래도 왼쪽 팔꿈치가 작년에 비해 훨씬 위쪽에 위치해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을 정도의 차이다. 거의 왼쪽 가슴에 붙어 있던 두 손의 위치 역시 귀 아래까지 많이 올라갔다. 예전에는 왼쪽 자세에서 오른쪽 높이까지 손이 올라왔던 폼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그 위치에 고정돼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반동을 이용해 팔꿈치가 몸에 감겨 나오기 힘들다. 강한 타구를 만들기 힘들고, 상대의 구속 변화에 무너지기 쉬운 폼이라는 얘기다.

오티스의 명성을 가장 드높인 순간은 '04 ALCS의 연속된 끝내기 홈런이었다. 그 후에도 그는 클러치 히터로서의 모습을 여러 차례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배리 본즈와 함께 그는 MLB 전체에서 가장 무서운 좌타자였다. 하지만 최근 역전이 가능했던 2사 만루 찬스에서 삼진으로 물러나는 등 클러치 상황에서 가장 공포스런 타자의 이미지는 어느 정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전체 플라이타구의 22.2%(구장 효과 반영)를 담장 밖으로 날려 버리는 괴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득점권에서도 평소보다 높은 24 포인트 높은 .281의 타율을 기록 중이다. 미미한 차이긴 하지만 떨어졌던 라인드라이브 비율 역시 바닥을 치고 올라 올 기미가 보이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PECOTA가 예상했던 수준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미국 현지에서의 애칭 빅 파피(Big Papi)보다 국내 팬들에게 슈렉으로 더 널리 알려진 데이빗 오티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끝내기 홈런 후 홈으로 뛰어들던 모습이 팬들의 뇌리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슴 떨리던 순간들처럼, 그의 방망이가 다시 한번 국내의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도 짜릿한 감동을 선사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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