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2022 항저우(杭州) 아시안게임에서도 종합 3위에 그쳤습니다.
한국은 8일 막을 내린 이번 대회를 금메달 42개, 은메달 59개, 동메달 89개로 마쳤습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 (대회 종요 시점 기준으로) 36년 만에 2위 자리를 되찾은 일본은 금 52개, 은 67개, 동 69개로 이번에도 2위였습니다.
일단 재미있는 건 전체 메달 숫자는 한국(190개)이 일본(188개)보다 많다는 점입니다.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는 전체 메달 숫자에서도 한국(177개)이 일본(205개)에 밀렸습니다.
구분 | 한국 | 일본 | ||||||
금 | 은 | 동 | 계 | 금 | 은 | 동 | 계 | |
남자 | 26 | 34 | 40 | 100 | 26 | 22 | 37 | 85 |
여자 | 13 | 22 | 40 | 75 | 22 | 37 | 30 | 89 |
혼성 | 1 | 2 | 8 | 11 | 4 | 7 | 1 | 12 |
오픈 | 2 | 1 | 1 | 4 | 0 | 1 | 1 | 2 |
합계 | 42 | 59 | 89 | 190 | 52 | 67 | 69 | 188 |
성별에 따라 나눠 보면 한국은 항저우 대회 남자부 경기에서 금메달 26개를 따냈습니다. 일본도 26개였습니다.
남자부 전체 메달 숫자는 한국이 100개로 일본(85개)보다 15개가 많았습니다.
성별이 구분이 없는 오픈 종목이지만 양국에서 모두 남자 선수만 참가한 e스포츠를 포함하면 한국이 금메달 숫자(28개)에서도 일본을 앞서게 됩니다.
반면 여자부에서는 일본이 금메달 22개를 포함해 메달 89개를 따는 동안 한국은 금메달 13개에 전체 메달 75개에 그쳤습니다.
남녀 선수가 같이 뛰는 혼성 종목 금메달도 일본 4개(전체 12개), 한국이 1개(전체 11개)로 일본 쪽 성적이 더 좋았습니다.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는 한국이 남자부 금메달 29개로 일본(35개)에 6개 뒤지는 동안 여자부에서는 한국 20개, 일본 35개로 15개 차이가 났습니다.
요컨대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3위로 밀리게 된 건 여자부 경쟁력이 (더)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일본 여자 선수는 사이클(5개), 레슬링(3개), 수영(2개)에서 금메달을 2개 이상 가지고 갔지만 한국은 한 개도 따지 못했습니다.
소프트볼, 축구, 핸드볼 같은 단체 구기 종목 그리고 스케이트보딩, 스포츠클라이밍, 트라이애슬론 같은 신흥 종목 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혼성팀을 포함하면 일본 여자 선수는 이번 대회 17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반면 한국은 9개 종목에 그쳤습니다.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종목은 사이클 그중에서도 트랙 종목입니다.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는 여자부 트랙 금메달 7개 가운데 4개를 한국이 차지했습니다.
항저우에서는 6개 세부 종목 가운데 5개 종목 금메달이 일본에 돌아갔습니다.
반면 한국 여자 대표팀은 이번 대회 때는 단체 스프린트에서 은, 매디슨에서 동메달을 따냈지만 금메달은 하나도 따내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적어도 아시아에서) 여자 사이클 강국이 된 이유는 뭘까요?
일본자전거연맹(JCF)은 세계 정복을 목표로 시즈오카(靜岡)현 이즈(伊豆)시에 'HPC(High Performance Center)'를 만들어 2018년 문을 열었습니다.
물론 이 센터 개장 효과를 여자 선수만 누렸을 리는 없습니다.
일본 남자 사이클 대표팀도 이번 대회 사이클 트랙 종목에 걸린 금메달 6개 중 5개를 가져갔습니다.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는 남자부 7개 종목 중에 일본이 금메달을 가져간 건 옴니엄 한 종목뿐이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1986년 서울 대회 이후 37년 만에 아시안게임 사이클 트랙 남자부 경주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습니다.
소위 '엘리트 체육'이 잘 나가려면 일단 '생활 체육'이 튼튼해야 합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올해 한국 소프트볼 여고부 등록 선수는 총 117명입니다.
일본 전국고등학교체육연맹에 등록한 소프트볼 선수는 1만4089명으로 한국보다 120.4배 많습니다.
그러니 일본 소프트볼 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서 6회 연속 우승 기록을 남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고 축구부 선수도 일본(9751명)이 한국(260명)보다 37.5배 많습니다.
그러나 저변이 넓다고 꼭 그 종목에서 강국이 되는 건 아닙니다.
중국은 한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차고 넘치는 나라였지만 그때도 사이클 강국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HPC가 효과를 증명했듯 생활 체육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엘리트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가 끝났을 때 쓴 것처럼 일본이 다시 엘리트 체육 강국이 된 건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와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를 설립한 이후입니다.
JISS는 한국스포츠개발원, NTC는 태릉선수촌을 따라 만든 기관입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생활 체육 저변이 얇은 나라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16년 전 세계 146개 나라 11~17세 남녀 학생 신체 활동량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학생 94.2%가 '운동 부족'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별로 따지면 여학생(97.2%)이 남학생(91.4%)보다 더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이런 결과가 쌓이고 쌓여서 한국은 여자 스포츠가 더 약한 나라가 된 건 아닐까요?
기본적으로 운동을 한 적이 없으면 본인이 운동에 소질이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운동에 소질이 좀 있다 싶으면 바로 엘리트 체육으로 향해야 합니다.
운동에 한번 발을 잘못 들여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는 학부모로서는 어지간한 확신이 없으면 이 선택을 뜯어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학생이 부카츠(部活動)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운동을 시작하는 동안 우리는 운동을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소위 '체육인'이라는 분들은 자꾸 '수업 시간 줄여달라'는 이야기만 하기 바쁩니다.
(자주 비유하는) 이솝 우화 '해님과 바람'에서 나그네 옷을 벗긴 건 바람이 아니라 해님이라는 사실을 도대체 한국 체육계는 언제쯤 인정하게 될까요?
이 저변이라는 녀석은 심지어 '한국 양궁 = 세계 최강'이라는 공식마저 무너뜨렸습니다.
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 여자 선수가 금메달을 가장 많이 딴 종목은 양궁 리커브와 펜싱(이상 3개)이었습니다.
양궁 리커브에서는 임시현(20·한국체대)이 혼자 금메달 3개(개인전, 단체전, 혼성단체전)를 모두 따냈습니다.
아시안게임 양궁에서 3관왕이 나온 건 거리별 세부 종목이 따로 있던 1986년 서울 대회 이후 37년 만입니다.
다만 한국 양궁은 이번 대회에서 금 4개, 은 4개, 동 3개에 그치면서 1978년 방콕 대회 이후 25년 만에 아시안게임 종목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종목 순위 1위를 차지한 건 컴파운드 종목 금메달을 5개를 싹쓸이한 인도(금 5개, 은 2개, 동 2개)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올림픽 종목인 리커브가 훨씬 인기가 있기 때문에 '양궁 유망주'가 리커브로 몰리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는 양궁 등록 선수가 1만 명 이상으로 한국(2375명)보다 네 배 정도 많아 리커브와 컴파운드에 유망주를 골고루 분배할 수 있습니다.
산지바 쿠마르 싱(59) 인도양궁협회 기술위원장은 "내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한국을 넘어서는 게 목표다. 우리는 자신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회장사를 맡고 있는 대한양궁협회는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기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두 나라 인구 차이를 생각하면 양궁 저변을 인도만큼 넓히는 건 쉽지 않은 미션입니다.
요컨대 한국이 다시 엘리트 스포츠 강국이 되려면, 2020 도쿄(東京) 올림픽이 끝나고 썼던 것처럼, 태권도장 스타일로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야 합니다.
꼭 운동에 다걸기(올인)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캐주얼하게, 운동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엘리트 체육을 담당하던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한 지 7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여전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대한체육회장이라는 분께서 아시안게임 결산 기자회견 때 "내년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입촌하기 전에 모두 해병대 극기 훈련을 받게 하겠다"고 하시니 앞날이 캄캄할 뿐입니다.
일본 스포츠가 한국을 어떻게 추월했는지 이렇게 뻔히 보이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세상을 살아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