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콕 천재' 안세영(21·삼성생명)이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여자 단식 랭킹 1위에 올랐습니다.
31일(이하 현지시간) 기준으로 안세영은 랭킹 포인트 10만3914점을 기록하면서 지난주까지 47주 연속 1위였던 야마구치 아카네(山口茜·26·일본·10만1917점)를 2위로 밀어냈습니다.
한국 여자 단식 선수가 BWF 랭킹 1위에 오른 건 '셔틀콕 천사' 방수현(51) 이후 26년 11개월 12일(9842일) 만입니다.
1996년 8월 1일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은퇴를 선언한 방수현은 같은 달 19일자 랭킹까지 1위를 지켰습니다.
방수현 이전에는 이영숙(53)도 6주 동안 BWF 여자 단식 랭킹 1위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결과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건 대한배드민턴협회도 랭킹 계산법을 정확하게 모른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안세영은 랭킹 포인트 10만2264점으로 야마구치(10만4517점)에게 2253점 뒤진 상태로 30일 막을 내린 일본 오픈에 참가했습니다.
안세영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랭킹 포인트 1만1000점을 받았고 8강에서 탈락한 야마구치는 이보다 4950점 뒤진 6050점을 받습니다.
지난해 챔피언이던 야마구치는 1만1000점 가운데 6050점을 제외한 4950점이 빠져야 하는 반면 지난해 준우승으로 9350점을 받았던 안세영은 1650점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안세영은 10만3914점, 야마구치는 9만9567점이 되는 게 기본입니다.
다만 BWF 랭킹에는 52주(1년) 동안 참가한 전체 대회가 아니라 랭킹 포인트를 가장 많이 받은 10개 대회 성적만 반영합니다.
안세영에게는 올해 일본 오픈이 이 10개 대회에 들어가기 때문에 랭킹 포인트 10만3914점이 맞습니다.
반면 야마구치는 이 6050점이 10위 안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4950점이 아니라 2600점만 빠지는 겁니다.
안세영 도쿄 오픈 우승 기사를 데스킹 보면서 이렇게 계산해 협회에 '안세영이 1위가 되는 게 맞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협회에서는 안세영이 10만4064점, 야마구치가 10만4517점으로 453점이 적어 1위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협회에서 이렇게 계산한 건 지난해 일본 오픈이 9월 4일에 끝났기 때문입니다.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았으니 지난해 일본 오픈에서 받은 랭킹 포인트를 계산에 반영했던 것.
'랭킹 계산에 똑같은 대회 성적을 남겨 놓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협회에서 그렇게 설명하니 믿을 수밖에요.
협회 설명과 달리 실제 BWF 랭킹 계산에서는 같은 대회 성적은 52주가 지나지 않아도 빼는 게 맞았고 결국 안세영이 1위가 됐습니다.
아, 테니스처럼 52주 성적을 모두 반영하면 안세영은 15만1314점으로 지난주 코리아 오픈 우승 때 이미 야마구치(13만9737점)를 넘어섰습니다.
안세영은 이번 일본 오픈까지 국제대회에 11번 참가해 우승 7번, 준우승 3번, 3위 1번을 기록했습니다.
7차례 우승 중 하이라이트는 역시 전영 오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선수가 배드민턴 세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영 오픈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건 역시 1996년 방수현 이후 27년 만입니다.
안세영은 3월 19일 열린 대회 결승에서 '숙적' 천위페이(陳雨菲·25·중국·3위)를 물리치고 이 대회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천위페이는 2020 도쿄(東京) 올림픽 챔피언이자 이 경기 전까지 상대 전적에서 2승 8패로 밀리던 선수였습니다.
당연히 9월 23일 개막하는 항저우(杭州) 아시아경기(아시안게임) 때도 안세영과 천위페이가 맞대결을 벌일 확률이 높습니다.
안세영이 천위페이와 처음 맞붙은 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였습니다.
당시 랭킹 235위였던 안세영은 이 대회 첫 경기(32강)에서 천위페이에게 0-2(15-21, 8-21)로 패하면서 서둘러 짐을 싸야 했습니다.
안세영은 이제 랭킹 1위 선수가 됐지만 천위페위는 항저우가 고향인 선수라 중국 팬들 '짜요(加油)' 소리가 더욱 일방적인 확률이 높습니다.
안세영과 천위페이는 아시안게임 무대로 향하기 전 다음 달 19~28일 덴마크 코페하겐에서 열리는 2023 BWF 세계선수권대회를 먼저 치러야 합니다.
올해 세계선수권에서는 야마구치가 3연패에 도전합니다.
지난해 준우승한 천위페이도 금메달을 양보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겁니다.
지난 대회 3위였던 안세영 역시 방수현도 해보지 못한 우승 기록을 남기려 할 겁니다.
결국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선수가 항저우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 확률이 높습니다.
한국 여자 단식 선수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차지한 것도 1994년 히로시마(廣島) 대회 때 방수현이 마지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