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일본인은 (다른 외국인과 비슷하게) 이름보다 묘지(名字·성씨)로 부르는 게 일반적입니다.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29·LA 에인절스)를 '오타니'라고 부르지 '쇼헤이'라고 부르는 일은 드문 겁니다.
그런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74) 씨는 '하루키'가 기본형입니다.
하루키 씨가 한국에서 처음 인기를 끌었던 1990년대는 무라카미 류(村上龍·71) 씨도 하루키 씨 못지 않게 팬이 많았던 '투 무라카미'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23년 일본 프로야구(NPB)에도 투 무라카미 시대가 열릴 모양인가 봅니다.
첫 번째 무라카미는 예상하시는 것처럼 무라카미 무네타카(村上宗隆·23·야쿠르트)입니다.
무네타카는 지난해 56홈런을 날리면서 NPB 일본 출생 타자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동시에 타율(.318)과 타점(134점)에서도 센트럴리그(CL) 1위를 차지하면서 NPB 역대 최연소 타격 트리플 크라운 기록까지 남겼습니다.
지난달 막을 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도 일본 대표팀 4번 타자로 세카이이치(世界一) 탈환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2023 시즌 개막 후에는 29일까지 99타석에서 타율 .148, 2홈런, 10타점에 그친 상태입니다.
대신 한신(阪神) 투수 무라카미 쇼키(村上頌樹·25·한신)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쇼키는 도요대(東洋大)를 졸업한 뒤 2021년 신인 드래프트 때 한신으로부터 5위(라운드)로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가 됐습니다.
대졸 투수다운 관록을 발휘하면서 쇼키는 그해 2군 웨스턴리그에서 다승(10승), 평균자책점(2.23), 승률(.900) 3관왕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1군 두 경기서에서는 5와 3분 1이닝 동안 10점(평균자책점 16.88)을 내줬고 지난해에는 아예 1군에 올라오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지난해에도 2군에서 평균자책점(3.09)과 승률(.700) 1위 기록을 남겼습니다.
올해는 1군에서 시즌 개막을 맞이했습니다. 이토 마사시(伊藤將司·27)가 어깨 통증으로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덕이었습니다.
쇼키는 1일 교세라돔 안방 경기에서 DeNA를 상대로 6회초 구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첫 등판을 마쳤습니다.
제 아무리 한신 투수라고 해도 이 정도 투구 내용으로 이름을 알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로부터 열하루가 지난 12일에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쇼키는 이날 도쿄돔에서 요미우리(讀賣)를 상대로 올 시즌 처음이자 통산 세 번째 선발 등판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7회까지 교진(巨人) 타자 21명을 상대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1루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4회초에 한신 외국인 타자 노이지(29)가 1점 홈런을 치면서 한신은 7회말까지 1-0으로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쇼키가 데뷔 첫 승을 퍼펙트로 장식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피어오른 게 당연한 일.
걸림돌이 있다면 8회초에 쇼키가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올해 다시 한신 지휘봉을 잡은 오카다 아키노부(岡田彰布·66) 감독은 하라구치 후미히토(原口文仁·31)를 대타로 기용하면서 공을 84개밖에 던지지 않았단 쇼키를 경기에서 뺐습니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무라카미 대신 8회부터 마운드에 올라온 이시이 다이치(石井大智·26)가 요미우리 4번 타자 오카모토 가즈마(岡本和眞·26)에게 곧바로 홈런을 맞으면서 1-1 동점이 됐습니다.
오카모토가 때린 타구가 도쿄돔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쇼키의 데뷔 첫 승도 날아갔습니다.
한신으로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10회초에 지카모토 고지(近本光司·29)가 1점 홈런을 치면서 결국 2-1 승리르 거뒀다는 것.
오카다 감독은 "팀 승리가 먼저라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사사키 로키(佐佐木郞希·22·지바 롯데)라면 1-0이라도 던지게 했을 텐데 쇼키는 3-0이 아닌 이상 계속 던지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쇼키는 다시 열흘이 지난 22일 나고야(名古屋) 방문 경기에서 무사사구 완봉승으로 데뷔 첫 승을 기록했습니다.
이날 쇼키는 안방 팀 주니치(中日) 타선을 9이닝 동안 안타 2개로 묶는 동안 삼진은 10개를 잡아냈습니다.
삼진을 10개 이상 잡으면서 무사사구 완봉승으로 데뷔 첫 승을 작성한 건 NPB 역사상 쇼키가 처음입니다.
쇼키는 29일 메이지진구(明治神宮) 구장에서도 안방 팀 야쿠르트 타선을 8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막고 시즌 두 번째 승리를 챙겼습니다.
야쿠르트 4번 타자로 출전한 무네타카는 땅볼 2개, 삼진 1개로 돌려세우면서 '무라카미 대전'에서도 KO승을 거뒀습니다.
결국 25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이어간 쇼키는 이날 6회에 규정이닝까지 채우면서 양대 리그 통합 평균자책점 선두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쇼키는 이날 1~4회를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사사키도 뛰어 넘었습니다.
사사키도 개막 후 20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전날 오사카(大阪) 방문 경기에서 4회말 오릭스에게 2점을 내주며 기록이 깨진 상태였습니다.
쇼키가 다음 등판 때도 7회까지 무실점 기록을 남기면 NPB 개막 후 최다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31이닝)을 새로 쓸 수 있습니다.
이전 기록 보유자는 한신 선배인 나카이 에쓰오(中井悅雄·1943~1979)입니다. 에쓰오는 데뷔 첫 해인 1963년 이 기록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