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섭에게 결단의 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03 시즌이 끝났을 때만 해도 그는 마이너리그 전체에서 손꼽히는 유망주 가운데 하나였다. 실제로 미국의 야구 전문지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최희섭을 시카고 컵스의 유망주 가운데 제 1 순위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빅 리그 데뷔 이후 컵스 - 말린스 - 다저스를 거쳐 현재 보스턴 레드삭스의 AAA 팀은 포투켓에서 뛰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기록 역시 타율 .207/출루율 .347/장타율 .361로 좋지 못하다.
최희섭이 좌투수에게 약점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좌타자로서 좌투수에게 어느 정도 약점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는 좌투수를 경험할 기회 자체를 그리 많이 얻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AAA에서도 좌투수를 상대로 애를 먹고 있다. 우투수를 상대로는 그래도 GPA .255를 때려내고 있는 반면 좌투수에게는 25포인트 낮은 .230에 그치고 있다. 물론 우투수에게 때려낸 기록 역시 1루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기록이지만 좌투수를 상대로는 너무한 수치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성적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점 역시 우려할 만하다. 4월엔 .344의 GPA로 인상적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5월, 6월엔 각각 .232, .187에 만족해야했다. 전체 홈런 8개 가운데 6월에 4개를 때려낸 건 인상적이지만 정말 딱 그것뿐이다. 메이저리그 1루수는커녕 AAA에서도 사실 그는 절대 쓸 만한 1루 자원이 아니다. 다른 포지션의 수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최희섭의 활용 가치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위기다.
사실 플로리다에서 LA로 이적할 때까지만 해도 최희섭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최희섭의 최대 강점은 뛰어난 참을성이었고, 이는 폴 데포디스타 단장의 취향과도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저스의 트레이시 감독은 세이버메트릭스와 정반대의 전략을 추구하는 감독이었다. 따라서 그의 눈에는 최희섭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 단점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최희섭은 자신의 타격 스타일을 잃어버렸고, 결국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팀에서 방출되는 설움을 겪었다.
물론 현재 보스턴의 테오 엡스타인 단장은 세이버메트릭스 신봉자다. 하지만 J.T. 스노우마저 트레이드를 요청할 정도로 주전 1루수 유킬리스의 방망이가 매섭다. 따라서 아무리 엡스타인 단장이 최희섭을 두둔한다고 해도 끼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AAA의 모습 또한 절대로 빅 리그 콜업 이야기가 나올 만한 수준이 못 된다. 부상 이야기가지 들려오는 걸로 봐서 절대 쉽지 않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최희섭에게는 어떤 풍경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능한 대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좀더 약체 팀으로 옮길 것을 추천하고 싶다. 탬파베이나 캔자스시티 등 전력이 약한 팀에서 빅 리그 진출 기회를 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빅 리그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서 안 되면 그때 국내 복귀를 생각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물론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WBC를 통해 병역 문제도 해결한 만큼 최희섭 본인에게도 아직 빅 리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어느 덧 우리 나이로 28이나 됐다. 그리고 여전히 마이너리그 시절에 보여줬던 가능성이 현실에서 실현될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 정말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했는데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때는 국내로 돌아오면 된다. 이미 병역 문제도 해결됐고, 2년의 유예기간도 필요없다. 2차 지명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지만 모든 팀이 반겨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돌아오기 전까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짜내야 한다. 최희섭. 항상 뒤에는 우리 국민들이 열렬히 응원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