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수 생활 내내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세리나 윌리엄스(41·미국)가 자신이 어떤 선수였는지 확실히 보여주는 '라스트 댄스'를 US 오픈 테니스 대회 주경기장인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 남겼습니다.
윌리엄스는 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올해 대회 여자 단식 3회전에서 아일라 톰랴노비치(29·호주·세계랭킹 46위)에게 1-2(5-7, 77-64, 1-6)로 패했습니다.
윌리엄스는 결국 이날 (그리고 어쩌면 생애) 마지막 게임이 된 3세트 일곱 번째 게임에서 상대 매치 포인트 상황을 다섯 번 이겨냈지만 결국 여섯 번째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윌리엄스는 2회전에서 세계랭킹 2위이자 대회 2번 시드를 받은 아네트 콘타베이트(27·에스토니아)를 2-1(77-64, 2-6, 6-2)로 꺽고 3회전에 올랐습니다.
이날 1세트를 내준 윌리엄스는 2세트 때 게임 스코어 4-0으로 앞섰지만 결국 타이브레이크 끝에 승부를 3세트까지 이어갔습니다.
3세트 들어서는 톰랴노비치의 첫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했지만 이후 내리 다섯 게임을 내줬습니다.
그리고는 일곱 번째 게임에서 듀스가 여덟 번 이어진 뒤 윌리엄스가 받아친 공이 네트에 걸리면서 경기가 끝났습니다.
이번 대회는 윌리엄스가 참가한 81번째 메이저 대회였습니다.
윌리엄스는 이 중 23번(호주 오픈 7번, 프랑스 오픈 3번, 윔블던 7번, US 오픈 6번) 정상에 섰습니다.
'오픈 시대(Open Era)' 들어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이보다 많이 우승한 선수는 남녀를 통틀어 아무도 없습니다.
테니스 관련 기사나 포스트를 읽다 보면 이렇게 오픈 시대라는 표현이 등장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클로즈 시대'도 따로 있던 걸까요?
오픈 시대 반댓말은 클로즈 시대가 아니라 '아마추어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오픈 시대는 다른 말로 '프로 테니스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오픈 시대 이전에도 프로 선수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국제테니스연맹(ITF) 주관 대회에는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1988년 서울 대회 때까지는 미국프로농구(NBA) 선수가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럴 때 생기는 첫 문제는 당연히 우수 자원을 아마추어 무대에 계속 붙잡아둘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지금도 호주 오픈 메인 코트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로드 레이버(84·호주)는 1962년 호주 선수권대회, 프랑스 선수권대회, 윔블던 선수권대회 그리고 미국 전국 선수권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네, 이들 대회가 지금 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그리고 US 오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캘린더 그랜그슬램'에 성공한 그는 1962년 연말에 프로 전향을 선언하면서 1963년부터는 이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습을 감추게 됩니다.
이렇게 우수 선수가 프로 무대로 빠져 나가면 대회 흥행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ITF라고 넋놓고 당하고만 있던 건 아닙니다.
'농구대잔치' 시절 한국 실업 농구 선수는 사실상 (세미) 프로 선수였지만 이들을 아마추어로 취급했던 것처럼 실제로는 돈을 받고 뛰는 데도 신분은 여전히 아마추어인 선수를 육성하기 시작한 것.
이런 접근법을 '셰머추어리즘'(shamateurism)이라고 부릅니다.
셰며추어리즘이 위선적이라고 판단한 올잉글랜드테니스클럽은 1968년부터 프로 선수도 윔블던에 참가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기로 합니다.
이 클럽은 1967년 윔블던이 막을 내린 뒤 '윔블던 프로'를 개최해 성공 가능성을 타진한 상태였습니다.
이 결정에 자극을 받은 ITF 이사회는 1968년 3월 30일 프랑스 파리에 모여 메이저 대회에도 프로 선수가 참가할 수 있도록 문을 열기로 합니다.
이렇게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 없이 모두 참가할 수 있다는 뜻에서 오픈(open)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겁니다.
테니스 역사상 첫 오픈 대회는 1968년 4월 22일 영국 본머스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해 5월 27일 막을 올린 프랑스 선수권대회도 프랑스 오픈이라는 이름으로 프로 선수에게도 문을 열었습니다.
이해 호주 선수권대회는 1월 27일 이미 막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오픈 시대를 흔히 1968년 이후라고 표현하고는 하지만 호주 오픈은 1969년부터 오픈 시대를 맞이합니다.
단, 호주 오픈은 이때도 나머지 3개 메이저 대회와는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1969년 호주 오픈 여자 단식에 출전한 선수 32명 가운데 24명(75.0%), 남자 단식에 출전한 선수 48명 가운데 28명(58.3%)이 호주 선수였습니다.
전체 단식 참가 선수 80명 가운데 52명(65.0%)이 호주 선수였던 겁니다.
반면 나머지 3개 메이저 대회에서 호주 선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15.2%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ITF에서 호주 선수권대회를 비롯해 4대 메이저 대회를 선정한 건 1923년이지만 선수들 사이에서 호주 오픈이 진짜 메이저 대회로 통한 건 훨씬 나중 일입니다.
예를 들어 1974년 개인 첫 호주 오픈 무대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크리스 에버트(68·미국)는 1980년까지는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호주는 너무 먼 데다 대회가 크리스마스 전후에 열리다 보니 연말 휴가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호주 오픈을 지금처럼 1월에 열게 된 건 1987년부터입니다.
자, 다시 윌리엄스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윌리엄스보다 메이저 대회 우승이 많은 여자 선수는 딱 한 명 마거릿 코트(80·호주)입니다.
코트는 총 24번 메이저 대회 정상에 섰는데 그 중 13번이 아마추어 시대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 13번 가운데 7번이 호주 선수권대회 우승 기록이고, 전체 24차례 우승 가운데는 모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건 11번입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코트가 윌리엄스보다 우승 횟수가 더 많다고 해서 더 커리어가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코트가 우승 기록이 제일 많은 건 사실인데 이를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윌리엄스가 사실상 여자 테니스 역사상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 주인공이라고 믿지만 또 '그건 아니다'고 주장하신다면 그 주장에도 박수를 쳐드리겠습니다.
윌리엄스가 딱 하나 차이로 코트에게 뒤진 게 잘못이라면 잘못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