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테니스협회는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35·세르비아)가 빠지면 2022 호주 오픈 성공이 어려움을 겪으리라고 판단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면제 허가서까지 발급했을 터.
하지만 실제로 이 대회를 성공으로 이끈 건 여자 랭킹 1위 애슐리 바티(26·호주)였습니다.
바티는 호주 선수로는 44년 만에 이 대회 단식 챔피언이 되면서 코로나19 그리고 조코비치 사태로 지쳐 있던 호주 팬들 마음에 희망을 선물했습니다.
바티는 29일 멜버른에서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다니엘 콜린스(29·미국·30위)에 2-0(6-3, 7-67-2) 완승을 거뒀습니다.
그러면서 1978년 여자 단식 챔피언 크리스 오닐(66) 이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이 대회 정상을 차지한 호주 선수가 됐습니다.
남자 단식에서도 1976년 마크 에드먼슨(68) 이후 이 대회 정상을 차지한 호주 선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티는 "드디어 꿈을 이뤘다"면서 "내가 호주 사람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I'm so proud to be Aussie)"고 말했습니다.
2012년 호주 오픈을 통해 메이저 대회 데뷔전을 치른 바티는 이후 여덟 번 이 대회에 출전했지만 그 전까지는 우승은커녕 결승전 무대를 밟지도 못했습니다.
이번 대회 때는 1회전부터 시작해 결승전까지 전부 2-0 승리를 거두면서 '무실세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4대 메이저 대회(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로 범위를 넓히면 이번이 2019년 프랑스 오픈, 지난해 윔블던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우승입니다.
그러니까 바티는 이번 우승으로 클레이, 잔디에 이어 하드 코트에서도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겁니다.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41·미국·59위)는 2017년 (임신 상태로) 호주 오픈에서 통산 스물세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출산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이후 메이저 대회 열아홉 번을 치르는 동안 오사카 나오미(大坂なおみ·24·일본·14위)가 네 번 우승을 차지하면서 '차세대 테니스 여제' 경쟁에서 앞서가기 시작했습니다.
단, 오사카는 하드 코트에서 경기를 치르는 호주 오픈(2019년, 2021년)과 US 오픈(2018년, 2020년)에서만 각 두 번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올해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이 지나고 나면 이 경쟁에서 바티가 가장 앞서 있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여자 테니스는 여전히 춘추전국시대에 가깝기 때문에 어떤 대회에서 누가 우승해도 이상하지 분위기.
만약 콜린스가 이날 승리를 거뒀다면 '포스트 세리나 시대' 열네 번째 메이저 여자 단식 우승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콜린스는 2세트 여섯 번째 게임까지 게임 스코어 5-1로 앞서면서 승부를 3세트까지 끌고갈 기회를 잡았지만 일방적인 팬들 응원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게임 스코어 5-3으로 쫓긴 뒤 체어 엄파이어에게 다가가 '관중 야유가 과도하다'고 항의한 뒤에는 더 큰 야유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관중 응원을 등에 업은 바티는 이후 게임 스코어 5-5 동점을 만들었고 2세트 승부는 타이브레이크까지 흘러갔습니다.
콜린스가 실책 4개를 저지르는 사이 바티가 위너 3개를 성공하면서 결국 우승을 확정했습니다.
바티는 이날 서브 에이스(10-1)와 위너(30-17) 숫자에서 전부 콜린스를 압도했습니다.
바티는 우승 후 "2주간 저를 응원해주신 팬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세상에 집보다 좋은 곳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