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뉴잉글랜드 왕조 개국공신 빌 벨리칙 감독. 폭스버러=로이터 뉴스1

빌 벨리칙(72) 감독이 부임 24년 만에 뉴잉글랜드 지휘봉을 내려놓습니다.

 

뉴잉글랜드 구단은 벨리칙 감독과 계약을 상호 해지하기로 했다고 11일(이하 현지시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벨리칙 감독은 계약 기간을 1년 남겨 놓고 팀을 떠나게 됐습니다.

 

벨리칙 감독은 이날 로버트 크래프트(83) 구단주와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해 "나는 언제고 뉴잉글랜드 일원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껏 격려해 주신 크래프트 구단주님과 가족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크래프트 구단주는 "벨리칙 감독과 함께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자평한다"면서 "그동안의 공로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했습니다.

 

뉴잉글랜드 안방 구장 질레트 스타디움에 있는 슈퍼볼 우승 배너. 보스턴글로브 홈페이지

벨리칙 감독은 뉴잉글랜드에서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역대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경력을 쌓았습니다.

 

벨리칙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24년 동안 뉴잉글랜드는 슈퍼볼 정상을 여섯 번(2001~2002, 2003~2004, 2004~2005, 2014~2015, 2016~2017, 2018~2019시즌) 차지했습니다.

 

NFL에 포스트시즌 제도가 생긴 1933년 이후 이보다 팀에 우승을 많이 안긴 감독은 없습니다.

 

벨리칙 감독은 뉴잉글랜드 사령탑으로 플레이오프에서 30승(12패)을 거뒀습니다.

 

이 부문 2위 톰 랜드리(1924~2000) 전 댈러스 감독(20승)과 비교해도 50% 많은 최다 기록입니다.

 

참고로 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세 번 또는 네 번 이기면 슈퍼볼 정상입니다.

 

조지 할라스 감독은 1920년부터 감독 생활 시작

벨리칙 감독 재임 기간 뉴잉글랜드는, 2007~2008시즌 16전 전승을 포함해, 정규시즌에 266승 121패(승률 .687)를 기록했습니다.

 

NFL 역사상 한 팀에 이보다 승리를 많이 안긴 감독은 '파파 베어' 조지 할라스(1895~1983)뿐입니다.

 

할라스 감독은 총 40시즌에 걸쳐 시카고 사령탑을 지내면서 318승(31무 148패·승률 .682)을 거뒀습니다.

 

할라스 감독은 플레이오프에서 거둔 6승을 더해 시카고에서 총 324승을 올렸습니다.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합산 승수 역시 할라스 감독이 1위고 벨리칙 감독(296승)이 그다음입니다.

 

아, 한 팀에서 올린 성적만 따졌을 때 그렇다는 뜻입니다.

 

14승만 더 거두면 최다승

벨리칙 감독은 1991~1992시즌부터 다섯 시즌 동안 클리블랜드 사령탑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클리블랜드 감독으로는 정규시즌(36승 44패)과 플레이오프(1승 1패)를 합쳐 37승 45패를 남겼습니다.

 

결국 감독으로 통산 333승 178패를 기록한 것.

 

이보다 통산 승수가 많은 사령탑은 돈 슐라(1930~2020) 감독뿐입니다.

 

슐라 감독은 볼티모어와 마이애미에서 통산 347승 6무 173패를 기록했습니다.

 

벨리칙 감독은 "결국 선수들이 승리를 거두는 것"이라면서 "NFL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는 선수들과 함께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습니다.

 

뉴욕 제츠 사령탑 취임 기자회견에서 사임하겠다고 발표 중인 빌 벨리첵 감독. 뉴욕=AP 뉴시스

벨리칙 감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선수로는 역시 톰 브래디(47·은퇴)를 꼽을 수 있습니다.

 

벨리칙 감독은 뉴잉글랜드 지휘봉을 처음 잡았던 2000~2001시즌 원래 뉴욕 제츠 사령탑에 앉을 예정이었습니다.

 

벨리칙 감독은 직전 시즌까지 빌 파셀스(83) 감독 밑에서 수석 코치를 맡고 있었으니 승진이라면 승진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감독 취임 기자회견에 참석해 "제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한 뒤 결국 뉴잉글랜드로 옮겼습니다.

 

벨리칙 감독은 제츠에서 선수 선발 그러니까 단장 업무까지 맡기로 했지만 결국 권한이 줄어들자 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것.

 

뉴잉글랜드에서는 단장 권한까지 받은 벨리칙 감독이 업무 시작 첫 번째 드래프트 때 전체 199순위로 선발한 선수가 바로 브래디였습니다.

 

드류 블레드소 부상 장면. CBS 중계화면 캡처

벨리칙 감독은 원래 주전 쿼터백 드류 블레드소(52)에게 계속해 공격 조율을 맡길 계획이었습니다.

 

1993~1994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인 블레드소는 2001년 3월 8일 10년 총액 1억300만 달러짜리 계약서에 서명합니다.

 

당시 기준 NFL 역대 최대 규모 계약이었습니다.

 

문제는 블레드소가 2001~2002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상대 팀 제츠 수비수 모 루이스(55)와 충돌하면서 피가 폐로 쏟아져 들어가는 부상을 당했다는 것.

 

이에 브래디가 팀 공격을 이끌게 되면서 뉴잉글랜드 왕조가 첫 단추를 끼우게 됩니다.

 

브래디는 이 시즌 바로 팀을 슈퍼볼 정상으로 이끌었고 이후 2019~2020시즌까지 주전 쿼터백으로 활약합니다.

 

 

사실 2020~2021시즌을 앞두고 탬파베이로 떠날 때까지만 해도 브래디에게는 벨리칙 감독의 '꼭두각시 쿼터백'이라는 평가가 따라다녔습니다.

 

벨리치 감독이 밥상을 다 차려 놓으면 브래디는 그저 숟가락을 얹을 뿐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일은 이 평가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브래디는 탬파베이로 옮기자마자 또 한 번 슈퍼볼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반면 뉴잉글랜드는 7승 9패에 그치면서 12년 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뉴잉글랜드가 5할 승률 미만으로 시즌을 마친 건 블레드소가 주전 쿼터백이던 2000~2001시즌 이후 20년 만이었습니다.

 

뉴잉글랜드 사령탑 마지막 경기가 된 뉴욕 제츠 상대 안방 경기 때 빌 벨리칙 감독. 보스턴글로브 홈페이지

뉴잉글랜드는 2021~2022시즌 10승 7패로 살아났지만 그다음 시즌에는 다시 8승 9패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도 4승 13패로 아메리칸풋볼콘퍼런스(AFC) 동부지구 최하위(4위)에 그쳤습니다.

 

뉴잉글랜드가 지구 최하위에 그친 것도 2000~2001시즌 이후 처음이었고 정규시즌 승률 .235는 벨리칙 감독 통산 최저 기록이었습니다.

 

결국 브래디가 없는 4년 동안 벨리칙 감독은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를 합쳐 29승 39패(승률 .426)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지휘봉을 맡기는 건 무의미하다는 게 크래프트 구단주 판단이었고 벨리칙 감독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겁니다.

 

크래프트 구단주는 "최근 서너 시즌 동안 벌어진 일은 확실히 우리가 원하던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크래프트 뉴잉글랜드 구단주와 빌 벨리칙 감독. 폭스버러=로이터 뉴스1

14승만 더 거두면 NFL 역사상 최다승 사령탑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상황에서 벨리칙 감독이 이대로 지도자 생활을 접지는 않을 겁니다.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벨리칙 감독이 애틀랜타 지휘봉을 잡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뉴잉글랜드 새 사령탑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제로드 마요(38) 현 라인배커 코치입니다.

 

마요 코치는 뉴잉글랜드 선수 출신으로 2014~2015시즌 우승 멤버였습니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서 테네시 지휘봉을 내려놓은 마이크 브라벨(49) 전 감독도 물망에 올랐습니다.

 

브라벨 전 감독 역시 뉴잉글랜드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2001~2002, 2003~2004, 2004~2005시즌에 걸쳐 우승 반지를 세 개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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