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엔리케 '키케' 에르난데스(왼쪽 네 번째)의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2021 아메리칸리그 챔피언결정전(ALCS) 진출을 확정한 뒤 기뻐하는 보스턴 선수단. 보스턴=로이터 뉴스1

'지머니' 최지만(30·탬파베이)이 보스턴에 아메리칸리그 챔피언결정전(ALCS)으로 가는 티켓을 선물했습니다.

 

보스턴은 11일 안방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2021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ALDS·5전 3승제) 4차전에서 탬파베이를 6-5로 물리쳤습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ALWC)을 거쳐 ALDS에 오른 보스턴은 이날 승리로 시리즈 전적 3승 1패를 기록하면서 ALCS 무대를 밟게 됐습니다.

 

아직 보스턴이 휴스턴(2승)과 시카고 화이트삭스(1승) 가운데 어떤 팀과 ALCS에서 맞붙을지는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원래 두 팀도 이날 시카고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서 ALDS 4차전을 치를 예정이었지만 비가 내려 일정을 미뤄야 했습니다.

 

우산을 쓴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 시카고=로이터 뉴스1

최지만이 본의 아니게 '보스턴 도우미'로 변신한 건 5-5 동점으로 맞이한 9회말 보스턴 공격 때였습니다.

 

선두 타자로 나선 크리스티안 바스케스(31)가 좌전 안타를 치고 나간 뒤 크리스티안 아로요(26)가 희생번트로 바스케스를 2루에 보냈습니다.

 

다음 타석에는 대타 트래비스 쇼(31)가 들어서 3루수 앞 땅볼을 쳤습니다.

 

문제는 탬파베이 3루수 얀디 디아스(30)가 1루 쪽을 향해 던진 공이 바닥에 한 번 튀었다는것.

 

결국 탬파베이 1루수 최지만이 공을 잡지 못하면서 2사 3루가 되어야 할 상황이 1사 1, 3루로 바뀌게 됩니다.

 

디아스가 던진 공을 받지 못한 최지만. 중계화면 캡처

공식 기록은 내야 안타였지만 3루수 디아스에게 실책을 기록해도 이상하지 않은 플레이였습니다.

 

(내야 땅볼 상황에서 원바운드 송구를 1루수가 잡지 못했을 때는 야구 규칙 9.12(a)(1)(D)(iii)에 따라 공을 던진 선수에게 실책을 기록합니다.)

 

보스턴은 3루 주자를 대니 산타나(31)로 바꾸면서 '경기를 끝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이후 쇼가 2루를 훔치면서 병살타 위험을 지웠습니다.

 

이 상황에서 엔리케 '키케' 에르난데스(30)가 외야 좌중간으로 날아가는 뜬공을 쳤고 이때 산타나가 홈을 파고 들면서 그대로 경기가 끝이 났습니다.

 

1루에서 쇼를 잡았다면 그냥 외야 뜬공으로 끝났을 타구가 희생플라이로 바뀐 겁니다.

 

보스턴을 ALCS로 보낸 끝내기 희생플라이. 중계하면 캡처

보스턴은 라파엘 데버스(25)의 3점 홈런 등으로 3회말에만 5점을 뽑으면서 앞서가기 시작했습니다.

 

2번 타자 완더 프랑코(20)가 6회초에 2점 홈런을 날리면서 추격을 시작한 탬파베이는 8회초에 역전 기회를 잡았습니다.

 

선두 타자 마이크 주니노(30)를 시작으로 케빈 키어마이어(31), 란디 아로사레나(26)까지 세 타자 연속 2루타를 치면서 3-3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무사 2루에서 2~4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차례였지만 결국 적시타가 나오지 않으면서 역전에 실패했고 끝내 경기를 뒤집지 못하면서 시리즈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1차전: 보스턴 0-5 탬파베이

2021 ALDS 1차전 결승타를 친 완더 프랑코.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사실 시리즈 개막 전만 해도 탬파베이 쪽으로 무게가 쏠렸던 게 사실.

 

올해 보스턴은 후반기 들어 DTD('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모드를 시전하다 기사회생한 팀.

 

반면 탬파베이는 아메리칸리그 최다승(100승)을 기록한 팀인 데다 상대전적에서도 11승 8패로 앞선 상태였습니다.

 

실제로 1차전에서 보스턴은 탬파베이에 0-5로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보스턴 팬으로서는 ALWC에서 '숙적' 뉴욕 양키스를 물리친 걸로 '가을 야구'를 충분히 만끽했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지 모르는 분위기였습니다.

 

 

2차전: 보스턴 14-6 탬파베이

크리스 세일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터뜨린 조던 루플로(왼쪽).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크리스 세일(32)을 선발 투수로 내세운 2차전 초반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회초에 먼저 2점을 뽑았지만 1회말 디아스에게 적시타를 내준 데 이어 조던 루플로(28)에게 만루홈런을 맞으면서 2-5로 끌려갔기 때문.

 

그러나 보스턴은 '홈런 쇼'를 펼치면서 결국 경기를 뒤집는 데 성공했습니다.

 

3회초에 산더르 보하르츠(29·잰더 보가츠), 알렉스 버두고(25)가 백 투 백 홈런을 치면서 4-5로 추격한 데 이어 5회초에 선두 타자로 나선 에르난데스도 홈런을 치면서 5-5 동점을 만든 것.

 

이어 부상으로 ALWC, ALDS 1차전에 출전하지 못했던 J D 마르티네스(34)가 5회초 1사 1, 3루 상황에서 가운데 담장을 넘어가는 역전 3점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보스턴 타선을 일깨운 J D 마르티네스의 역전 홈런. 중계화면 캡처

결과적으로 이 홈런이 결국 팀 타격 본능을 일깨웠습니다.

 

탬파베이에서는 최지만이 6회말 1점 홈런을 치면서 추격했지만 보스턴은 7회초에 1점, 8회초에 2점, 9회초에 3점을 보탰습니다.

 

보스턴은 결국 안타 20개(2루타 4개, 홈런 6개)를 치면서 14-6으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에르난데스는 "우리는 정규시즌에 역전승(20승)이 가장 많은 팀이었다"면서 "정규시즌에 한 걸 지금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3차전: 탬파베이 4-6 보스턴

2013 ALCS 2차전 8회말 데이비드 오티스가 불펜에 떨어지는 역전 만루홈런을 터뜨리자 기뻐하는 스티브 호건 경관. 보스턴글로브 홈페이지

보스턴으로 경기 장소를 옮긴 3차전 때는 펜웨이 파크가 승리를 도왔습니다.

 

두 팀이 4-4로 맞서고 있던 13회초 1사 상황에서 탬파베이 5번 타자 디아스가 우전안타를 치고 나갔습니다.

 

다음 타자 아로사레나는 외야 뜬공으로 물러난 뒤 타석에 들어선 키어마이어가 장타성 타구를 날렸습니다.

 

키어마이어가 때린 공은 381피트(약 116m)를 날아가 불펜 쪽 담장을 때렸습니다.

 

2아웃 풀카운트에서 3루를 향해 뛴 디아스가 홈으로 파고들기 충분한 타구였지만 보스턴 우익수 헌터 레프로(29)의 몸에 맞은 공이 불펜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헌터 렌프로의 몸에 맞고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 중계화면 캡처

펜웨이 파크 왼쪽에는 높이 11m가 넘는 그린 몬스터가 자리잡고 있지만 불펜 쪽 담장 높이는 1.5m가 전부입니다.

 

그렇다고 규칙 적용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공식 야구 규칙 5.05(a)(8)은 이런 상황에서는 2루타로 인정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단 바운드한 페어 볼이 야수에게 닿아 굴절되어 페어지역이나 파울지역을 가릴 것 없이 관중석으로 들어가거나 펜스의 위아래로 넘어갔을 경우 타자·주자 모두에게 2개 베이스가 주어진다.

 

Any bounding fair ball is deflected by the fielder into the stands, or over or under a fence on fair or foul territory, in which case the batter and all runners shall be entitled to advance two bases.

 

이에 따라 디아스는 3루에 멈추는 수밖에 없었고 탬파베이는 결국 무득점으로 공격을 마쳤습니다.

 

다시 보스턴 공격 차례였던 13회말 1사 상황에서 레프로가 볼넷을 얻어 1루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타자 바스케스가 그린 몬스터를 넘어가는 끝내기 홈런을 날렸습니다.

 

연장 13회에 끝내기 홈런을 날린 크리스티안 바스케스. 중계화면 캡처

10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닉 피베타(28)는 펜웨이 파크 도움으로 4이닝 동안 삼진 7개를 잡아내면서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알렉스 코라(46) 보스턴 감독은 "오늘 피베타는 2018년 월드시리즈 3차전 때 네이선 이볼디(31) 같은 활약을 펼쳐줬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경기 선발이기도 했던 이볼디는 당시 월드시리즈 때 12회부터 등판해 17회까지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습니다.

 

단, 18회말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 선두 타자로 나온 맥스 먼시(31)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아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날은 끝내기 홈런을 날린 쪽이 보스턴이었으니 결론은 서로 달랐습니다.

 

 

3차전: 탬파베이 4-6 보스턴

마운드에 올라 투수를 교체하는 알렉스 코라 감독. 보스턴=로이터 뉴스1

올해 보스턴이 역전승이 많았다는 걸 뒤집어 생각하면 선발진이 무너지는 일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이번 시즌 보스턴에서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는 이볼디 한 명밖에 없습니다.

 

8월이 되어서야 복귀한 세일도 정규시즌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번 ALDS 2차전에서 1이닝 5실점을 기록하는 등 '가을야구 울렁증'이 도진 상황.

 

선발진이 흔들리면 구원진에도 당연히 영향이 뒤따르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ALCS까지 진출할 수 있던 건 역시 코라 감독 용병술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라 감독은 휴스턴에서 벤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 아직 사인을 잘 훔친 덕분에 포스트시즌 탈락 경험이 없습니다.

 

과연 '코라 매직'을 ALCS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까요? Let's go, Reds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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